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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20일 경기도 교육청은 2003년도 1년간 의정부시 모여고가 실시한 불법 모의고사에 대한 조사결과 잘못이 있음을 지적하고 주의조처 했다고 문제제기자에게 통보했다.

내용인즉슨 학교장 경위서를 받고 주의조처 했다는 것이다. 학습권 침해, 공공장부허위기재, 교사품위손상, 영리행위 보조 등 혐의 내용에 비해서 '처벌'이란 말이 무색한 조처였다. 이는 전국적인 현상인 불법 모의고사 강행에 대한 도교육청 차원의 대책이 없음을 증명하는 것이고 징계의 형평성을 잃은 조처라는 사실을 단적으로 보여주었다고 볼 수 있다.

학력, 학벌, 대학서열화 구조 속에서 우리나라 고교의 교육이 입시 위주로 흐르는 것은 단기간에 어쩔 수 없다. 너무나 과하여 비교육적 관행으로 굳어지는 데 우려를 금치 못한다. 의정부시 이 고등학교는 지난 1년간 사설입시기관에서 실시하는 모의고사를 1학년 1회, 2학년 2회, 3학년 4회 실시했다.

실시 내용을 보면 이해할 수 없는 구석이 많다. 보름 뒤 도교육청이 실시하는 수능형 학력평가가 예정이 돼 있는데 무리하게 시험을 본다거나, 학원에 학생들을 보내 시험보게 하거나, 학교에서 수업시간에 시험을 보고 실제로는 정규 수업을 한 것으로 각종 장부에 허위기재를 한다거나, 담임 교사들이 시험 비용을 걷어 주는 식이다. 이는 보기에 따라서는 특정업체 수금원으로 교사들이 전락했다고도 볼 수 있는 대목이다. 특히 시험 미응시자 40여명을 도서실에 모아 방치하여 학습권을 침해한 대목에 이르러서는 문제는 더 심각해진다.

학원인가? 학교인가?

이처럼 불법과 무리한 학사 운영, 잦은 시험에 대해 교내에서 이의 제기가 없는 것도 아니다. 그러나 학교장과 일부 부장 교사들의 독단으로 시험이 강행되기 일쑤였다. 이들의 논리는 제7차 교육과정이 수요자 중심이기 때문에 학생과 학부모들이 원하는 대로 한다는 것인데 이런 식이라면 음악·미술·체육·가정·컴퓨터 같은 수능시험 과목이 아닌 것은 다 빼도 된다는 것인지, 학교를 아예 학원화하자는 것인지 답답한 노릇이 아닐 수 없다.

2002년 이 학교 학교장은 위탁급식을 직영으로 할 것을 주장한 학생과 교사들의 의견을 무시하고 현 위탁 급식 업체를 그대로 3년간 수의계약한 바 있다. 대체로 일반적인 학생과 학부모의 요구는 모르쇠로 일관하면서 특정한 사안에는 수요자의 요구를 들이대는 것은 논리의 일관성이 없는 것이다.

수요자의 요구를 무시하자는 게 아니라 수요자의 요구가 교육적이냐 비교육적이냐를 판단하는 것이 학교의 중요한 일인 것이다.

현재의 잦은 모의고사는 '학벌구조에 편승해서 학생과 학부모의 불안 심리를 간파한 사설입시기관들의 돈벌이를 위한 과장 행위’에 다름아니다. 일간지나 학원 등 사설 입시기관들이 경쟁적으로 자주 실시하는 모의고사는 고교 교육을 파행으로 몰고 학생에게는 과도한 시험 스트레스와 만만치 않은 비용 등 문제가 심각하다.

키 크고 싶다고 매일 키만 재고 있는 것은 우스운 일이다. 크고자 하는 스트레스가 오히려 자람을 방해할 것이다. 매일 키 재고 서 있기보다는 운동장에 나가 뛰고 걷고 운동하는 것이 제대로 된 처방이다.

그렇다고 지금의 경쟁입시에서 모의고사를 완전히 부정하는 것이 아니다. 교육부도 이런 한계와 필요성으로 각 도교육청과 함게 자체 모의고사를 연간 1, 2학년은 2회, 3학년은 4회 보고 있다. 이 때문에 수험생은 늘 불안하다. 자신의 위치가 어디쯤일까를 늘 고민하고 있다.

그렇다고 한 달정도에 그 위치가 크게 뒤바뀌는 게 아니다. 묵묵히 공부하면 되는 것이다. 그런데 돈에 눈밝은 사설 입시 기관과 입시장사꾼들이 이를 가만 놔둘리 없다. 학생과 학부모의 불안감을 부추겨 시험을 보게 유도하는 것이다. 학교 교사들은 이런 점을 간파하고 학생들을 안정시키고 꾸준히 흔들리지 않고 일관성 있게 공부할 것을 지도해야 하는데 이에 쉽게 넘어가 버리는 것이다.

전국의 고교에서 모의고사비용으로 나가는 돈만해도 연간 2000개 학교에 재학중인 178만명 가운데 1,2,3학년 평균해서 일년에 3번 본다고 가정하면 비용이 373억8000만원(178만명* 3회 * 7000원)이다. 비공식까지 합치면 어마어마한 액수이다.

위의 학습권 침해 이외에도 학교(교무)일지와 출석부 등을 허위기재하고 흔히 학생들이 기록하는 학급일지에 버젓이 정상수업이라고 쓰게 했는데 옳은 길을 가르치고 모범을 보여야 할 학교와 교사가 학생들에게 하지도 않은 수업을 했다고 기록하게 한 것은 변명의 여지가 없지 않을까?

이번 일에 대해 경기도 교육청은 실제 현지 조사를 실시했는지 묻고 싶다. 전교조 교사들은 수업시간표 바꿔가며 당연한 권리행사로서의 연가를 내고 신고된 집회에 참석했음에도 이를 문제삼아 횟수를 합산해 견책 등 중징계를 내린 반면, 학습권을 침해하고 각종 장부에 허위기재하며 학생들에게 거짓을 행하게 하고 담임교사를 사설학원 모의고사비 수금원으로 만든 학교장과 교감 학년부장에게는 다른 징계 잣대를 들이대고 있는 것이다.

이 일 이후 12월 23일 열린 이 고등학교 교무회의에서 학교장과 학생부장 3학년 부장이 이구동성으로 "학생들이 시험을 보자고 하면 내년에도 얼마든지 보겠다. 내부에서 이런 문제를 제기하는 교사는 나쁘다"라며 오히려 문제를 제기한 사람을 비판했다고 한다.

대학서열화 때문에 어쩔수 없이 모의고사를 자주 볼 필요가 있다면 교육부가 직접 출제, 평가하도록 해 이런 문제를 잠재우는 것이 더 바람직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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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가 진정한 민주주의에 이르지 못했기 때문에 합법적으로 개개인의 학습권을 침해하는 국가주의 교육시스템을 하루빨리 바꾸고 학벌구조를 타파해 세상 어디에서나 참배움터를 이루는 스스로 배움질을 위해 애쓰려 함. 기사의 방향은 학벌학력 타파, 대안교육, 졸업증명제도 없애기, 학교의 비민주적 관행, 학생 권리와 자치를 억압하는 제도 개혁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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