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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교의 성경에 보면 이런 구절이 있다. "하루는 동네사람들이 간음한 여자를 예수한테 데리고 와서 유대의 율법대로 돌로 쳐 죽여야 할까, 말아야 할까를 예수의 판단에 맡겼다. 이때 예수는 율법학자와 바리사이파의 간계를 간파하고 ‘너희 중에 누구든지 죄 없는 사람이 먼저 저 여자를 돌로 쳐라’ 하였다. 이에 모여들었던 군중들은 슬며시 사라지고 말았다.(요한복음 8:1-11)"는 대목이다. 이 말을 음미해 보면 우리는 누구나 ‘속세의 더러움’에서 완전할 수 없다는 뜻으로 받아들여진다.

요새 4월 총선을 앞두고 진보적 시민단체와 보수 진영에서 각각 ‘낙선운동 대상자’와 ‘공천반대자’ 명단을 쌍방이 앞다투어 발표하고 있다. 그 명단들을 보면 완전히 상반된 상황을 보이고 있다.

이 두 단체들은 양쪽이 임의로 정한 선정 기준에 의하여 서로 자질이 없다고 판단되는 자의 국회의원 도전을 막으려고 안간힘을 쏟는 모습이다. 왜 우리사회는 이렇듯 시민단체들이 영합하여 일부 정치인의 국회진출을 막으려고 하는 것일까?

여기에는 우리 사회가 갖고 있는 '정당 공천제'라는 선거제도에의 불합리성 때문이다. 국회의원들이 진작부터 선거법을 합리적으로 고쳐서 손질해 놓았더라면 시민단체들이 ‘낙천운동 대상자’와 ‘공천반대자’ 명단을 공개하지 않아도 되었다. 다시 말하면 각 당별로 당 소속의 지역 당원들이 공천하고 전체 지역주민의 선택을 거쳐 국회로 진출하는 지극히 기본적인 국회의원 선거제도를 정착시켰더라면 전국 시민단체에서 이렇게 국회의원이 되고자 하는 자의 자유의지에까지 간여하지는 않았을 것으로 본다.

선거제도의 모순을 차치하고, 이제 국회의원에 출마할 후보 중 ‘공천반대’ 및 ‘낙천운동 대상자’ 명단을 보면 명단에 포함되어야 할 다수의 후보가 누락되어 있거나 포함되지 말아야 할 몇 명의 후보가 억울하게 들어가 있는 것이 보인다.

총선연대에서 정한 ‘낙천운동 대상자’ 심사기준을 보면 대체로 “부패·비리 연루자, 선거법 위반 행위자, 반인권 및 민주헌정질서 파괴 경험자, 의정활동 성실성 여부 및 반의회· 반유권자적 행위자, 개혁법안 및 정책에 대한 태도, 상습적이고 반복적인 당적 변경을 한 자, 도덕성 및 자질”을 들고 있다.

그런데 이러한 심사기준 중 가장 애매한 부분은 돈과 관련된 부분이다. 지금 우리나라 국회의원 중에서 각종 이익단체나 기업으로부터 로비자금을 안 받아본 국회의원이 과연 있겠는가. 우리 모두 생각해볼 일이다.

그래서 필자가 글 머리에서 그리스도교의 성경구절을 인용해 보았다. 세상이 다 아는 일이지만 아마 우리나라의 실정으로 볼 때 돈에서 자유로운 국회의원은 한 명도 없다고 본다. 그런데 한 국회의원의 의정활동이 남보다 두드러지고 투철한 소신을 가지고 사회 발전에 임해왔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그 의원이 과거 기업으로부터 돈을 받고 선거법에 위반되어 재판을 받은 전력이 있다는 이유만으로 ‘낙천운동 대상자’ 명단에 포함돼있다는 것은 미래지향적이지 못하다.

그렇다면 객관적인 사실이 드러난 자료가 없다고 해서 반민족적이고 반통일적인 현역의원과 반자주적이고 반주체적인 현역의원은 국회의원이 되어도 좋다는 논리가 된다. 이러한 총선연대의 논리는 돌에 맞을 자에게는 면죄부를 주고, 돌을 던지지 말아야 할 자에게는 돌을 던지는 우를 범하는 꼴이 된다.

지금 총선연대에서 발표한 ‘낙천운동 대상자’ 명단의 작성 기준을 보면 크게 ‘도덕적 선명성’과 ‘직분 수행능력’ 등 두 가지로 대별된다. 그런데 이번 ‘낙천운동 대상자’ 선정에서는 국회의원 ‘직무수행 자질’보다는 ‘도덕적 선명성’을 더 강조하였다.

