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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마이뉴스 김미선


"학교문제가 빤히 눈으로 보이는데 왜 우리를 참여하지 못하게 막으십니까?"
5월4일 서울 강서구 화곡동 신정여상. 중학생 150여명이 교사들의 반대를 뿌리치고 운동장으로 나왔다. 이들은 운동장에서 집회를 열고 있는 시위대를 향해 다가갔다. 여중생들은 운동장에 앉은 고등학생들 틈에 섞여 구호를 외치기 시작했다.

"해마다 수학여행 설악장이 웬 말이냐"
"학교 민주화 하자는데 휴교령이 웬 말이냐"
"교육청은 민주적 관선이사 즉각 파견하라"
"학생 돈을 떼어먹은 이사장은 퇴진하라"
"형식적인 재단감사 짜고치는 사기집단 교육청은 물러가라"

▲'부패재단 퇴진'이라 쓰여진 신정여상 행정실. ⓒ 오마이뉴스 김미선
신정여상, 신정여중, 구로여자정보산업고(구로여정산), 오류고, 한광고 등 5개 학교 학생 5백여 명과 전교조 소속 교사 40여 명은 4일 신정여상 운동장에서 "인권재단 규탄대회"를 열었다.

"수학여행비·급식비·앨범제작비 등 우리 주머니돈 떼어먹은 것 돌려달라"
"강사채용때 금품수수, 교사채용 때도 금품수수, 부패재단 물러나라"

5개 학교 학생들과 교사들이 학내문제를 갖고 연합집회를 하는 이유는 이들 학교가 동일한 재단을 두고 있기 때문이다. '재단법인 인권학원(이사장 진덕균)'. 학생·교사들은 이 재단이 수년간 학교운영 전반에 걸쳐 비리를 저질러왔음은 물론, 5개 학교의 학사행정을 배후조종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신생학교인 오류고와 중학교인 신정여중을 제외한 3개 학교학생들은 4월16일부터 부분 또는 전면 수업거부중이다.

5월4일 신정여상 집회1 / 오마이뉴스 김미선


5월4일 신정여상 집회2 / 오마이뉴스 김미선


▲수업거부에 들어간 학생들에게 학교측은 '휴교령'으로 맞섰다.ⓒ 오마이뉴스 김미선
가장 많은 수의 교사와 학생들이 학내시위에 참여해온 신정여상은 3일, 학교측에 의해 휴교결정이 내려졌다.

학교측은 '학내분규 때문에 학사일정을 제대로 할 수 없다"며 4일부터 12일까지 '가정학습의 날'이라고 통보했다. 3일 뒤인 7일 구로여정산에서는 중간고사를 강행하려는 학교측과 학생들간에 마찰이 빚어졌다. 이 과정에서 학생 2백여 명이 교직원들에 의해 건물 안에 감금돼 폭행위협을 받기도 했다.

"이래도 비리재단이 아니라고?"

"학교에서 매년 수학여행을 갑니다. 매년 같은 곳을 갑니다. 꼭 '설악장'이라는 여관에서 잡니다. 여관방은 창고같으며 바퀴벌레가 얼굴로 떨어질 만큼 너무나 더러운 곳입니다. 10만원이라는 크다면 큰 돈을 내고 다녀왔습니다.

저는 저희 학교와 같은 재단인 신정여중을 나와서 중학교 때부터 쭉 수학여행은 설악장만 갔습니다. 다른 학교는 5-6만원을 내고 1방에 4명씩 깨끗한 콘도에서 재미있게 놀다가 온다는데 10만원을 내고 간 우리는 한방에 거의 10명씩 들어가 곰팡이가 있는데도 빨지 않은 이불을 겨우 덮고 잤습니다.

이불도 모자라서 옷을 꾸역꾸역 입고 잤습니다. 우리가 설악장에 가야했던 이유는 전 재단이사장의 지인이 소유한 여관이라는 것 때문이었어요."(2학년 16반 K양)

"강사로 채용하면서 금품을 받고 또 정식교사로 채용하면서도 또 돈을 받았죠. 이미 내부적으로 양심선언한 교사도 있습니다. 지난 4월21일에는 교사채용을 약속받고 금품을 건넸는데 학교측이 이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며 학부모가 항의하는 일까지 빚어졌습니다. 학교측과 '채용약속 각서'를 쓰고 돈을 건넨 교사들의 숫자가 적지 않습니다. 학교측에 채용대가로 주어지는 돈은 1천만원 가량으로 알고 있습니다."(신정여상 윤동희 교사)

"오류고등학교, 구로여정산 뒷편 개발제한 구역인 구로구 궁동 104, 106, 110번지 세필지 1300평의 밭을 오류고등학교 운동장으로 쓴다는 이유로 수익용 기본재산에서 교육용 기본재산으로 용도변경하여 지목을 답에서 대지로 변경했으나 실제로는 운동장으로 사용되지 않았다. 이는 교육을 빙자해 부동산 투기를 하는 것이나 다름없다."(전교조 인권연합분회)


▲10년 이상 낡은 책상과 걸상을 사용하고 있는 교무실과는 달리 호화롭게 꾸며진 재단이사장실 내부. 재단이 소유하고 있는 5개 학교에 모두 재단이사장실에 마련돼 있다. ⓒ 오마이뉴스 김미선
전교조 인권학원 연합분회는 지난 97년부터 3년 동안 신정여상에서만 '특기적성비'로 재단에서 횡령한 돈이 7천만원에 이른다고 밝혔다. 97년 특기적성비 횡령 건은 전교조 교사들에 의해 고발당한 상태다.

