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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에 서운동 성당이 있다. 그곳에 김영욱 신부님이 계신다. 신부님께서는 청소년 사목을 순수한 신앙생활에만 두지 않고 일상생활과 연결하여 생각한다. 김 신부님은 매 학기 때마다 방학을 이용하여 그곳 주일학교 중고등학생들에게 신앙학교 대신에 주기적으로 역사기행을 함께 하신다.

문화유적지에 대한 역사기행을 한 지도 벌써 3년이 넘어섰다. 학생들에게 견문도 넓히고 역사의식도 심어달라는 신부님의 요구로 나도 동행하고 있다. 고창의 고인돌 떼무덤을 시작으로 백제, 신라의 무덤문화, 그리고 멀리 만주의 고구려유적지(무덤, 벽화, 산성)도 돌아보았다.

이번 겨울방학 때는 경주 남산에 있는 신라의 불교문화 유적지를 답사하였다. 경주에 가는 길에 언양 울주 대곡리의 100만 년 전에 형성된 단층협곡과 그곳에 화석으로 남아 있는 공룡 발자국, 그리고 5000년 전 청동기시대 사람들이 바위에 조각해 놓았다는 바위그림(암각화)도 함께 관찰하였다. 김 신부님이 그곳 청소년들에게 이렇게 역사 토론기행을 시키는데는 나름대로 우리 사회를 바라보는 시각이 남다르기 때문으로 보인다.

1970년대만 하여도 우리 사회는 대가족제도이었고 농업을 생계수단으로 하는 공동체사회였다. 이러한 공동체사회에서는 농업 노동력이 없는 노인들은 아이 돌보기을, 노동력이 있는 부모는 생업을 영위하면서 3대가 한 올타리 안에서 가족공동체를 구성하며 살아갔다. 때문에 아이들의 교육은 자연히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맡았고 교육의 장(場)도 가정이 주무대가 되었다.

그리고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교육매체로 삼는 주교재는 옛부터 전해져 내려오는 옛날 이야기였다. 옛날 이야기 속에는 우리 조상들의 지고한 심성이 서려있다. 또 생업을 개척해 간 억척스런 삶의 모습도 그려져있다. 즉 먹거리나 생활터전을 둘러싸고 고민했던 삶의 흔적과 이를 극복해 갔던 선조들의 지혜와 믿음도 고스란히 함축되어 담겨있다.

옛날 이야기를 통하여 전달되는 이야기 속에는 우리 한민족공동체가 생긴 이래 구전으로 전승되어 내려오는 삶의 모습, 곧 민간신앙, 위인의 이야기, 민중들의 삶, 부처님 기적 등 흥미진진한 내용들이 풍부하게 들어있다. 이렇게 옛날 이야기는 우리 선조들의 역사적 삶의 경험을 담고 있다. 이러한 우리 선조들의 역사적 경험이 할아버지와 할머니의 옛날 이야기를 통하여 후손들에게 전승되어 왔다.

그런데 어느날 갑자기 산업화라는 이름 아래 공동체가족은 핵분열되고 가정교육의 담당자였던 할아버지와 할머니도 멀리 떨어져 살게 되고, 부모는 직업일선에서 먹고 살기에 바빠서 자식교육에 신경을 쓸 겨를이 없게 되었다. 그리하여 인간의 초보적 정서교육의 장은 가정이 아닌 유아원과 유치원으로 바뀌어 버렸다. 그리고 입시위주의 모순된 제도교육과 비뚤어진 부모들의 교육열 때문에 아동과 청소년들은 학교에서 돌아오면 또 사설학원에 겹치기로 보내진다.

이렇게 되다보니 이 나라의 모든 교육과정은 정겹고 자비스런 할아버지와 할머니 그리고 부모 대신에 유아원의 보모, 유치원 선생, 학원의 강사들이 에스컬레이터식으로 맡게 되었다.

이들 기관에 소속되어 있는 교육자들은, 모두가 그렇지는 않겠지만, 교육철학과 신념 그리고 학습이론이 사뭇 다르다. 다시 말하면 교육적 사명감과 주체적 천하관이 정규학교 선생님들보다는 떨어진다. 관허 사설학원은 명분만 사회교육이지, 자본의 논리에 따라 시험성적을 올려주는 기능교육을 통하여 자기자본을 축적해 가는 곳이다. 이런 사설학원은 진정한 의미에서 인성교육과 문화전통을 교육하는 장이라고 할 수 없다.

