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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미년, 설날 부모님이 계시는 시골에 가질 못할 사정이 있어서 서운동 성당(인천, 주임신부 김영욱)에 찾아가 미사에 참여했다. 이날의 설날미사는 평상시 가톨릭의 전형적인 미사전례와는 사못 달랐다. 신부님이 전통적인 로마가톨릭의 제복을 입지 않고 한복차림에 영대만 걸치고 나오신 점. 평상시는 미사집전을 위한 제대상 앞에는 수려한 꽂단장 이외의 다른 잡물을 놓지 않는 것이 전례상 규칙인데 이 날은 온갖 음식과 과일로 진열된 차례상(제상)이 마련되어 있는 점. 미사전례의 진행 또한 가톨릭의 일상적 미사예절과는 달리 미사 도중에 연도(망자를 위한 곡송)를 진행하면서 전 신자들의 조상에 대한 차례가 1시간 여 동안 진행된 점이 너무 달랐다.

미사전례 도중에 이 날 참석한 전 신자는 가족 단위로 제대 앞 차례상 앞에 나와 ‘가족대표의 분향 → 잔 올림 → 가족 모두 절하기’ 순서로 차례를 지냈다. 어느 가족은 할아버지, 할머니, 손자 할 것없이 모두 나와 차례를 지내기도 했다. 젊은 사람들이 젯상 차리기가 어렵고 귀찮다해서 사라질 위기에 있는 전통문화의 하나인 제사문화가 서양적 가치의 대표적 문화라고 할 수 있는 가톨릭의 미사예절 속에서 부활되고 있었다.

다른 나라의 문화도 마찬가지이겠지만, 한겨레공동체 사회는 특히 지리적 특성 때문인지 문화의 중복현상이 심하다. 우리 사회는 신석기 시대부터 영혼불멸 신앙있었다. 이와 관련하여 청동기시대에는 고인돌문화가 생겨난다. 삼국시대 불교가 들어와서는 고인돌 무덤이 있었던 자리에 고인돌을 밀어내고 사찰을 건립한 곳이 많이 생겨난다. 그리하여 토속의 고인돌 신앙과 외래의 불교신앙이 중복되어 불교는 불교 본래의 이념에다 우리의 토속적인 샤머니즘을 섞은 개량된 불교신앙이 자리잡게 된다. 이렇게 우리의 토속신앙과 중복된 불교는 점차 토착화 되면서 부처님이 계시는 금당 뒤에 우리의 토속신을 숭앙하는 칠성각, 삼신각도 짓게 된다. 이후 불교신도들이 사찰에 가면 대웅전에서 부처님께 경배한 뒤 칠성각, 삼신각도에 들러 절을 함으로써 우리네 조상신도 경배하였다. 이러한 우리의 샤머니즘과 불교의 문화적 중복현상은 고려시대에까지 지속된다. 조선시대에 들어오면 성리학이 국가의 이념으로 자리잡게 되고 유학의 배움과 성현에 대한 봉사(奉祀) 목적으로 향교나 서원이 설립되고, 이들 학교들이 불교의 사찰을 밀어내고 그 자리에 대신 들어서게 된다. 이렇게 해서 이번에는 불교와 유학의 문화적 중복현상을 보이게 된다. 그 대표적 서원이 우리나라 최초의 서원인 영주의 소수서원이다. 근대에 들어와서는 서양적 가치관인 크리스트교가 들어와서 기존의 토속신앙인 샤머니즘, 불교, 유학의 이념과 크리스트교 사상이 문화적 중복 현상을 보이게 된다.

이렇게 신앙이란 태생지를 떠나 어느 지역으로 흘러들어가든 간에 정착지역의 토속신앙과 문화적 중복을 통하여 토착화해 가기 마련이다. 만약에 그 지역의 토속신앙을 거부하고 태생지 신앙 본래의 이념만을 주장한다면 그것은 문화우월주의에 의한 문화침략일 수밖에 없다, 우리가 지금 서양가치관인 크리스트교를 서양문화의 침략으로 보지 않으려 하는 것도 이러한 맥락에서 평가하기 때문이다. 설날 가톨릭의 미사전례에서 조상들에 대한 합동 차례상이 마련되고 조상에 대한 설차례 예절이 집전되는 것을 보니 가톨릭이 토착해 가고 있는 모습이 보인다. 진정한 종교의 본질을 보는 것 같다.

성경 창세기(1장 18절)에 “하느님께서 “보시니 참 좋았다” 라는 구절이 있다. 필자의 생각으로 이 말이 곧 크리스트교 진리의 핵심이 아닌가 생각된다. “하느님께서 보시니 참 좋았다”는 가톨릭 신앙의 진수로 받아들여진다. 크리스트교 신자들의 모든 행위와 생각과 이념은 “하느님 보시기에 좋으면” 그만 아닌가. 크리스트교 신앙이 생장지를 떠나 여행지에 도착하여 그곳의 문화와 접목하면서 도착지의 토착주민들에게 만족을 준다면 그래서 하느님 보시기에 좋으면 그것으로 신앙이 갖는 본래 목적은 달성되었다고 본다. 오늘날 신앙이 사회전체에 기능하지 못하고 다만 종교적, 윤리적 측면에서만 역할을 할 수밖에 없다면, 지나치게 태생지 신앙의 본래 이념만을 고집할 필요가 없다고 본다.

그런 면에서 이번의 인천 서운동 성당의 김영옥 주임신부님이 - 천주교인천교구와 사전 교감이 있었는지는 모르나 - 한복 제의(祭衣)의 착용, 합동차렛상 마련, 미사 도중 계.응의 연도가 진행되는 가운데 전 신자의 가족단위 조상에 대한 절(분향- 잔올림-, 절하기) 하기 등은 획기적 조치들로 보인다. 또한 축문과 함께 미사를 모두 마친 후 전 신자가 마침절을 하고 음복을 함께 함으로써 공동체사회 전체의 설잔치를 벌였다. 정말 보기에 좋았다. 어린 아이, 어른, 남자, 여자 모두 차별없이 평등한 분의기 속에서 이루어진 잔치였다. “하느님께서 보시기에 참 좋았다.” 또 합동축문(조상님께 드리는 기도)에서 “오늘의 저희를 있게 하시고 항상 염려해 주시는 조상님, 주님의 보살핌으로 저희가 설을 맞아 차례를 올리며 기도드립니다. 이 맑은 술과 여러 가지 음식을 장만하여 드리는 저희 정성과 사모하는 마음을 받아주소서, 저희는 언제나 조상님을 기억하여 이 예(禮)를 올리오니 천상에서 모든 천사와 성인과 함께 연원한 행복을 누리시고 저희가 주님의 뜻에 따라 서로 사랑하며 화목하게 살아가도록 하느님께 빌어주소서” 라는 ‘조상님께 드리는 기도문’의 내용은 크리스트 문화와 우리 토속문화가 절묘하게 조화된 종교사상이라고 평가할 수 있다. 이것을 가지고 누가 이단이라 할 수 있겠는가. 자기 조상을 부정하는 행위는 정통이고, 자신의 조상을 숭앙하는 행위는 이단이라고 말하는 것은 억지다. 조상에게 제사드리는 것을 미신으로 몰아붙이는 것은 서양문화 우월주의의 시녀다. 자기 조상을 모독하는 행위다. 우리 현실에 처한 정서를 인정하자. 근대화가 되면서 우리는 우리 것을 너무 잃어버리고 산다. 이러한 현실 속에서 이번의 서운동 성당의 미사전례 중에 조상에 대한 합동차례를 드리는 모습은 “하느님 보시기에 참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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