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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2013 연속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에 서다
 2012, 2013 연속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에 서다
ⓒ 이혁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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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2일, 서울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에선 흔히 볼 수 없는 감동적인 오케스트라 공연이 펼쳐졌다. 전국 20여 개 농어촌청소년오케스트라에서 활동 중인 아이들의 일부가 모여 농어촌희망청소년합동연주회(Korea Young Dream Orchestra, 이하 KYDO)를 연 것이다.

올해로 두 번째를 맞은 KYDO연주회에는 총 280여 명의 아이들이 참가했다. 전국 20여 개 청소년오케스트라에 소속된 아이들 중 각 단체에서 10명씩 선발했다. 또 미국과 중국 등에서 활동하는 아이들도 함께 참여했다.

특히 놀라운 것은 대한민국 최 서남단 낙도 어린이 10명도 함께했다는 것이다. 이날 무대에 오른 아이들은 ▲브람스 '대학축전 서곡' ▲차이코프스키 '바이올린 협주곡 D장조' ▲드보르작 '교향곡 8번 G장조' ▲아리랑 ▲베토벤 '교향곡 7번 A장조' ▲멘델스존 '교향곡 4번 A장조 이탈리아' ▲드보르작 '교향곡 9번 신세계로부터' 등 수준 높은 곡을 연주하며 그동안 갈고 닦은 실력을 마음껏 뽐냈다.

KYDO는 농어촌희망재단 문화사업단이 한국마사회와 함께 2011년 4월 연 오케스트라 음악교실로 문화적으로 소외된 20개 농어촌 지역의 초중고등 학생들로 구성됐다. 특히 세계적인 지휘자 금난새씨가 재능기부의 일환으로 지휘를 맡고 있다. 금난새씨는 전국을 돌면서 강사 교육 및 학생들에 대한 지도를 하고 있다. 신안 낙도 어린이들로 구성된 '신안1004청소년오케스트라'도 2011년부터 KYDO에 참여하고 있다.

2011년부터 신안1004청소년오케스트라 단원으로 활동하고 있는 김대영(암태중3)군은 세종문화회관 무대에 두 번 모두 올랐다. 공연을 끝내고 무대에서 내려운 김군의 입가에선 아직 흥분이 가시지 않았다. 

"저는 오케스트라에 들어오면서 클라리넷을 처음 보았습니다. 호기심에서 참여한 오케스트라인데 이렇게 멋진 공연에 참여하게 되어서 무척 기분이 좋습니다."

신안 섬으로 들어온 엘 시스테마 운동

2012년 8월 여름에도 연습은 계속되었다.
 2012년 8월 여름에도 연습은 계속되었다.
ⓒ 이혁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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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의 공연을 보기 위해 이른 새벽 배를 타고 목포로 나와 다시 전세버스를 이용해 서울에 온 학부모와 친척 50여명의 감동 또한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 농사일을 잠시 미루고 자식의 공연을 보기위해 어려운 걸음을 한 고태영(압해초5) 학생의 아버지는 장시간의 버스여행과 복잡한 서울거리에 지쳐보였다. 그는 "태영이는 늘그막에 낳은 자식입니다, 늦둥이 때문에 이런 고생을 하게 되네요"라면서도 "어떻게 섬에서 태어나 이런 큰 무대에 설 수 있겠습니까! 신안1004청소년오케스트라 선생님들께 정말로 감사드립니다"라고 인사했다.

한국형 엘 시스테마의 서곡이라고 할 수 있는 신안1004청소년오케스트라는 베네수엘라에서 시작된 엘 시스테마 운동에서 감명 받은 목포지역 청년교육운동가들이 주축이 되어 2010년 시작됐다. 남아메리카 베네수엘라 경제학자이자 오르간 연주자인 호세 안토니오 아브레우는 1975년 수도 카라가스의 빈민가 우범지역 아이들 손에 바이올린, 트럼펫 같은 악기를 쥐어 주었다. 이 아이들은 가난과 폭력에 무방비로 노출되어 학교 교육보다는 마약과 총에 더 익숙해 있었다.