학교측이 작성한 자료에 따르면 수업도 안한 관리교사가 매달 114만원씩 8차례에 걸쳐 총 2700만원을 가져간 것으로 나와 있으며, 맹아무개 교감도 월 1백만원씩 6백만원을 개인적으로 착복했다는 것이다. 이는 전교조 교사들이 학교측의 이중출석부를 적발하면서 드러났다.

이들은 또 학교측이 수학여행비, 앨범비, 명찰비, 급식비 등을 타학교보다 높게 책정하거나, 허위로 서류를 작성해 차익을 착복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1반당 5-6명의 학부모가 연간 5-10만원씩 내는 육성회비와 어머니회비도 의혹의 대상이다. 전교조 연합분회는 걷힌 액수조차 파악이 되지 않음은 물론, 학생들을 위해 쓰여지지도 않았다고 주장했다.

전교조 인권연합분회는 이외에도 10여 가지 재단비리 사안에 대해 증거자료를 확보중이다.

▲ 교사들의 낡은 책걸상. 학생들의 책상도 초코파이 책상에서 바뀐 지 4년밖에 안됐다. ⓒ 오마이뉴스 김미선


"우리학교 재단설립자는 전과 2범"

학생들과 전교조 교사들은 인권재단의 가장 큰 문제점으로 5개 학교의 학사일정 전반 및 학교운영이 한 사람에 의해 독단적으로 운영되는 점을 들고 있다. 재단설립자인 진인권 씨가 그 당사자로, 진씨는 81년 공금횡령, 96년 교육감 선거시 3억원 뇌물제공 등으로 입건됐던 전과 2범이다. 그런 진씨가 2002년까지 집행유예기간임에도 5개 학교의 모든 일에 간섭한다는 것이다.

실제 현 인권재단 이사장인 진덕균(80) 씨는 진인권 씨의 둘째형으로, 진인권 씨의 집행유예 만기일까지 이사장직을 지켜주는 역할에 불과했다는 평이다. 이사회도 진씨의 조카사위인 윤주홍 씨, 진씨의 처형인 한남수(전 신정여중 교장) 씨, 신창규(전 신정여상 교장, 현 명퇴신청) 씨, 신창규 씨의 동생인 신현규(한광고 매점 사장) 씨, 한규환(현 구로여정산 교장) 씨 등 100% 친척이나 지인으로 구성돼 있다.

그러나 인권재단은 학생들과 전교조 교사들의 주장을 정면으로 반박하면서 "유언비어 및 왜곡날조된 내용을 유포시킨 데 대해 사법부에 호소할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 인권재단은 특히 "학교에 관한 모든 예결산권은 경리관으로써 학교장의 고유권한으로 법인과는 무관하다"며 재단의 독단적 학사개입에 대해 부인하고 있다.

높은 사람들이 우리 편이라면 얼마나 좋을까

▲ⓒ 오마이뉴스 김미선
분명한 것은 중고등 학생들조차 재단과 학교측의 학교운영방식에 문제의식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그런 그들이 사회의 외면 속에 23일째 "재단퇴진"을 외치며 서울교육청과 학교운동장을 오가며 난생 처음 시위라는 것을 경험하고 있다.

그러나 구체적 증거자료까지 갖추고 문제제기를 해도 교육청은 말이 없다. 오히려 인권재단 소속 학교에서 재단쪽을 지지하며 근무했던 경력이 있는 사람을 '담당자'라고 현장에 내보내고 있다.

교육청은 지난 99년도에도 인권재단 소유인 성산동 487-4번지에 위치한 토지가 도로용지로 수용돼 보상받은 8611만원 중 3천만원을 횡령한 것이 교육청 감사에서 적발됐음에도 형사고발하지 않았다. 이들 5개 학교의 구호에 '교육청 감사'가 빠진 이유도 교육청이 이들에게 믿음을 주지 못했다는 것의 반증이다.

어쩌면 이 과정에서 학생들은 어른들에 대한 불신을 더 많이 키워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우리에겐 폭넓은 방법이 없다는 현실이 너무나 슬프다. 그리고 그 현실로 인해 다치는 나, 친구들 선생님들이 있다는 게... 이대로 있자는 애들... 힘들어도 그건 아냐.
우린 부패한 학교 언제까지나 욕하기만 하고 다닐 건데, 언제까지 비리학교라는 딱지를 달고 다닐 건데, 다 대학가는 게 아니잖아. 마지막 학교라는데 좋은 학교를 만들면 다 좋은 거잖아.
근데 그런 학교를 만들기는 너무나 힘이 든다. 높은 교육청 사람들, 경찰들, 의원들이 우리 편이라면 얼마나 좋을까? 그들을 뭘 얻었기에 아님 뭐가 그리 귀찮기에 우리를 외면하는 걸까?"(5월7일, 나, 전교조 홈페이지)

"오늘 저는 교장 교감 선생님께 정말 실망하였습니다. 솔직히 이번 일에 참여하면서 정말 교장 교감선생님을 믿을 수 없게 되었을 뿐만 아니라 인간성을 보았습니다. 자신들이 저지른 일은 생각도 안하고 저희들을 비난하거나 전교조 선생님들을 비난하는 등... 어떻게 학교의 문을 잠그고 폭언을 할 수 있습니까? 우리는 학교에 폭행을 당하러오는 사람이 아닙니다. 오늘 있었던 일 잊을 수 없는 일입니다."(5월5일, 구로인, 전교조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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