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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협 중앙회를 개혁하고, 투명하고 공정한 농협경영, 농협을 농민 조합원의 품으로."

이 구호는 농민단체의 집회 구호나 전국규모의 농협직원 노조의 집회 구호가 아니다. 지난 2000년 7월 22일 경남 함양군 안의면의 안의농협 직원들이 전국농협노동조합 안의분회(이하 안의분회)를 결성하면서 내건 구호이다.

안의분회는 현재 언론이나 사법당국의 차가운 외면 속에서, 그리고 건강한 농민단체나 시민·사회 단체조차 없는 여론의 사각지대에서 농협 비리와 맞서 외로운 투쟁을 벌이고 있다.

안의분회(분회장 전인배)는 노조 결성 이후 우선 투명성 있는 농협 경영을 요구하면서 조합장(양모씨)과 관련된 납득하기 힘든 일이나 부실경영에 대해 자체 감사를 요청했다.

노조에서 문제 제기한 부분은 △농협중앙회 펀드형(주식형) 예치금의 운영으로 인한 경영 손실 부분에 대해 관련자와 최고 책임자인 조합장의 책임부분, △조합장 가족 명의로 불법 대출 받은 농사자금의 규모와 사용처. 차명계좌로 관리해돈 비자금, △농업경영인 체육대회에 지출하기로 한 찬조금 중 30만원의 행방, △조합장 부인으로부터 수백만원처치의 정수기를 일괄적으로 구입하게 된 배경, △거래 업체들로부터 받은 사례금으로 은밀히 비자금을 조성한 경위 등이다.

안의분회의 서진호 사무국장은 "농민조합원의 경우 1∼2백만원도 대출받기 어려운 게 현실이다. 하지만 조합장은 농사자금 규정을 어기고 한도까지 초과해서, 학생신분인 아들 명의까지 빌려서 대출을 받았다"고 폭로했다.

농협 규정상 상근 임직원(조합장 포함)은 농사자금을 대출 받을 수 없다. 또한 한 가구당 대출 규모도 1500만원을 넘을 수 없고, 더구나 농사를 짓지 않는 사람은 대출이 불가능하도록 규정돼 있다. 그런데도 양조합장은 학생 신분인 아들 명의까지 넣어서 모두 2600만원을 대출받은 것이다.

서씨는 "중앙 언론에서 터지는 대형 금융사고가 수백억, 수조원에 이르다보니 몇 천만원대의 비리에 대해서는 아예 관심 밖으로 취급하는 경우가 있다. 하지만 농민들은 단 1∼2백만원 대출 받기 위해 농협문이 닳도록 들락거려야 한다. 조합장이 불법 대출로 가져간 돈이 농민들의 피와 땀이 서린 것임을 기억한다면 결코 작은 게 아니다"고 말했다.

안의분회는 조합장과 관련된 문제들에 대해 구체적인 증거자료까지 확보해서 2000년 10월 24일 정식으로 감사를 요청했다. 하지만 전무와 조합장은 "대의원 1/5 이상의 서명을 받아오지 않으면 감사를 받을 수 없다"며 규정에도 없는 조건을 내세워 감사를 거부했다. 이에 안의분회는 대의원 22명의 서명을 받아 재차 감사 요청을 했는데, 이 마저 묵살당했다.

이후 2000년 말 실시한 결산 감사에서는 "조합장이 영농자금을 다소 썼으며, 관련 규정에는 못 사용하라는 규정은 없으나 도덕적으로 문제가 있으며, 비자금과 관련하여 관련직원에게 268만원을 변상조치시켰으며, 중앙회 편드 예치금도 문제 없었음"이라는 내용으로 감사보고를 했다.

그러던 중 올해 2월 23일자로 조합장은 또 다시 대학생인 아들 명의로 '농신보대출'을 3000만원 받아 사용했다('농신보대출'은 담보력이 부족한 농업인을 위해 농림수산업자 신용보증기금에서 보증을 서 대출하도록 하는 제도이다. 이는 농사를 짓지 않으면 대출 받을 수 없는 돈이기에 명백히 직위를 이용한 불법 대출인 것이다).

더욱이, 조합장은 조합원들에 대한 전보 전출이라는 방법으로 안의분회에 대해 반격하기 시작했다. 올해 3월 5일자로 사무국장 서진호 씨와 부분회장 서필상 씨, 조직부장 박종성 씨가 차례로 다른 농협 지소로 전출됐다. 엎친데 덮친격으로 농협 간부들의 회유와 억압을 받은 노조원들이 하나둘씩 탈퇴하기 시작해 처음 출범 당시 28명이던 노조원들은 이제 16명밖에 남지 않았다.

이에 따라 안의분회는 자체 감사로는 사건의 전모를 밝히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판단해 3월 5일 조합장의 비리와 관련해 창원지방검찰청 거창지청에 진정서를 접수해 투명성 있는 수사를 요구했다.

그러나 초기에 관련자들을 불러 신속하게 수사를 벌이던 검찰마저 현재는 수사진행이 주춤한 상태여서 안의분회측은 우려를 나타내고 있다.

서진호 사무국장은 "농협 직원들은 모두 '농민은 농협 없이도 살 수 있지만 농협은 농민 없이 살 수 없다'는 말을 기억해야 한다. 가능한 모든 방법을 동원해서 진실 규명을 위해 노력하겠다"며 의지를 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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