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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도 고무신을 많이 신던, 그리 멀지는 않은 옛날 만들어졌겠지만 할머니한테 들은 것 중에 '고모 집 갈 때 고무신 들고 가지 마라'는 속담이 있다. 장터에서 고무신 한 켤레 사들고서 돌아오는 길에 우연히 고모네 집에 들르면 고모는 '그게 뭐유'하고 물을 테고, '고무신이지'하고 대답하면 고모는 그걸 '고모신'으로 알아듣고는 '아유, 뭐 이런 걸 다'하면서 낼름 받아들기 마련이라는 것이다. '배나무 아래서는 갓끈도 고쳐 매지 말고, 참외밭에서는 신발 끈도 고쳐 매지 말라'는 속담의 또 다른 형태일 것이다.

별로 가진 것은 없었지만, 또 남 손가락질 살 일은 말아야 한다는 것이 삶의 한 테두리였던 어른들 덕에 나도 항상 새기고는 살았지만, 또 살다보면 가끔은 이왕 갓끈을 고치고 보니 배나무 아래고, 신발 끈을 고쳐 매고 보니 참외밭인 경우가 종종 있다.

얼리면 동태, 말리면 북어. 창자는 창란젓으로, 알은 명란젓으로. 어느 구석 어떤 모양이든 그대로 먹을거리가 되는 명태가 생선 중의 팔방미인이라면 과일의 팔방미인은 단연 감이다.

나무에서 익힌 그대로 따서 깎아 먹으면 단감, 좀 삭히면 홍시, 그리 떫은 것도 깎아서 꽂아 말리면 곶감이 된다. 특히 깎아놓으면 발그레한 색깔만큼 은은한 단맛의 단감도 좋지만, 송곳니로 한 구멍만 뚫고 쪽 빨면 통째로 빨려드는, 과육이라기보다는 차라리 꿀에 가까운 홍시는 더 뭐라 설명할 것도 없다. 그리고 은은한 촛불처럼 매콤달콤한 수정과 그릇 밑바닥을 밝히는 곶감만큼 멋스런 그림도 없다.

기숙사에 살면서 공부하던 대학원 시절, 학교 울타리 안에는 감나무가 많았다. 애늙은이처럼 몇 해 안된 주제에도 꽤 사연 많은 고목의 기운을 풍기는 새까만 둥치에 장식등을 달아놓은 것 같이 발그레 빛이 도는 감. 한적한 학교였던지라 악착스레 따먹는 사람들도 없이 철 따라 열고 익고 떨어져가는 감나무는 그대로 채색수묵화였다.

하루는 구내식당에서 이른 저녁을 먹고 기숙사까지 우연히 한 선배와 걸음을 같이 하게 되었다. 그리 친한 사이도 못 되었지만, 그렇다고 좋지 않은 인상이 있을 것도 없는 사이. 말하자면 그와 나는 그냥 안면은 있되 무슨 말을 나누거나, 아니면 부러 떨어져 걷기도 이상한 애매한 사이였다. 아마 그래서 한 이백 미터는 될 길에 서먹한 공기나 떨쳐보려고 한마디 던졌다.

"와, 어느새 감이 다 익었네. 이제 맛도 들었겠는데요?"
"그런가? 그렇겠네."
역시 생각한 만큼 서먹하고 짧은 대답이었다. 그래서, 그러고 말기엔 오히려 더 민망해서 아주 내쳐 말을 늘이기로 했다.

"우와, 또 감 먹을 철이 됐구나. 저는 감이란 감은 다 좋아하거든요. 단감, 홍시, 곶감, 곶감 들어간 수정과, 감잎차…."
그 순간 묵묵히 뒷짐을 지고 걷던 그 선배가 무슨 이상한 얘기라도 들은 듯이 문득 고개를 들어 나를 봤다.
"그러나? 니 감 좋아하나?"
"예."
"그래? 그러면 니 쫌이따 내 방에 좀 온나."
"방에요? 그러죠 뭐"

그러는 사이 기숙사 입구에 도착했고, 나는 방에서 슬리퍼나 바꿔 신고는 선배의 방으로 올라갔다. 아무래도 뭔가 부자연스런 대화였고, 또 난데없는 초대였지만 혹 좋은 감잎차라도 생겨서 한 잔 주려나보다 싶었다. 그도 아니면 평소에 보아오면서 한 번 친해지고 싶다고 생각을 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면서 '똑똑똑'하고 정중히 방문을 두드렸다.

