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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나무들이 가장 피해가 심하다.
ⓒ 천언채
며칠 전부터 창 밖으로 보이는 공원 나무들의 색깔이 왠지 이상하다 싶었다. 누런 색이 갑자기 많아진 것이 원래 그런가 하고 며칠 궁금해하다 저녁에 가서 살펴 보고는 깜짝 놀랐다.

공원에 있는 거의 모든 나무들이 말라 죽거나 시들어 가고 있는 것이었다. 전나무들은 이미 크건 작건 거의 말라 죽은 상태였고, 벗나무들도 죽은 지 오래된 듯 마른 싸리나무처럼 앙상하게 서 있었다.

▲ 은행나무를 비롯한 많은 나무들이 시들고 말라가고 있다.
ⓒ 천언채
▲ 잎이 오그라든 모과나무(왼쪽)와 방죽골 공원에 있는 전나무(오른쪽). 방죽골 공원과 수지공원 나무들의 피해가 큰 편이다.
ⓒ 천언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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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줄기가 말라가고 있는 어린 전나무(위)와 새순들이 고개가 꺾인채 말라가고 있는 소나무(아래).
ⓒ 천언채
은행나무들도 중병을 앓는 것처럼 색이 변해 보기에도 안타깝다. 모과나무들도 잔뜩 시들어 버린 채 꼬이거나 말려서 크고 넉넉한 잎사귀들을 찾아볼 수가 없다. 이 외에도 회화나무, 소나무, 철쭉, 메타세콰이어, 매화나무, 때죽나무, 물푸레나무 등 공원 내에 있는 나무들은 수종을 가리지 않고 시들거나 잎이 비틀리는 현상을 보이고 있었다.

갑자기 나무들이 왜 이럴까? 공원에 앉아 있는 할아버지, 할머니들에게 그 까닭을 물어 보았다. 이 분들 말에 따르면 지난 5월 초에 관계기관에서 나와 약 3일간 공원에 제초제를 뿌렸는데 그 때 제초제를 잘못 뿌려서 나무들이 죽었다고 한다.

제초제! 갑자기 몸이 움츠러들며 나뭇가지들을 헤치며 다닌 손이 가려운 느낌이 든다. 그랬구나. 그래서 갑자기 이렇게 나무들이 죽어가고 있구나. 자세히 살펴보니 한 나무인데도 말라 죽은 나뭇가지가 있고 그렇지 않은 가지가 있는 것으로 보아 제초제를 맞은 정도에 따라 피해 정도가 다른 것 같았다. 심지어 공원 옆 플라타너스 나무도 공원 쪽으로 뻗은 가지의 잎사귀들만이 말려 들어가는 현상을 보이고 있었다. 마음을 먹고 주변에 있는 다른 공원들을 살펴보기로 했다.

용인시 수지읍에 있는 수지토월공원, 신정공원, 방죽골공원, 도장골공원, 풍덕공원 등 다른 공원에서도 이런 현상이 똑같이 목격되었다. 이 공원의 나무들은 멀리서 보면 푸른 색이었는데 가까이 가 살펴보니 생명의 푸르름이 아니라 죽어가는 푸른색이었다.

▲ 크고 넉넉한 잎사귀들이 제 모습을 잃어가고 있다.
ⓒ 천언채
제초제로 인한 피해임을 확인하고 싶어 다시 주변 아파트 단지 내 나무들과 가로수들을 살펴보았다. 아무 이상이 없었다. 오직 공원 나무들만 죽어가고 있는 것이었다. 끔찍한 생각이 들었다. 제초제를 과다하게 뿌렸거나 아니면 잘못 뿌렸을 가능성이 높은 것이다.

제초제 피해에 노출될 가능성이 많은 탓에 공원에서 놀고 있는 아이들과 주민들이 걱정되었다. 기가 막힌 생각을 넘어서 분한 생각이 들었다. 어떻게 주민들의 휴식 공원에 이렇게 맹독성 제초제를 뿌릴 수가 있으며 이렇게 나무들을 죽일 수가 있을까.