"악기를 들고 도망가도 좋다, 다만 총과 마약 대신 악기를 들어라"라며 시작한 아브레우의 노력은 마침내 베네수엘라 뒷골목의 풍경을 바꿔 놓는다. 총소리가 끊이지 않던 곳에서 바이올린과 트럼펫 선율이 흐르고 마약을 운반하던 아이들의 가방 속엔 악보가 자리 잡기 시작했던 것이다. (사) 미래를 여는 문화회는 이런 엘 시스테마의 가치를 지역에서 실현하고자 신안 각 섬을 돌며 단원들을 모집했다.

대한민국 도시 아이들에게 피아노 학원은 필수이고 음대 진학을 위해선 고액을 들여 개인 레슨을 받는 일이 흔히 벌어지는 일상이지만 아직 일부 농·어촌 지역에서는 피아노 학원조차 찾아보기 힘들다. 교육의 양극화 뿐 아니라 문화의 양극화 또한 우리사회에서 이미 고착화 되어 버렸다. 지역발전의 불균형으로 소외되고 있는 아이들이 음악으로 꿈을 키울 수 있게 하는 한국형 엘 시스테마는 지역적으로 고립돼 있는 신안 섬 아이에게 꼭 필요한 것이었다.

인근 마을 노인회관 게이트볼장에서 악기 연주를 하고 있는 암태중 아이들
 인근 마을 노인회관 게이트볼장에서 악기 연주를 하고 있는 암태중 아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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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고향은 인천입니다. 대학을 목포에서 다니다 보니 자연스럽게 이곳이 제2의 고향이 되었습니다. 제가 신안1004청소년오케스트라를 떠날 수 없는 것은 초롱초롱한 아이들의 눈망울 때문입니다. 또한 도시 아이들보다 섬 아이들의 예술적 감각이 훨씬 더 뛰어난 것을 발견하고 음악인으로서 사명감을 가지고 아이들을 지도하고 있습니다."

지난 3년 간 낙도 아이들을 위해 재능을 기부하고 있는 홍명진 신안1004청소년오케스트라 지휘자의 말이다.
  
신안1004청소년 오케스트라는 섬으로만 이루어진 신안군 초, 중학생 60여명으로 구성되었다. 이들은 신안군 압해초등학교 강당에서 일주일에 두 번씩 모여 악기 연주 연습을 한다. 인근 암태, 팔금, 자은, 안좌 등 섬에서 배를 타고 나온 아이들은 자신보다 더 큰 악기를 들고 힘들어하지만 표정만은 무척 밝다.

악기 구입 등 모든 비용은 전액 무료이다. 이들에게 들어가는 모든 비용은 (사)미래를여는문화회의 후원금과 이들의 운동을 뒤늦게 알게 된 신안교육청의 지원 그리고 10명의 자원봉사 강사들의 재능기부로 충당된다. 하루하루 살기 빠듯한 농어촌 학부모들의 경제적 여건을 고려한 것이다. 피아노 학원조차 구경하기 힘들었던 아이들이 바이올린, 트럼본, 오보에, 섹소폰 등 최신 악기를 만지고 놀면서 자신들의 꿈을 키우고 있다.

지금은 배편이 많이 좋아졌지만 그래도 태풍주의보가 발효되면 이들의 연습은 불가능하다. 홍명진 지휘자가 연습이 있는 매주 수요일과 토요일 일기예보에 귀를 기울이는 이유이다. 압해초 강당에서 이루어지는 오케스트라 연습은 섬 아이들에게는 단순한 악기 연습을 넘어 고립된 섬에서 탈출하여 세상과 소통하는 기회이기도 하다. 신안1004청소년오케스트라는 이들에게 세상 사람과 더불어함께 살아가기를 가르치고 있는 셈이다.