그러나 현재 상황에서는 ‘도덕적 선명성’이 중요시된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미래의 국회에서는 ‘직무수행능력’이 더 중요시된다고 본다. 다시 말하면 정치개혁이 진행되고 있는 현시점에서는 도덕적 선명도는 국회의원의 기본 자질이다. 때문에 앞으로는 이 문제는 더 이상 중요하지 않게 된다는 점이다.

이러한 전제를 인정한 토대 위에서 볼 때 오늘날 한국 사회가 갖고 있는 한계상황에서 도덕적으로 ‘깨끗한 국회의원’을 계속 강조하고 있는 것은 총선연대의 현명한 판단이 못된다. 총선연대가 ‘객관적인 사실’에 근거하여 ‘낙천운동 대상자’ 명단을 작성하였다고 하지만 그 공정성이 결여된 객관적인 사실 때문에 ‘적은 실수’만으로 사회적 매장을 당한 총명한 인재들이 우리 사회에 얼마나 많은지 곰곰이 반성해 볼일이다.

지금 낡은 정치구조의 틀을 깨려고 함께 노력하고 있는 현재상황에서는 도덕적 선명성도 중요하지만 좀더 확실하게 요구되는 것은 우리 사회를 개혁적으로, 그리고 좋은 삶의 질을 추구하는 사회로 이끌어갈 인재들이 더 필요하다는 점이다. 이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지금 총선연대의 심판대로라면 친일·친미사대세력인 반개혁적 인사들이 국회의원에 선출될 가능성을 많이 가지고 있다. 미래 한국에게 중요한 것은 통일의 문제요, 인권의 문제요, 평등의 문제요, 자유의 문제다. 그런데도 총선연대에서 반통일적, 반민족적, 친미사대적 인사들을 그대로 두고 도덕적으로 약간의 흠집을 가지고 있다하여 대승적 차원의 큰 그릇들을 도매금으로 내쳐서는 안 된다고 본다.

지금 우리가 도태시켜야 할 자들은 친일·친미의 계보를 가지고 있는 독재세력이고, 반북적 사고를 가지고 겨레의 통일을 가로막는 자들이고, 미국에 노예근성을 보이는 친미사대세력들이다. 그리고 국가보안법 철폐에 소극적이었던 반인권적 의원들이며 여성과 약자의 삶을 외면하는 노블레스계급이다.

한편 이번 총선은 역사적으로도 중요한 의미를 갖고 있다. 120년 전 김옥균이 이끄는 갑신정변이 실패되면서 민비라는 수구반동세력이 역사의 주도권을 장악하였다. 이로써 우리는 끝내 건너오지 못할 오욕의 역사를 만들어낸 경험을 가지고 있다.

차기 한국 의회의 동량들은 정치개혁을 단행하고 낡은 정치의 구조적 모순을 혁파하고자 노력하는 젊은 대통령과 함께 우리 사회를 개혁하고자 하는 개혁의 일꾼들이어야 한다. 다시 말하면 대승적 차원에서 ‘낙천운동 대상자’ 명단이 작성되었어야 옳았다는 점이다.

드러난 티끌만을 가지고 크게 될 개혁인사를 내치지 말고 자기의 더러움을 감춘 채 객관적 자료가 없어서 ‘낙천운동 대상자’ 명단에 넣지 못하는 파렴치한 출마 후보도 있다는 것을 밝혀주어야 했다.

만일 2004년 유권자혁명을 통한 갑신정변이 실패하여 수구 반동세력이 다시 제 1당이 된다면 120년 전 갑신정변이 실패되어 오욕의 역사를 만들어낸 것처럼 우리 역사에 또 어떤 오욕의 역사가 기다리고 있을지 모른다.

재차 강조하지만 작은 티끌 때문에 2004년 갑신정변을 주도해나갈 인재들의 앞길을 막지 말고 교묘한 방법으로 감추어진 죄를 객관적으로 드러내지 않은 채 이번 국회에 다시 진출하려는 간악한 무리들을 우리는 경계해야 한다.

이러한 의미에서 총선연대는 유권자들이 현명한 판단을 할 수 있게 구태의연한 방법이 아닌 미래지향적이고 대승적 차원에서 ‘낙천운동 대상자’ 명단을 다시 작성하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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