▲ 가지에 따라 피해 정도와 진행 상태가 다르게 나타나고 있다.
ⓒ 천언채
할아버지가 언성을 높이시며 "담당 공무원에게 전화를 걸어 항의했는데 다 소용없더라"고 하신다. 옆에 계시던 할머니는 "공사를 나온 공무원에게 나무를 왜 이렇게 만들어 놨느냐고 따졌더니 자기 일이 아니라는 거야" 하시면서 분개했다.

▲ 공원에는 살충제 살포했으니 주의하라는 경고문이 나붙었다.
ⓒ 천언채
내친 김에 담당 공무원과 통화를 하고 싶었다. 어떻게 해서 이런 사태가 왔는지 궁금했다. 그리고 항의하고 싶었다.

통화를 한 수지 출장소 녹지과 담당 공무원은 "크로바 제거를 위해 제초제 '반벨'과 진딧물 약을 살포했는데 이게 문제가 있었다"고 답변했다. 이 공무원은 또 "인력이 부족한 데다 약을 치고 나서 바로 비가 와 뿌리로 흡수되는 바람에 피해가 더 커지게 되었다"고 해명했다.

그랬구나, 역시 나무들이 이 상태가 된 것은 제초제 때문이었구나. 그렇다면 제초제 선택이 잘못된 것인지, 아니면 배합비율이 잘못된 것인지 궁금했다. 또 실무자의 단순한 실수인지 일이 그렇게 될 수 밖에 없는 사정이 있었는지를 밝혀야 했다.

공원 현장에서 만난 관계 공무원의 해명은 사람의 생명과 관계된 맹독성 농약이 주먹구구식으로 사용되고 있음을 여실히 드러냈다.

▲ 이번에 잘못 사용한 제초제
ⓒ 천언채
ⓒ 천언채
"제초제 '반벨'이 나무까지 죽이는 약인 줄 모르고 살포했다. 제초제 선택은 농사에 경험이 많다는 이유로 현재 농사짓고 있는 일용직 반장에게 맡겼다. 제초제에 대한 검증 작업이 소홀했다. 담당 공무원은 임용된 지 7개월째고 농사나 제초제 등에 아무런 예비 지식없이 일을 맡았다. 담당 공무원 혼자 가로수, 녹지 외에 25개의 공원을 관리한다."

아, 신도시 행정의 현주소가 바로 이것이다. 결론을 내리면 이번 일은 공원에 사용하지 말아야 할 제초제를 사용한 데서 비롯됐다. 그러나 좀더 원인을 캐보면 엉성한 공원 관리 체계가 부른 예고된 재앙임을 알 수 있다.

▲ 담당 공무원이 약을 살포한 나무를 보며 검증작업이 소홀했던 점을 안타까워했다.
ⓒ 천언채
제초제에 대한 예비 지식이 없는 공무원 한 사람이 가로수와 녹지 그리고 공원 25군데를 책임지는 상황에서 이런 사고가 안 일어났다면 오히려 그것이 더 이상하다.

이웃 성남시는 구청 행정구역에 관계 없이 시청 직속 공원 운영과에서 공원을 통합 관리하고 있었다. 사람과 자연이 만나는 공원의 중요성을 알고 효율적 관리 체계를 갖춘 것이다. 성남시청 공원 관리 담당자는 "공원에 제초제를 뿌리는 일은 없습니다. 제초제를 뿌리면 시민들의 항의를 어떻게 감당합니까?"하고 반문한다.

▲ 나무 상태를 호전시키려고 인부들이 퇴비를 주고 있다.
ⓒ 천언채
벌써 4-5년째 수지 신도시에 살면서 그때나 지금이나 공원이 황량한 것이 늘 속상했는데 이렇게 잘 자라고 있는 나무들마저 죽어가는 모습을 보니 참 가슴이 아프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공원에서 뛰노는 아이들과 주민의 건강이 염려된다. 나무들이 저 정도 상태가 되었다면 사람에게 미치는 영향은 어느 정도일까 싶다. 당국의 철저한 조사와 대책을 요구한다.

▲ 공원에서 학생들이 그림을 그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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