방과후에도 집에 가지 않고 연습에 몰두하는 아이들

연습장인 압해도를 가기위해 암태도 선착장에서 배를 기다리고 있는 아이들
 연습장인 압해도를 가기위해 암태도 선착장에서 배를 기다리고 있는 아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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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수업과 지리적 여건 때문에 매주 2회 밖에 모이지 못하기 때문에 각 섬에 있는 아이들은 개별적인 연습을 한다. 방과 후에 각종 학원으로 달려가는 도시 아이들과는 달리 섬 아이들은 정규 수업이 끝나도 곧장 집에 가지 않는다. 암태중학교에 다니는 신안1004청소년 오케스트라 6인방은 인근 마을에 있는 게이트볼장을 찾아 운동을 하는 노인들에게 아리랑 등을 들려주며 연습 겸 무대 경험을 쌓았다. 지난해 중학교 3학년이었던 은진이(사진 왼쪽 두 번째)는 졸업 후엔 대도시의 고등학교로 진학을 하려 했으나 작년 세종문화회관 대극장 무대에 서본 뒤 오케스트라를 계속하고 싶은 마음에 인근 섬에 있는 고등학교에 진학하였다.

은진이는 오케스트라에 참여하면서 바이올린을 처음 만져 보았다고 한다. 하지만 이제 은진이의 꿈은 음대에 진학하여 세계적으로 유명한 바이올린 연주가가 되는 것이다. 은진이는 (사)미래를 여는 문화회가 추구하는 교육과 문화 양극화 해소를 통한 자신의 꿈을 실현하는 세상의 모델이 된 셈이다.

"우리들의 꿈은 신안1004청소년오케스트라 단원들이 오케스트라 활동을 통해 다양한 방과 후 경험을 쌓고, 이러한 노력들이 인정을 받아 자신의 꿈을 실천할 수 있는 대학에 진학 하는 것입니다. 요즘 대학들이 찾고 있는 창의적이고 열정적인 학생들이 바로 우리 단원들이라고 생각합니다."

신안1004청소년오케스트라 강사들은 한 목소리를 내고 있었다.

2012년 10월 목포문화예술회관 무대에 오른 신안1004청소년오케스트라
 2012년 10월 목포문화예술회관 무대에 오른 신안1004청소년오케스트라
ⓒ 이혁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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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 몇 명이 모여 신안에서 시작한 한국 판 엘 시스테마 운동은 계속되어야 한다. 사단법인 미래를 여는 문화회 청년들은 신안1004청소년오케스트라를 신안의 교육브랜드로 키워 이들이 악기 연주를 통해 개인의 소질을 개발하고, 다양한 활동에 참여하여 공동체 의식을 함양하도록 노력을 게을리 하지 않을 것이라 한다.

이들은 단순히 구호에 그칠 수 있는 교육과 문화 양극화 해소라는 목표의 실현 가능성을 신안1004청소년오케스트라를 통해서 본 것이다. 하지만 섬 아이들로 구성된 오케스트라는 공교육에서 운영하는 것이 아니기에 현실적인 한계가 많다. 경제적인 문제 뿐 아니라 학사일정 등 민간 후원자들만으로 지속적으로 하기에는 역부족일 것이다. 현재 참여하고 있는 섬 아이들 뿐 아니라 앞으로 함께 해야 할 섬 아이들을 위해서 주변의 더 많은 관심과 격려가 필요한 이유이다.

2013년 8월 21일 수요일 오늘도 압해초 강당에선 신안1004청소년오케스트라 천사들의 꿈의 연주가 계속되고 있다. 이들이 단독으로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에서 공연하는 그날이 오기를 손꼽아 기다려 본다.

덧붙이는 글 | (사)미래를 여는 문화회 단장입니다.



태그:#신안1004청소년오케스트라, #엘 시스테마, #KYDO청소년오케스트라, #사단법인 미래를 여는 문화회, #농어촌희망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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