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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김미선 / 사진 노순택 기자

▲ 순천향대 장호순 교수. 장 교수는 "진보언론부터 기자실 개혁에 앞장서야 한다"고 말한다.
ⓒ 오마이뉴스 노순택
<오마이뉴스>는 '현장과 사람-언론개혁, 이제는 이렇게'를 연재하고 있습니다. 세무조사와 탈세사주 구속으로 1단계 언론개혁이 마무리된 지금, 언론개혁의 2단계 과제들을 짚어보는 기획입니다. 이 기사는 그 다섯번 째입니다.-- 편집자 주

'당신은 여기에 출입할 자격이 없습니다'
취재현장에서 간혹 기자들의 취재를 가로막는 이들이 있는데 이들 가운데는 때때로 '동업자'인 기자들도 있다.

관공서 한켠을 차지하고 있는 '기자실' 의 배타성과 폐쇄성은 '출입금지기자실'이라는 말까지 나오게 만들었다.

지난 7월 인천지방법원 제3민사부는 3월 말 인천공항 출입기자실에서 쫓겨났던 오마이뉴스 최경준 기자가 제기한 '출입 및 취재방해금지 가처분 신청'에 대해 "인천국제공항청사는 출입기자실에 출입하는 것을 방해하거나 취재하는 것을 방해해서는 안된다"라는 '의미있는' 결정을 내리기도 했다.

그러나 그후 크게 변한 것은 없다. 경남 도청 출입기자들 일부가 기자실 폐쇄 움직임을 보이고 있고, 파주시청 기자단이 29일 기자단 해체 및 기자실 자진반납을 결의하기도 했지만 '기자실의 관행'은 바뀌지 않았다. 게다가 최근 민주당 출입기자들은 촌지사건으로 물의를 일으키기도 했다.

오랜 기간 출입기자실 문제를 제기해왔던 장호순 순천향대(신문방송학) 교수는 이 때문에 '더 강력한' 자극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기자실 문제제기의 주체가 누구냐에 따라 출입기자실 문제해결이 좌우된다는 것이다.

8월28일 영등포역 근처 한 식당에서 만난 장호순 교수는 "언론개혁의 종착점은 결국 '언론의 자유'"라고 강조했다. 장교수가 말하는 '언론의 자유'는 기득권을 가진 기자들뿐만 아니라 모든 기자들, 모든 시민들이 자유로운 취재를 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다.

ⓒ 오마이뉴스 노순택
장교수는 이를 위해 "진보언론의 기자들이 기자실을 먼저 박차고 나와야 한다"고 말한다. 진보언론 기자들이 '기자실'안에서 언론개혁을 외치는 것이 어불성설이라는 것이다. 언론사 세무조사를 아무리 공정하게 진행하고, 언론사주의 소유지분을 제한한다고 해도 '불평등한 기자실'이 존재하는 한 언론개혁이 완성될 수 없다는 의미다.

그는 특히 "우리는 소유와 편집단계만 문제삼고 있는데 언론사 소유지분을 제한한다든가, 편집권 독립을 법적으로 보장한다고 해도 취재단계에서 발생하는 왜곡현상을 고치지 않으면 아무런 의미가 없다"면서 "취재관행, 취재문화가 개선되지 않는다면 언론개혁이라는 것은 있을 수 없다"고 잘라말했다.

다음은 장교수가 말하는 '언론개혁'이다.

"소유와 편집단계 개혁보다 기자 자신들의 개혁이 더 중요하다"

- 언론사 세무조사 과정에서 사주 3명이 구속된 이후 언론개혁의 다음 과제로 '이제는 기자들이 나서야 한다'는 말이 나오고 있다. 앞으로의 언론개혁 방향은 어디로 가야 한다고 보는가.
"언론보도가 불공정해지고, 부정확해지는 것은 뉴스가 만들어져서 전달되는 여러 단계에서 발생한다. 뉴스 제작의 모든 공정 자체가 투명하고 합리적이어야 한다. 뉴스왜곡은 3단계다. 첫 번째는 소유단계다. 누가 뉴스를 소유하고 있는가. 지금 우리 언론은 족벌언론 등 특정인들만 뉴스를 소유하면서 그 사람들의 성향과 이익에 맞는 뉴스만 거듭 재생산되고, 다른 사람들은 외면받는 현실이다.

