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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주
얼마 전 나온 책 <서준식의 생각>(서준식, 야간비행, 2003)에는 인권하루소식, 사람사랑, 한겨레 등에 기고한 인권 현안을 다룬 글들을 비롯, 법정 모든 진술과 감옥에서 딸들에게 보낸 편지가 담겨 있다.

재일교포 2세로 태어나 한국에 유학온 서준식씨는 71년 '유학생간첩단 사건'으로 체포돼 7년형을 받았고, 형기를 마쳤지만 '사상전향'을 거부했다는 이유로 다시 10년간의 옥살이를 해야했다. 그 시간을 '사람의 생각은 누구도 규제할 수 없다'는 신념으로 지킨 그는 옥에서 나와 장기수문제를 알리는 일에 뛰어들었고, 인권운동가로 이름을 알리게 됐다. 93년 인권운동사랑방을 꾸린 그는 지지난해 인권운동사랑방 대표직을 그만둔 뒤로는 인권운동연구소에서 인권운동의 이론마련에 힘을 쏟고 있다.

보안관찰법, 장기수 문제, 강기훈 유서대필사건, 국가보안법 제7조, 이근안, 97년 '한총련 탈퇴'에 대한 입장, 백인위원회, 여호와의 증인…. 88년부터 2003년까지 그의 인권운동을 담은 <서준식의 생각>은 한국의 인권운동과 그 주제에 대한 고찰이기도 하다. 우리 모두를 뜨끔하게 만드는 '생각'을 가진, 아니 '행동'을 보여준 서준식씨를 만나 녹록치 않은 삶이 담긴 그의 책에 대해 들었다.

▲ <서준식의 생각>, 야간비행, 2003
ⓒ 야간비행
p9 운동가의 글쓰기에 대하여

"글의 가치에 대한 믿음이 지나칠 때 그것은 미신이 된다. 즉 글이 세상을 바꾼다는 생각은 위험한 미신일 수 있다. 그것은 따지고 보면 행동하지 않는 지식인이나 글쟁이들이 만들어내는 미신이다. 우리가 사는 세상에는 기본적으로 폭력의 원리가 관철되어 있으며 글로써 사회가 변할만큼 이 사회는 아직 신사적이지도 이성적이지도 않다. … '진보적' 글쟁이들의 글이란 '금 안에서만 노는' 글이다. 이성이 폭력적 구조의 벽에 부딪치는 지점부터는 어쩔 수 없이 '입'이 아닌 '근육'이 현실의 어둠을 뚫고 가야 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이 사실을 망각하는 모든 글쓰기는 미망에 지나지 않는다."

<서준식의 생각> 머리말에 담긴 글이다. 소위 '진보적 지식인'뿐만 아니라, 그들에 현혹됐던 마음들 역시 뜨끔하게 한다. 그가 담담한 어조로 글만 쓰는 지식인들을 비판할 수 있는 것은, 이 책에 실린 그의 글들은 그가 하는 '인권운동' 그 자체로 나온 것들이기 때문이다. 그 이상, 그 이하의 글쓰기도 그에게는 없다.

"사회가 지식인 중심인 것이 못마땅했습니다. 후배들의 노력이 빛을 못 보는데 대한 아쉬움도 있었고. 예를 들어, 우리 단체의 활동가들은 뛰어난 활동능력을 가지고 있지만 글을 못쓰고, 그럴듯한 직함이 없다는 이유로 무시받는 겁니다. 지식인 중심으로 진보운동이나 변혁이 이뤄진다고 착각해서는 안됩니다."

'지식인의 글쓰기'에 대한 서준식씨의 입장은 단호했다. 무엇보다 그는, 글쓰기나 정책생산이 '잘 나가는 운동'이 되고, 바닥에서 활동하는 활동가들이 이에 열등감을 느끼게 되는 현실을 안타까워했다. 역할의 차이인 뿐인 것을 능력이나 지성의 차이로 평가하는 실. '입'이 '근육'보다 숭상받는 사회의 병폐인 것이다.

p19 우리 시대 인권을 위한 변명

'우리 시대 인권을 위한 변명'은 서준식씨가 99년 재판부에 제출한 진술서다. 서준식씨는 97년 열린 인권영화제에서 제주4·3항쟁을 다룬 영화 '레드헌트'를 상영했다는 이유로 구속됐다. '레드헌트'가 '이적성'을 가진 작품이라는 것. 그러나 이 영화는 이전 부산영화제에서 심의를 거쳐 상영된 작품이었다. 서준식씨는 자신을 '레드헌트 상영'으로 잡아넣은 것은 '구실'이라 말한다.

