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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을 꾸었습니다. 화장실을 갔는데 하얀 변기 여섯 개가 나란히 있고 그 변기 안에 변이 조금씩 다 들어 있는 꿈이었습니다. 아침에 일어나 너무도 선명한 꿈에 혹시 좋은 일이 있지 않을까 기대가 되었습니다.

똥 꿈은 좋다는 소리를 들은 적이 있지만 태어나 처음으로 이런 꿈을 꾸었습니다. 다음 날은 명절을 지내고 여러 가지 정리하느라 바빠서 꿈 생각은 까맣게 잊고 있었습니다.

식구들이 모두 간식을 먹으며 텔레비전을 보고 있는 자리에서 갑자기 꿈 생각이 났습니다. 이야기를 할까 말까 망설이다 그만두었습니다.

지저분한 꿈을 꾸었다며 타박을 할까 걱정도 되었고 꿈 이야길 하면 효험이 없어질지도 모른다는 저만의 생각에서 그랬습니다.

저녁을 하려다 말고 아들에게 "우리 복권 사러 갈까?"했더니 "웬일이세요?"하며 이상한 눈으로 바라봅니다. 아무 소리도 안하고 바깥바람도 쏘일 겸 다녀오자고 했습니다.

평소에는 복권을 사는 사람들을 보면 속물취급을 해 왔기에 혼자 갈 용기가 나지 않았습니다. 아무런 노력도 없이 일확천금을 꿈꾼다고 흉을 보아오던 저였기에 복권을 사러 가는 발걸음이 어색하기도 하고 쑥스럽기도 했습니다.

집 근처에 있는 편의점에 가서 천 원짜리 두 장을 주고 복권을 샀습니다. 나오려다 말고 즉석에서 긁는 복권이 눈에 보였습니다. "저건 어떻게 사는 거예요?"했더니 한 장에 오백 원이라며 즉석에서 알 수 있다고 친절하게 안내를 해 줍니다.

아들이 즉석복권은 될 확률이 적다며 말렸는데도 불구하고 사고 싶어졌습니다. 꿈을 꿨다는 든든한 희망 때문이었을 겁니다. 두 장을 사서 곧바로 긁어 보기로 했습니다. 동전도 없어 빌려서 긁었는데 두 장 모두 당첨이랍니다.

적은 액수이긴 했지만 기분이 이상합니다. 다시 다른 복권으로 바꾸었지만 그 자리에서 긁지 않고 집으로 가져 왔습니다. "심장 떨려서 못 긁겠다"고 말은 하면서도 긁었는데 이게 웬일입니까? 또 당첨이랍니다.

그런데 저는 아직 그 복권을 바꾸러 가지 않았습니다. 천 원짜리 희망으로 간직하다가 시간이 더 흐르면 가서 바꿀 생각입니다.

추첨하는 복권도 추첨시간을 놓쳐서 보지 못하고 그 다음 날 알게 되었습니다. 복권을 맞춰 보던 저는 앞자리부터 계속 네 자리나 맞아 순간 너무 놀랐습니다. 가슴이 쿵쾅 쿵쾅 소리가 날 정도였으니까요.

그런데 당첨금은 5만원 정도라고 합니다. 게다가 제가 두 장을 샀는데 모두 되었다는 사실에 흥분이 되었답니다. 물론 두 자리만 더 맞았더라면, 아니 한 자리만 더 맞았더라면 하는 아쉬움도 있습니다.

아직 복권당첨금을 찾으러 가지는 않았지만 기분이 얼마나 좋은지 모르겠습니다. 아마 큰 액수가 당첨되었다면 숨기고 이야기도 못했을 텐데, 내 기분이 좋을 만큼 딱 맞는 액수입니다.

저는 오늘 출근을 하자마자 제가 아는 모든 사람들에게 메일을 보냈습니다. "나, 복권에 당첨되었다." 일부러 사람들을 놀라게 하려고 액수는 알려 주지 않았습니다. 당첨된 저보다 메일을 받은 사람이 더 놀랜 눈치입니다.

"무슨 복권이에요?"
"얼마가 됐어요?"

사람들이 놀라는 모습도 가지가지입니다. 이렇게 해서 저는 설날을 보낸 인사까지 다 하였답니다. 분명히 1등은 아니라고 했건만 모두들 기분이 좋은 모양입니다. 저도 덩달아 기분이 더 좋아졌답니다.

아무래도 곧바로 당첨금을 찾아 저녁을 사야 할 것 같습니다. 모두를 불러 모아 명절 지낸 이야기도 더 들어가며 축제의 장을 열어 봐야겠습니다. 이런 모임은 괜찮겠지요?

그런데 복권을 사러 함께 갔던 스물아홉 살 아들에게는 공연히 미안합니다. 철부지 엄마처럼 보일까봐 아직 당첨이야기는 하지도 못했습니다. 제 스스로에게 이야길 합니다. '좋은 꿈꾸었을 때 한 번쯤은 복권을 사도 괜찮은 거야'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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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일찍부터 시작되는 일상생활의 소소한 이야기로부터, 현직 유치원 원장으로서 아이들과 함께 생활하며 벌어지는 이야기들을 쓰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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