ⓒ 오마이뉴스 노순택
그 다음은 편집단계다. 뉴스를 제작하는 과정에서 다양한 압력, 즉 소유자, 권력자, 광고주, 편집자의 학연, 지연, 혈연 등이 들어간다. 마지막으로 취재단계다. 기자가 전체를 보지 않고 극히 일부만을 보고, 자기가 의도한 대로 자기 취향에 맞는 사람만 만난다면 그 뉴스는 공정해질 수가 없다. 이 3단계가 다 이야기되어야 한다. 3단계가 다 투명해지지 않는다면 뉴스는 왜곡된다.

지금껏 우리는 소유와 편집단계만 이야기하고 있는데 개인적으로 나는 언론사 소유지분을 제한한다든가, 편집권 독립을 법적으로 보장한다고 해도 취재 단계에서 발생하는 왜곡현상을 고치지 않으면 아무런 의미가 없다고 생각한다. 실질적으로 현장에서 취재원들이나 일반국민들이 갖는 언론에 대한 반감은 조선일보나 중앙일보, 동아일보 사장이 아니라 일선에서 만나는 기자들이다. 취재관행, 취재문화가 개선되지 않는다면 언론개혁이라는 것은 있을 수 없다."

- 불공정한 취재관행, 취재문화를 대표해왔던 것이 출입기자실 문제라고도 볼 수 있는데 많은 사람들은 기자들의 자발적인 자정노력이 필요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기자들의 자발적인, 자율적인 힘으로 기자실 관행이 고쳐질 것이었으면 벌써 고쳐졌을 것이다. 신문사 이윤을 추구하는데 기자실이 방해가 된다든가, 기자들이 자신들의 이익을 추구하는데 기자실이라는 게 별 도움이 되지 않더라는 이해판단에 의해 기자실이 소멸될 수 있을 지는 몰라도 '기자실 관행이 언론의 자유에 위배되고 윤리적으로 옳지 않다'는 이유로 기자실이 없어지지는 않을 것이라고 본다.

또 기자들의 자정노력도 미미하다. 언론개혁을 요구하는 진보적 언론이나, 이것이 언론탄압이라고 주장하는 보수언론이나 기자실 문제라든가, 촌지 문제가 나오면 늘 입을 다물고, 그 문제는 넘어가자는 식으로 하고 있다. 이는 굉장히 뿌리깊은 관행, 문화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일선기자들에게는 편리하기 때문에 그걸 고집하는 거다. 쉽지 않은 일이다.

법적인 판결은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다. 정부에서 제공하고 있는 기자실이 예산사용이나 기자실 임대 차원에서 현행법에 맞지 않다고 판결을 낸다면 어차피 (기자실을) 차단할 수밖에 없는 것이고. 그런 측면에서 기자실이 없어질 수 있을지는 모른다."


"진보적 언론들이 출입처 기자실을 박차고 나와야 한다"

ⓒ 오마이뉴스 노순택
- 일부 시군에 국한되어서 보여지는 것이긴 하지만 몇몇 지역에서는 기자실을 폐쇄하기도 했고, 기자단 내부에서 '해체' 움직임이 있는 곳도 있는데 이런 움직임이 기자실 개혁에 영향을 미칠 수 있지 않겠나.
"그렇지 않다고 본다. 과거 기자실 문제가 크게 터졌던 것은 보사부 촌지사건 때문이었는데 당시에는 다들 '우리 잘못했다, 기자실 안들어간다'고 했었다. 그러나 이후에 유야무야 다시 들어갔다. 중요한 것은 이것이 되려면 언론개혁을 요구하는 진보적인 언론이 먼저 출입처에서 나와야 한다. 출입처의 잘못된 관행들에 대해 묵인한 것에 대해 진보언론이 반성하고 고백하고, '우리는 이제 출입처를 나와서 독자적으로 기사를 쓰겠다, 독자를 위해서 기사를 쓰겠다'고 해야 한다."

