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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선일씨의 죽음을 계기로 이라크전 파병 철회 여부를 둘러싼 사회적 갈등이 첨예화되고 있다. 작년 이라크 전 파병 결정시의 찬반 논쟁이 김선일씨 피살사건으로 재현되고 있는 것이다.

김선일씨의 죽음은 정치적 입장별로 상반된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이번 사건으로 파병 찬성 여론이 높아지기도 했고 전투병 추가 파병의 의견까지 제기되고 있다. 아랍에 대한 보복적 여론까지 이러한 경향에 가세하고 있다. 아랍 저항단체의 야만적 행위에 대한 비판은 응당 이뤄져야 한다는 점은 두 말할 나위 없다. 하지만 이번 전쟁이 출발부터 큰 하자를 안고 있었기 단순한 보복 심리는 세계적 재앙이라고 할 이라크 문제를 해결하는 데 하등 도움이 되지 않는다.

한편, 기존에 파병 반대 원칙을 분명히 해온 한국의 진보진영은 "추악한 전쟁에 한국 정부가 동참함으로써 국민 생명까지 희생시켰다"고 주장하며 정부의 파병 추진에 격렬하게 반대하고 있다. 오랜 기간에 걸친 한미간의 불평등한 관계에 문제의식을 가지고 있는 진보진영으로서는 부당한 전쟁에 한국군이 파견되는 것을 용인할 수 없는 것은 당연하다.

사실, 진보와 보수의 입장을 떠나서 평가하더라도, 거짓 명분에서 출발했고 그 와중에서 이라크의 무고한 시민들이 희생되고 있는 현실에서 한국군의 이라크 파병은 베트남전 참전만큼이나 한국인의 자긍심에 상처를 주는 사건임에 틀림없다.

더욱이 진보진영의 지지로 탄생한 노무현 정부가 부시 행정부의 독선적 세계전략에 호응하고 있는 데 대한 분노까지 겹쳐 파병철회 움직임은 그 어느 때보다 목소리가 높다.

그러나 정부와 집권 여당의 인사들의 이른바 '실용주의 노선'은 냉정히 평가해 볼 여지가 있다.

참여정부의 파병결정은 단순히 한미동맹 차원에서 이루어진 것은 아니다. 파병 결정이 북한 핵 문제와 관련되어 있다는 점은 이미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부시 행정부가 이란-이라크-북한을 악의 축으로 규정한 이후 북미간 핵문제는 한반도에서의 전쟁발발을 현실적인 문제로 만들었다.

미국이 이라크 전을 일으킬 당시 북한은 핵 보유 선언 등을 통해 미국과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었으며. 당시 이라크전이 지금처럼 장기화될 것으로 예상하지 않았던 미국으로서는 북한에 대한 예방적 선제공격을 감행하고 이로 인한 야기될 수 있는 한반도 내의 전쟁까지 감수하려 들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었다.

특히. 노무현 정부의 반미 성향에 대해 의구심을 버리지 않은 상황에서 한국 정부가 한미동맹의 명분을 깨고 이라크 전에 반대할 경우, 미국이 한반도 전략을 호전적으로 개편할 가능성은 어느 때보다 높았다. 따라서 한국군의 파병 유무가 이라크 전의 전개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지 못하는 상황에서 한반도 안정을 기하는 방향으로 정부가 정책 방향을 정한 것은 실용주의 외교의 한 모습으로 평가할 수 있다.

김선일씨의 죽음과 관련하여 파병 철회를 주장하는 정당, 시민 단체들은 '국민의 생명보다 더 중요한 국익이 없다'고 주장한다. 파병 반대의 논리가 '자국민 보호의 논리'에 국한된 것은 아니겠지만, 파병 정책의 의도 또한 한반도 전쟁 억지와 국민 안전을 위한 외교력 강화의 관점에 있었다는 점도 분명하다.

한편, 6월 17일 한국의 추가 파병 결정에 대한 판단은 6월 8일에 있은 유엔안보리의 결정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 이번 이라크 전쟁은 베트남 전쟁에 비유되기도 하지만, 해결전망에 있어서는 한층 어려운 요소가 있다. 미국에 맞서는 이라크 측이 하나의 국가적 실체가 아니라는 점이다. 사담 후세인 정부가 붕괴한 이후 미국에 맞서는 이라크 측은 국가적 실체 없는 저항세력이다. 휴전이나 정전, 문제 해결을 위한 대화 상태가 없다는 것이다.

이런 이유로 이라크를 대표할 공식적 권력 기구를 만드는 것은 문제 해결의 최대 관건이다. 미국은 지난 6월 초, 이라크 임시 과도정부를 구성했다. 그 출발 자체가 미군 점령통치에 의한 것이라 정당성과 정통성을 바로 부여하기는 힘들지만, 일단 유엔이 6월 8일 이 과도정부를 공식 승인함으로써, 국제사회의 승인을 받은 이라크 주권 회복의 주체가 만들어졌다.

그리고, 같은 결의안에서 6월 30일까지 미국의 임시행정청의 해산과 함께 주권의 완전 이양이 결의되었다. 이 결의안에 따르면 유엔의 지원하에 12월의 총선이 이뤄지도록 되었고, 2005년 새 헌법에 따라 정식정부가 출범하도록 되었으며, 그와 함께 미국 주도 다국적이 완전 철수하는 것으로 결정되었다.

물론 이 절차가 순조롭게 진행될 것인가에 대해서는 누구도 확신할 수 없다. 하지만 유엔 안보리가 이 안을 만장일치로 통과시킨 것은 문제의 원인에 집착하기보다 현재의 난국을 극복하기 위한 해결자로서의 입장을 견지했기 때문이다. 이 연장에서 미국과 이라크 과도정부의 요청으로 나토가 이라크 방위권 구성에 참가할 가능성도 현재 논의중에 있다.

일단 한반도 문제는 일단 한 고비를 넘긴 것 같다. 애초 파병 결정 때보다는 한층 예측 가능한 방향으로 논의가 진행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는 한국의 파병 관련 논의도 미국에 대한 반대냐 굴욕이냐는 이분법에서 벗어나 현재 현안이 되고 있는 외교 현안과 국제적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의 관점에서 논의되어야 하지 않을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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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경기도 경제과학진흥원의 원장이다. 서울대학교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일리노이 주립대와 프랑스 사회과학대학원에서 공부했으며 LG경제연구원, 우리금융경영연구소, 정치경제연구소 대안에서 근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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