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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새 들어 ‘살생부’라는 것이 단연 장안의 화제인 것으로 보인다.
여기서 그 진위나 내용구성에 대한 평가를 한다는 것은 분수에 어긋나는 것 같고 과연 이런 류의 ‘살생부’가 의미하는 것이 무엇인가를 생각해보고자 한다.

사마천의 사기열전 중 자객열전 편을 보면 예양편이 나온다. 진나라 사람으로 범씨 및 중행씨 밑에 있을 때 예양은 그의 진가를 발휘하지 못했으나 지백으로부터는 온통 존경과 사랑을 한 몸에 받았다.

그러나 한씨 위씨와 공모한 조양자가 지백을 멸하자 예양은 "사나이는 자신을 알아주는 이를 위해서 죽고 여자는 자신을 기쁘게 해주는 이를 위해서 꾸민다고 하는데 나는 진실로 나를 알아준 지백을 위해 죽겠노라"고 다짐하였다. 이후 예양은 성명을 바꾸고 죄인들의 무리에 섞여 조양자가 있는 궁중으로 들어가 뒷간의 벽을 바르는 일을 하면서 조양자를 죽이고자 했다.

그러나 조양자가 뒷간에 갈 때마다 가슴이 두근거리고 불안하므로 뒷간을 바르는 죄수들을 조사해보았던 바 품속에 비수를 감춘 예양을 발견하게 되었다. 이에 조양자가 심문하니 "지백의 원수를 갚으려고 하였다"고 하므로 좌우에 있던 사람들이 그를 죽이려고 하자 조양자는 "그는 의인이다. 나만 조심해서 피해있으면 된다. 지백이 멸망하고 그의 자손들도 없는데 옛날의 신하로서 복수를 하고자 하는 것은 현인이다"고 하면서 예양을 석방하였다.

하지만 예양은 또다시 복수를 위해 몸에 옻칠을 하여 문등병으로 가장하고, 숯가루를 먹어 소리를 바꾸는 등 걸인의 행세를 하였으므로 그의 마누라조차도 그를 알아볼 수가 없었다. 그러나 그의 오랜 친구는 그를 알아보고 울면서 말하길 "너 만한 재능을 가진 사람이 예물을 바치어 조양자의 신하가 된다면 조양자는 반듯이 너를 가까이 하고 총애할 것이니 그때 가서 네가 하고 싶은 데로 하면 오히려 일이 쉬울 것 아니냐?"하였다.

이에 조양자는 "예물을 바치고 신하가 되면서 주인을 죽이고자 한다는 것은 두 마음을 품은 것이다. 지금 내가하고 있는 것이 매우 견디기 힘든 고통이지만 그렇게 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은 천하후세에 남의 신하가 되어서 두마음을 품어 주인을 섬기는 자를 경계하고자함이다"고 대답하였다. 그 뒤 얼마 안 있어 예양은 조양자가 지나는 다리 밑에 숨어서 조양자의 목숨을 노리고 있었으나 또다시 잡히는 신세가 되었다.

조양자가 말하길 "그대는 일찍이 범씨, 중행씨 밑에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이들을 멸한 지백에게 예물을 바쳐 섬긴 것이 옳은 것인가?" 예양이 말하길 "범씨와 중행씨는 나를 범상한 사람으로 대했소 그러나 지백은 나를 국사로서 대하였소. 그래서 나는 국사로서 보답을 하고자 하는 것이오."

조양자 말하길 "아- 예양이여 그대가 지백을 위해 다한 명성은 이미 목적을 이루었다. 나 또한 그대를 위해 용서하는 것도 충분히 하였다. 이제 그대는 각오하는 것이 좋겠다."

예양 말하길 "명군은 사람의 아름다움을 덮어 숨기지 아니하고 충신은 이름을 위해 죽는 의로움이 있다고 하는데 그대의 너그러움은 천하 사람들 중 칭찬하지 않는 자가 없소. 이제 나도 두 말 없이 죽음 앞에 머리를 바치고자 하니 바라건 데 그대의 의복이라도 베어 복수의 마음을 청산한다면 죽어도 원한이 없겠소. 무리로 청하는 것은 아니며 본심을 말하는 것뿐이오"

이에 조양자는 크게 감탄하여 그의 옷을 예양에게 주자 예양은 칼을 뽑아 세 번 뛰어올라 베고는 "나는 이 사실을 지하의 지백에게 보고하리라" 하고는 마침내 칼에 엎어져 자살하였다. 이날 조나라의 지사들은 이 소식을 전해듣고 통곡하여 울지 않는 자가 없었다.

적절한 비유인지는 모르겠으나 자기 당의 대의원뿐만 아니라 국민선거인단에 의한 경선으로 뽑힌 대통령후보자를 두고 후보를 교체하자고 하거나, 월드컵인기가 있다고 해서 정당의 실체조차도 없는 사람과 통합을 하자고하거나, 통합을 한다면 자기당의 후보로 통합하는 것이 아니라 정당의 실체조차 없는 사람과 정당을 만들기 위해 탈당하거나, 자기 당의 간판으로 국회의원에 당선된 전국구의원의 신분임에도 불구하고 다른 당으로 가기 위해 제명을 요구하거나, 이러한 와중에 중립이라는 이름을 빌어 양다리를 걸쳤던 것은 모두다 두 마음을 품은 자의 행태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물론 이들에게도 할말은 있을 것이다. 어떠한 일이 있더라도 한나라당의 이회창 후보에게 정권을 뺏겨서는 안 되겠다는 일념 하나 때문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억울하게 당하고만 있다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보통의 상식을 갖는 사람으로서 이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그러기 때문에 ‘살생부’와 같은 것이 등장했던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잘못된 과정을 그대로 지울 수는 없다"는 여론의 한 흐름이 아닌가 생각한다.

이제 선거는 끝이 났다. 우여곡절 끝에 노무현 후보의 기적 같은 당선으로 끝이 났다. 선거승리의 주체가 민주당이냐 아니냐를 따진다는 것은 부질없는 짓이며, 원칙이 지켜지는 변화와 개혁의 세상을 바라는 국민 모두의 승리라고 생각한다.

따라서 민주당 또한 선거승리의 주체가 되기 위해서는 하루빨리 그들 내부의 과오를 청산하고 변화와 개혁의 주체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끝없는 ‘살생부’ 논쟁으로 정력을 낭비하고 새 정부 출범에 지장을 줄 것이 아니라 원칙 있는 승리를 마무리하여야 할 때라고 생각한다. "소수집권여당인 처지에 감히 우리를 어찌하겠나?"의 배짱이나 "소수집권여당인 처지에 감히 그들을 어찌할 수 있겠는가?"의 망설임이나 "한 칼에 쓸어버리자"는 분노보다는 진정한 자기고백과 자기뉘우침을 통해서 용서를 구하고 관용을 베풀어야 할 때라고 생각한다.

"천하 후세에 남의 신하가 되어 두마음을 품어 주인을 섬기는 자를 경계하고자함이다."는 예양의 절규를 교훈 삼아 스스로에게 매운 채찍을 가해야 할 때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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