- 진보적 언론이 주체로 나서지 않으면 출입기자실이 개혁될 수 없다는 것인가.
"그렇다. 그러나 최근 만난 진보언론의 취재기자나 데스크들은 '기자실이 문제다, 획일적인 기사를 양산하고, 보도자료를 베껴 쓰고, 기사경쟁력이 떨어진다'는 것에 다들 인정을 하면서도 '어떻게 고칠 것인가'에 대해서는 별로 이야기들이 없다. 지난번 인천공항기자실 이야기가 나왔을 때 나는 <한겨레>를 비난하는 칼럼을 써서 <한겨레>로부터 강한 반발을 산 일이 있었다. 내가 당시에 굳이 <한겨레>를 지목한 이유는 '언론개혁을 요구하는 진보적인 언론이라면 당신들만이라도 좀 달라야 되지 않겠냐'는 것이었는데 내가 느낀 것은 별로 다른 게 없다는 것이었다. 그 당시 한겨레 기자들이 나에게 강하게 이의를 제기하면서 '우리도 내부적으로 이야기하고 있다' '문제점을 인식하고 있다' '개선방안을 모색하고 있다'고 했지만 지금까지 아무 진전이 없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대안언론·군소언론은 실패한 모델을 따라하고 있다"

- 최근에는 중앙일간지에 대항하는 군소언론(지역신문)이나 대안언론 등이 많이 생겨나고 있다. 장교수도 지역신문 연합체인 '바른지역언론연대'에서 활동해온 것으로 알고 있는데 우리나라에서 군소언론이 살아남기란 쉽지 않다. 이들의 발전방향에 대해서 고민한 것이 있다면.
ⓒ 오마이뉴스 노순택
"저널리즘이라는 것은 벤처보다도 더한 기업이다. 펜과 볼펜, 노트만 있으면 돈벌이가 된다. 재료비도 거의 들지 않는다. 인터넷까지 발전하면서 많은 인력, 재화가 들어가지 않고 상품을 만들어낼 수 있다. 인간이 만들어낸 굉장히 좋은 제도라고 할 수 있다.

문제는 지역마다 기사거리가 널려 있고, 부조리가 널려 있고, 재미 있는 일이 널려 있음에도 그걸 다듬을 줄 모른다는 것이다. 기존언론들이 해왔던 것을 따라 한다든가, 비슷하게 한다거나 하면 성공할 수 없다. 지금 한국언론의 모델은 그것이 산업적이든, 도덕적이든, 사회적이든 예외없이 실패한 모델이다.

한국의 언론은 자본과 정부쪽에 박혀 있었다. 이를 증명하는 대표적인 게 출입처다. 정부쪽에 가 있다는 말이다. 정부가 무슨 정책을 발표하는 것은 항상 기사화된다. 근데 그 정책에 시민사회가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는 얘기를 않는다. 이런 시스템을 가지고는 언론이 오래 가지 못한다. 하루빨리 시민사회로 돌아와야 한다. 시민사회에서 힘을 키우면 자연스럽게 정부와 기업을 견제할 수 있고, 힘이 생긴다.

두 번째는 전문성이다. 중앙일간지 기자들은 전문성이 없어도 한다. 어느 일간지 기자라면 보도자료도 주고, 와서 얘기도 해준다. 기자의 능력이 아니라 기자가 속한 집단의 힘으로 기사를 쓴다. 기자 개인의 능력은 커다란 차이가 없다. 그렇다 보니까 그 기자가 그 집단을 떠나고 나면 직업적으로 무용지물이 된다. 외국의 경우 기자가 신문사를 나오면 얼마든지 다른 신문사를 가고, 베스트셀러 작가가 되고, 다큐멘터리 작가가 된다. 한국에서는 그런 사람이 없다. 기자 중에서 기자그만두고 나와서 제대로 뭐 하는 사람들이 있는가. 그나마 갈 수 있는 게 정계로 진출하거나 기업 홍보실 정도다. 전문성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기자로서의 전문성이라는 것은 자기가 취재하는 영역의 전문가가 되어야 한다는 게 아니라, 사회적으로 복잡하고 다원화된 사안을 독자들이 이해하기 쉽도록 가공하는 능력이다. 문제는 대안언론도, 지역신문의 경우도 전문성 없는 중앙언론을 벤치마킹 한다는 것이다. 그런 고정관념을 떨치고 작지만 지역에서 얼마든지 전문기자가 될 수 있다는 비전을 가지고 일을 해야 한다."