"정작 잡혀갔을 때 검찰이 캐물은 것은 제가 쓴 세편의 칼럼의 의도였습니다."

97년 한총련 이적규정 후 많은 학생회장들이 한총련을 탈퇴했다. 일부는 준법서약서를 쓰고, 탈퇴하고 나와서 활동하면 되지 않겠느냐고 했지만, 그가 보기에 거부해야할 것은 국가보안법 굴레 그 자체였다.

서준식씨는 한총련을 해체하려는 음모에 맞서 '지배세력이 재정의한 언어를 다시 원래의 뜻으로 재재정의하는데 전력을 기울여야 한다'며 탈퇴를 거부하고 기꺼이 감옥을 가는 정신의 젊음을 지키라고 말했다. 이것이 '괘씸죄'로 걸려 잡혀 들어간 것이다.

p 97 나, 사회주의자

서준식씨는 '해야할 말을 하지 않는 것', 혹은 '하지 못하는 것'을 경계한다. 그가 '괘씸죄'로 걸려들어갔던 까닭도 그것이고, 재일교포시절 자신이 '조센징'임을 고백한 이유도 그 때문이다. 그는 '사회주의'가 여전히 '빨갱이' 취급을 받던 2001년, 자신이 '사회주의자'임을 담담히 고백했고, 월드컵 열풍이 전국을 휩쓸 무렵 '붉은 악마를 부추기지 말라'는 글을 써 인권운동사랑방 사이트를 위기로 몰아넣었다.

"당시 한나라당 김만제 의원이 '전교조에 사회주의 세력이 숨어있다'는 발언을 했을 때 전교조는 '아니'라고 반박했습니다. 하지만 당시 필요한 것은 사회주의에 대한 왜곡을 벗겨내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사회주의자 인권운동가'이다. 근대 자본주의를 전제로 한 '인권'과 '사회주의 인권운동'은 부딪히지 않을까.

"1948년의 세계인권선언은 당시를 반영한 선언입니다. 당시의 '인권'은 사적소유권, 자유권을 기본으로 하고 있습니다. 생존의 권리를 지향하는 진보적 인권운동은 자본주의 체제를 지양하며, 인권의 개념을 다시 짜나갈 수밖에 없습니다."

p107 스스로 고통이 되는 운동을

그래서 그는 90년대 이후 나타나고 있는 운동의 체제내화를 경계한다. 정부보조와 기업보조를 받는 운동단체는 올곧은 자기의 목소리를 낼 수 없는 것이다.

"단체가 정체성을 지키고 돈의 노예가 되지 않기 위해서는 운동에서 돈을 모으려 해서는 안됩니다. 돈을 받고 하는 운동은 운동이 아닙니다."

이러한 원칙이 '폐쇄적'이라는 오해도 사게 하지만, 삶을 위한 노동과 삶을 위한 운동을 병행해야 한다는 것은 '원칙적으로' 옳다.

그는 지금 '절필상태'라고 한다. '활동가로서 글쓰기'를 해온 그는 현장에서 물러난 지금 글쓰기의 필요를 갖지 못하는 것이다.

"활동해야만 글쓸 자격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글쟁이가 되어버립니다. 어쩔 수없이 쓰게될 때가 있을지 모르겠지만. 이 책이 아마 저의 마지막 책이 될 겁니다. 책을 쓰지 않더라도 할 일은 얼마든지 많이 있습니다."

딸들에게 보낸 편지에서 따스한 감동을 느끼고, 그가 기록한 치열한 인권운동의 현장에 전율을 느끼기에 조금 아쉽지만, 아마 그럴 것이다. 우리가 존경하는 '서준식'은 '저자' 서준식이 아닌 '운동가' 서준식인 것이다.

"쉽게 눈에 들어오는 지름길을 버려야 합니다."

오로지 '글쓰기'만 하는 작은 신문사 기자의 책갈피에 그가 조심스럽게 새겨준 말이다.

서준식의 생각

서준식 지음, 야간비행(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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