"선배님, 김은식입니다."
"응, 들어와."

선배의 방에 들어섰을 때, 그 선배는 큼직한 종이박스에서 뭔가 꺼내 여기저기 옮겨 담고 있었다. 온 방안이 훤해지도록 예쁜 빛깔의 덩어리들, 그것은 단감이었다. 선배는 얼핏 나를 올려다보더니 까만 비닐봉지에 툭툭 감을 담아 건넸다. 한 서너 개 간신히 담고 보니 벌써 터질 듯해지는, 호박만한 단감들.

"진영 고향집에서 어제 소포가 왔거든. 어떻게 나눠먹나 생각하고 있었는데, 니가 먼저 봤구나?"
"예? 아니, 소포를 받으셨다구요? 저는 몰랐는데... 선배 집이 진영이었어요?"

큰 상자로 하나라고 하지만 워낙 알이 굵어서 개수로는 몇 개 되지 않는 단감을 받고서, 그 선배는 나름대로 고민을 했을 것이다. 혼자서 다 먹자니 좀 많기도 하고, 또 마음에 좀 걸리기도 하고. 또 나누어주자니 누구부터 누구까지 몇 개씩 줄 것인지. 아마도 그렇게 하루를 밍기적거리다가 평소에는 별로 친하지도 않던 녀석이 새삼 옆에 붙어 걸으며 감나무가 예쁘다는 둥, 감으로 된 것은 뭐든지 좋아한다는 둥 비비는 모양이 심상치 않았던 것이리라.

그러고 보니 아까 기숙사 오는 길에서 나를 보던 눈빛이 그저 무심한 것은 아니었다. 뭔가 구린 구석을 걸렸다 싶은 난감함과, '먹고 싶으면 말을 직접 하지 빙빙 돌리긴'하는 비틀림이 섞여 있던 그 눈빛.

그날 나는 정말 몰랐다고, 그 선배의 고향이 어디였고 방에는 소포로 받은 감상자가 있는지 없는지 정말 몰랐다고 강변할수록 오히려 이상한 모양으로 빠져갔고, 결국 '됐다, 됐다, 가서 맛있게 먹어라'하는 선배의 손사래에 등 떠밀려 나올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어쨌든 그 날 우연히 눈에 밟힌 감나무 덕에 하나만 깎아도 룸메이트와 둘이서 한참을 먹어야 했던 단감 서너 개를 얻어먹을 수 있었다.

그래서 그 선배의 기억에는 은근히 먹을 것에 껄떡거리는 놈으로나 남았을지 모르지만, 그것이 배나무 아래였는지 모르고 갓끈을 고쳐 맨 것이고, 고모네 집인지도 모르고 고무신을 든 채 들어간 셈이었으니 별 수도 없었다.

점잖은 사람들은 '먹을 것 갖고 싸우지 말라'고도 하지만, 또 치열하지 않을 수 없는 생존투쟁을 가리켜 '밥그릇 싸움'이라고도 한다. 먹는 일은 삶은 아주 작은 부분일지라도, 하나하나 지워나갈 때 마지막까지 남아있어야 할 무언가이기 때문이리라. 그래서 먹을 것이 어설프게 끼어든 사람관계는 은근히 치열하고 은근히 서먹하며, 적잖이 민망하다.

지금도 감이 참 좋다. 딱딱하면 딱딱한 대로, 무르면 무르는 대로, 또 마르면 마르는 대로 맛이 있고 멋이 있다. 그런데 특히 번듯하게 주먹 두 개만한 단감을 만나면, 지금도 군침보다 먼저 웃음이 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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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에 관한 여러가지 글을 쓰고 있다. 오마이뉴스에 연재했던 '맛있는 추억'을 책으로 엮은 <맛있는 추억>(자인)을 비롯해서 청소년용 전기인 <장기려, 우리 곁에 살다 간 성자>, 80,90년대 프로야구 스타들의 이야기 <야구의 추억>등의 책을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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