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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 <강아지똥>
ⓒ 길벗아이들
하찮고 보잘것없는 존재로 남는다는 것은 삶에서 느끼는 가장 큰 비애 중 하나일 것이다. 대부분의 인간은 화려하고 뛰어나며 주목받는 삶을 꿈꾼다. 하지만 우리가 꾸는 꿈처럼 정말 대단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은 그리 많지 않다. 우리 평범한 사람들은 그저 하찮고 보잘것없는 존재로 한 세상을 산다.

보잘것없는 존재로 한 세상을 사는 것이 인생이라고 단정 짓는다면 이상한 허무감이 밀려온다. 자칫 잘못하면 '이게 인생인데 아등바등 살아봤자 뻔한 거 아냐?' 하는 허무주의와 염세주의에 빠질 우려도 있다.

우리는 작고 작은 모래알로 이 넓은 공간 속에 존재하면서 무언가 자신의 흔적을 남기려고 애쓰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 흔적이 과거에는 자신의 삶을 기록한 일기장일 수도 있으며 최근 들어서는 인터넷 공간 안에 자기만의 표현을 남기는 홈페이지 등일 수도 있다.

눈에 보이는 무엇인가를 꼭 흔적으로 남길 필요는 없다. 내가 키운 아이를 향한 사랑의 가르침, 남을 위해 애쓰고 노력했던 마음가짐들, 정의를 위해 부르짖었던 외침과 이야기들 또한 살아가면서 내가 남기는 족적(足炙)일 것이다.

책 <강아지똥>은 이처럼 하찮고 쓸모없는 존재로 남은 강아지똥이 누군가를 위해 작은 도움이 된다는 설정을 담고 있다. 애니메이션으로도 제작되고 작곡가 이루마가 음악 작업에 참여하여 유명해진 이 책은 몇 페이지 안 되는 짧은 글을 통해 진한 감동과 여운을 준다.

"<강아지똥>이 있기 전까지 우리 어린이들은 대개 왕자가 되거나 공주가 되는 이야기만을 즐겨 읽어왔습니다. 그런데 <강아지똥>의 세계는 이런 왕자나 공주가 사는 세계와는 전혀 딴판인, 그 반대되는 세상을 보여 주었습니다." - 아동문학 평론가 이재복의 글에서


늘 반복적으로 신데렐라 등의 외국 동화나 콩쥐팥쥐와 같은 전래 동화만을 읽어 온 어린이들에게 새롭고 따뜻하며 좋은 내용을 담은 동화를 소개한다는 기쁨. 이것은 단순히 아동문학을 담당하고 있는 이들에게만 국한된 기쁨은 아닐 것이다.

이 한 편의 동화가 어른들에게도 삶의 의미와 가치가 무엇인지를 전해 준다면 더더욱 좋은 일이 아닐까?

"뭐야! 내가 똥이라고? 더럽다고?" 하는 외침과 함께 서글픔에 눈물을 흘리는 강아지똥. 이 놈의 모습은 가끔 무시당하기도 하고, 그래서 서럽기도 한 우리네 삶과 닮아 있다. 그래서 이 녀석의 말에 한편으론 우습기도 하고 또 한편으론 공감이 가는 것이다.

"넌 똥 중에도 가장 더러운 개똥이야!"
"난 더러운 똥인데, 어떻게 착하게 살 수 있을까? 아무짝에도 쓸 수 없을 텐데..."
"암만 봐도 먹을 만한 건 아무것도 없어. 모두 찌꺼기뿐이야."


이렇게 천한 대접을 받고 자신의 존재에 대한 비애감을 느끼던 강아지똥이 새롭게 탄생하게 되는 것은 바로 민들레와의 만남 덕분이다. 하늘의 별만큼 곱고 방실방실 빛나는 민들레. 강아지똥은 민들레가 부러워 한숨이 절로 난다.

이런 강아지똥에게 민들레가 하는 말.

"네 몸뚱이를 고스란히 녹여 내 몸 속으로 들어와야 해. 그래야만 별처럼 고운 꽃이 핀단다."


사흘 동안 내리는 비에 강아지똥은 온몸이 비에 맞아 자디잘게 부서지고, 부서진 채 땅 속으로 스며들어가 민들레 뿌리로 모여든다. 그리고 줄기를 타고 올라가 꽃봉오리를 맺는다. 방긋방긋 웃는 꽃송이엔 귀여운 강아지똥의 눈물겨운 사랑이 가득 어려 있다.

아동문학 평론가 이재복님은 책의 후기에서 “이 세상에서 가장 낮은 곳으로 내려가 비록 어둡고 추운 곳이지만 그곳에도 따뜻한 영혼을 간직한 수많은 존재들이 살고 있다는 사실을 어린이들에게 보여준다”고 평한다.

화려한 공주나 왕자로 사는 것도 멋진 일이지만 우리네 인생이 평범함 속에 타인에게 도움을 주고 자신을 성숙시켜가면서 흘러간다는 사실. 최근 들어 몸짱, 얼짱 등 외모지상주의와 상업적이고 속물적인 물질만능주의에 알게 모르게 젖어든 아이들에게 가르쳐야할 교훈이 아닐까 싶다.

1%의 화려한 사람들과 99%의 평범한 사람들이 살아가는 것이 세상일진대, 많은 우리 아이들이 평범함 속에서도 개성을 추구하는 멋진 모습을 간직하고 살도록 말이다. 꼭 튀고 잘나고 돈 많고 잘 생겨야만 한다는 강박관념에서 벗어나도록 어른들이 도와야 하지 않을까?

그리고 이 동화를 함께 읽으면서 어른들 또한 그런 강박관념에서 벗어나, 작고 작지만 가치 있는 삶의 모습을 지향해 보면 어떨까? 꼭 왕자나 공주의 이상향을 좇기보다 낮고 하찮지만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는 존재가 되어, 보잘것없는 강아지똥이 민들레와 하나가 되어 아름다운 꽃을 피워 내듯이….

강아지똥

권정생 글, 정승각 그림, 길벗어린이(19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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