언론개혁의 궁극적인 목표는 '평등'

- 언론개혁의 궁극적인 지향점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우리는 흔히 언론의 자유라는 것을 권력과 자본의 억압으로부터의 탈피라고 이야기하는데 언론자유의 궁극적인 정신은 평등이다. 언론자유 만큼은 누구나 다 균등하게 누릴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기득권자들이 자신들의 기득권을 침해받았을 때 언론의 자유를 이야기한다. 그러면서 언론자유를 누리지 못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대해서는 언급도 하지 않는다. 이것은 언론의 자유의 참정신을 모르는 무지의 소치이기도 함과 동시에 위선이다. 자신들의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인간이 만든 언론의 자유를 오용, 남용하고 있는 것이다.

ⓒ 오마이뉴스 노순택
기득권에서 소외되어 있는 사람들도 언론의 자유를 느낄 수 있도록 해주는 게 진정한 언론의 자유다. 지금 언론의 자유에서 소외되고 있는 사람들은 소외계층이고, 주민들이고, 출입처 기자실에서 외면당하고 있는 군소언론 기자들이다. 그런 사람들이 지금 언론자유를 누리고 있는 사람들과 같은 반열에 올라가야 진정으로 우리가 언론의 자유에 대해서 이야기할 수 있다. 소수 특권층들(자본가, 권력층, 언론사주)만 누리고 있는 자유를 보다 많은 사람들이 누릴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이 언론개혁의 목표가 되어야 한다.

우리사회는 시민사회 등은 굉장히 앞서가고 있는데 언론이 뒤에서 잡아당기고 있는 꼴이다. 그래서 혼란스러운 것이다. 언론이 앞으로 못나가면 사회만 혼란스러운 것이 아니라 사회가 망한다. 언론도 망한다. 언론산업이 붕괴한다는 것은 국가를 인간으로 따지면 신경망이 다운되는 것이다. 단순히 언론종사자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 전체가 심각한 후유증을 겪는다. 이번 방북단 사건을 봐라. 신문기사 몇 건이 남북문제를 완전히 뒤틀어놓지 않았나. 이런 부작용을 최소화하기 위해서 언론인들이 긍지를 가지고 일할 수 있는 이런 환경을 우리가 빨리 만들어야 한다."


취재를 마치며

장교수가 저널리즘 운동에 나선 이력은 참 독특했다. 그는 대학시절이었던 86년 돌연 미국행을 결심했다. 학도호국단, 10.26, 광주항쟁 등 70년대 말부터 80년대초까지 대학사회를 규정하던 억압적인 것들로부터의 탈피를 위해 '영문학도'였던 그가 택한 것은 문학을 통한 '진실전달'이었다.

그러나 장교수는 문학작품을 쓰지 않았다. 장교수는 당시 자신의 눈에 비쳐진 미국은 문학작품을 통해 현실사회를 고발하고, 이데올로기를 전파하는 것과는 상당히 거리가 있었다고 말한다. 당시의 미국사회에는 언론의 자유가 비교적 잘 주어져 있었기 때문에 굳이 문학을 통해 이야기할 필요가 없었다는 것.

'이건 내가 공부하려는 문학이 아니'라는 판단과 함께 그는 저널리즘을 택했다. 미국이 언론자유를 얻기까지 어떤 과정을 거쳐왔는지가 그의 주된 연구대상이었다. 현재 장교수가 '영문과' 교수가 아닌 '신문방송학과' 교수라는 직함을 달게 된 것이나 '언론개혁운동'에 자주 얼굴을 보이게 된 연유가 거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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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23년차 직원. 시민기자들과 일 벌이는 걸 좋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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