지금 한창 자라나고 있는 초중고등학생들은 들과 물로 그리고 산과 하늘로 뛰고 날아다니면서 건전한 정신과 건강한 육체를 성장시켜 나가야 할 나이이다. 이러한 학생들이 잠자는 시간만 빼고 온종일 딱딱한 책걸상에 앉아 오로지 시험만 잘 보면 되는 기능교육을 받고 있으니 이들 피교육자는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심신이 지칠대로 지쳐있고 피곤하다.

이러한 현실이고 보니, 이들 아동과 청소년들이 교육을 통하여 장차 무엇을 인생의 목표로 삼겠는가? 인격수양인가, 물질만능인가. 이러한 교육 현실 속에서는 말할 필요도 없이 문화전통과 토론문화는 교육되지 않는다. 부지런히 겹치기로 학원을 다녀야 하는 바쁜 하루 일정 때문에 아동과 청소년들에게는 생활의 여유가 없다. 부모의 욕심대로 이 학원 저 학원을 바삐 왔다갔다 하면서 부모의 ‘공부에 대한 불안한 심리’를 안정시켜드려야 한다.

공원의 의자나 공터의 잔디에 앉아 여유롭게 대화를 나눌 짬이 없다. 대화라고는 고작 학원을 이리저리 옮겨다닐 때 걸어가면서 틈틈이 이야기하는 것이 고작이다. 그래서 학원에 안 다니면 친구가 없다. 이러니 우리나라는 애초부터 토론문화가 형성될 까닭이 없다. 우리의 전래되어 내려오는 의복문화, 음식문화, 변소문화, 교육문화 등 문화전통이 교육될 리가 없다. 그러니 학원교육을 통하여 우리의 아동, 청소년들에게 형성되는 교육효과는 오로지 남을 이기는 경쟁적 사고요, 여기에 토대한 투쟁적 인간이 길러질 뿐이다.

그리고 교회다니는 학생들은 교회까지 와서 또 교리교육을 받는다. 지겹도록 교리강의를 듣어야 한다. 스스로 사고할 시간이 없다. 이렇게 성장한 청소년들은 잠재된 식민지 의식(강한 자와 그들 문화에 잘 길들여지는 종속적 사고)을 자기의 정신적 고향으로 착각하며 살아가게 된다.

제 것을 잊어버리고 사는 아동과 청소년이 과연 주체의식을 가질 수 있으며, 주인의식을 갖지 못하는데 자기 정체성을 갖는 정상적 인간으로 바로 설 수 있을까? 이렇게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 청소년들의 모습은 위험수위에 와 있는데도 국가, 사회, 부모 모두 이 심각한 교육현실에 대하여 수수방관만 하고 있다. 이러한 가슴 아픈 현실을 걱정하고 있던 김 신부님이 생각해 내고, 시작한 것이 바로 청소년 역사 토론기행이다.

나로서는 이렇게 생활 속의 신앙을 강조하시는 신부님께 감사하고 싶다. 오늘날은 부모들의 지나친 욕심과 잘못된 제도교육의 모순으로 우리 아이들의 교육 담당자가 부모(조부모 포함)와 학교 교사의 손에서 떠나 각급 학원의 강사인 제3자에게로 옮겨졌다. 이들 제 3의 교육자들에 의한 교육은 자본의 논리에 기초된 시험성적 올리는 기능주의만 강조될 뿐이다. 그리고 서너개씩 학원을 겹치기로 다니다 보면 시간에 대한 강박관념 때문에 정서적으로 불안하게 되어 정작 학교에 가서는 정신적 산만으로 이어지고 학습의욕을 잃고 만다.

이러한 고된 교육현실 속에 놓여 있는 우리 청소년들에게 역사 토론기행을 시킴으로써 잠시나마 겹치기 학원공부을 떠나 강요된 공부걱정도 덜고 자기들만의 공동체생활을 하게 함으로써 토론문화도 익히고 인간의 정(情)도 느끼게 해준다.

그리고 현장에서 직접 학습되는 역사지식을 통하여 과거와 현재의 만남, 현재를 통한 미래의 전망을 함께 하게 해준다. 이것은 분명 체험교육의 진수라 하겠다. 또 하루의 역사기행을 마치고 저녁시간에 당일의 답사 내용을 정리하면서 “미래신문”을 편집하게 한다. 이를 통하여 자신들이 살아갈 미래의 사회모습을 그려보게 하는 시간을 갖게 한다.

이것은 청소년들에게 풍부한 상상력을 길러주는 가치교육의 진미라고 생각된다. 이러한 참다운 체험교육과 가치교육을 학교가 아닌 교회에서 시키고 있다는 점에서 아이러니컬하게도 우리 교육의 현주소가 주객전도되지 않았나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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