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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적 시골 외가에 가면 '똥장군'이 마당 한 구석에 놓여 있었습니다. 할아버지는 가끔 똥장군을 짊어지고 밭에 거름을 주러 갔었고 전 할아버지를 따라 가면서도 코를 잡고 조금 떨어져 걸었습니다.

도시에서는 '똥 푸는 아저씨'가 있어 똥을 퍼 날랐습니다.
골목길 같이 좁은 길에서 똥을 나르는 아저씨들과 마주쳤을 때 행여 똥이 묻을까봐 조마조마 했던 기억이 납니다.

외할아버지가 돌아가신 지 10년이 지난 지금, 외가의 화장실이 수세식으로 바뀌면서 그 똥장군은 사라져 버렸고, '똥 푸는 아저씨'를 길에서 만나는 경우도 더 이상 없게 되었습니다.

사람들은 누구나 땅에서 난 음식을 먹고, 또 누구나 똥을 누게 됩니다. 그 똥이 거름이 되어 땅에 흡수되고, 또 다시 우리의 식탁에 쌀과 채소와 과일의 모습으로 올라오게 되지요.

이처럼 우리의 삶과 이 땅에 큰 역할을 감당하고 있는 똥이지만 사람들은 대부분 똥을 더러운 것으로만 대합니다. 게다가 수세식 화장실의 탄생으로 인해 우리의 똥은 제 역할을 다 하지 못하고 그 생명을 다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화학비료 한 가마니 보다는 똥 한 바가지가 우리 사는 땅에 훨씬 더 유익합니다. 똥이 뿌려진 땅에서 곡식이 자라고, 생명들이 자랍니다.
똥을 귀하게 대접하는 것이 환경을 살리는 일이라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오늘은 그 똥과 친해 질 수 있는 책 세 권을 소개하려고 합니다.
첫번째 책은 권정생의 <강아지 똥>입니다.
이미 초등학교 일학년 교과서에 실릴 정도로 인정을 받았고, 또 널리 알려진 작품입니다.

더럽고 냄새가 나는 강아지똥이 새와 병아리들에게 조차 버림을 받고 슬퍼합니다. 옆에서 위로가 되어 주던 흙덩이마저 농부 아저씨에 의해 다시 밭으로 가지만, 강아지똥은 계절이 바뀌는 동안 그 자리에 버려진 채 누워 있습니다.

하지만 이듬해 봄, 막 싹을 틔운 민들레를 만나서 자신도 누군가에게 꼭 필요한 존재라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결국 자신의 몸을 바쳐 아름다운 꽃을 피우게 되지요.

우리 가운데 그 누구라도 또 다른 누군가에게 꼭 필요한 존재가 될 수 있다는 깨달음은 우리 아이들에게 소중한 교훈이 되어 줄 것입니다.

두번째 책은 독일작가 베르너 홀츠바르트의 <누가 내 머리에 똥 쌌어>입니다.

땅 위로 머리를 내민 아기 두더지의 머리에 똥 무더기가 떨어집니다.
누구 짓인지 밝혀 복수를 하리라 다짐한 두더지는 비둘기, 말, 토끼, 염소, 소, 돼지 등 만나는 동물들마다 "네가 내 머리에 똥 쌌지?" 라고 물어 봅니다.

그러는 동안 각 동물들의 똥을 모두 직접 확인하게 됩니다.
결국 파리를 통해 범인이 뚱보개라는 사실을 알게 된 두더지는 멋진 복수를 하게 되죠.

책장을 넘길 때마다 갖가지 똥 그림을 보고 또 동물들의 똥 싸는 소리를 읽으면서 누구나 똥에 대한 거부감을 떨어 낼 수 있게 만드는 책입니다.

세번째로 소개하는 책 <똥벼락>은 지금 소개하는 책 중 제가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책입니다.

욕심장이 김부자네 머슴이던 돌쇠아버지는 30년 동안 일한 대가로 돌밭 한 뙤기를 받았습니다. 돌을 골라낸 돌쇠아버지는 거름으로 쓰기 위해 똥을 모으기 시작합니다. 집에 있는 똥은 물론이고 외출을 나갔다가도 똥이 나올라 치면 어김없이 밭으로 가서 똥을 눕니다.

어느 날 잔칫집에 갔다가 똥이 마려워 집으로 달려갑니다.
도중에 도저히 참을 수가 없어서 '싸서라도 가져가자'고 마음 먹고 똥을 싸다가 산도깨비 얼굴에 오줌을 눠 잠자던 산도깨비를 깨웁니다.
똥을 깔고 앉은 돌쇠아버지를 불쌍하게 여긴 산도깨비는 김 부자네 뒷간의 똥을 죄다 옮겨 거름으로 쓰게 해 줍니다. 덕분에 농사는 잘 되었지요.

그러던 중에 논에서 금가락지 하나를 발견하고는 돌려주러 갔다가 똥도둑으로 몰려 흠씬 두들겨 맞고, 똥을 다시 돌려 주지 않으면 곡식을 내 놓아야 할 지경에 이르게 됩니다. 그 이야기를 들은 산도깨비는 김 부자네 집에 가져온 똥의 백배를 되돌려 줍니다.

굵직한 똥자루 똥, 질퍽질퍽 물찌똥, 따끈한 똥, 걸쭉한 똥, 된똥, 진똥, 산똥, 선똥, 피똥, 알 똥, 배내똥에 개똥, 소똥, 말똥, 닭똥, 돼지 똥, 토끼 똥, 염소 똥….

세상의 모든 똥들이 갖가지 소리를 내며 하늘에서 떨어져 결국 거대한 거름산을 이루고, 그 마을 사람들 모두가 똥거름으로 농사를 지어 풍년을 이룹니다.

이처럼 똥은 욕심장이 김부자에게는 똥벼락이 되어 벌을 주지만, 착한 돌쇠아버지와 마을 사람들에게는 거름산이 되어 수확의 기쁨을 가져 다 줍니다.

민화를 보는 듯한 익살스러운 삽화와 맛깔스러운 문장이 책 읽는 재미를 더해 주고, 똥을 통해 마을 사람 모두가 행복해지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똥에 대한 편견을 버릴 수 있게 해 줍니다.

위 세 권의 똥에 관한 책을 일고 나면 똥을 굳이 대변, 용변, 큰 것 따위로 에둘러 표현하는 것이 어색하게 여겨집니다. 아이들도 세상 그 어느 것 하나 마냥 하찮고, 쓸모 없기만 한 것은 없다는 귀한 진리를 깨닫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지금보다 조금만 더 불편하고, 조금만 더 더럽게 생활한다면 우리 사는 이 땅은 훨씬 더 건강해 질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보다 많은 사람들이 똥에 대한 이 세권의 책을 아이들과 함께 읽어 보기를 권합니다.

<강아지 똥>
권정생 글
정승각 그림
길벗어린이 펴냄
1996-04-30

<누가 내 머리에 똥쌌어?>
베르너 홀츠바르트 글
울프 에를브루흐 그림
사계절 펴냄
1993-12 -20

<똥벼락>
김회경 글
조혜란 그림
사계절 펴냄
2001-02

덧붙이는 글 | 제가 소개하는 책은 대부분 6살부터 초등학교 2학년 수준의 책들입니다. 제 딸 아이들에게 먼저 읽어 준 다음, 아이들의 반응이 좋은 책들을 위주로 소개 하거든요.


강아지똥

권정생 글, 정승각 그림, 길벗어린이(19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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