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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방에 오는 초등학교 1학년 세은이는 가리는 게 많다. 얼마전 샌드위치를 간식으로 내왔는데 다른 아이들은 다들 맛있다고 먹었지만, 세은이는 부은 얼굴이었다.

"세은아, 왜 그래, 속상한 일 있었어?"
"저, 저거 못먹겠어요."
"왜? 맛이 이상하니? "
"다른 거 간식으로 주세요."

몸에 알레르기가 생기는 음식이 아니면 먹는 것이 원칙이다. 특히 1, 2학년 아이들이 집을 나와 밖에서 음식을 먹게 되면서부터 이런 일들이 자주 벌어지고는 하는데 유년기때부터 식습관을 잘못 들인 결과이기도 하다.

어린이도서관에서 책을 읽다가 세은이에게 읽어주면 좋을 책 하나를 발견했는데, 바로 로렌 차일드가 쓴 <난 토마토 절대 안먹어>라는 책이었다.

▲ 본문 중에
ⓒ 국민서관
이 그림책에 나오는 '여동생 롤라'는 세은이와 마찬가지로 식습관이 까다롭다. 엄마, 아빠는 이따금 오빠인 찰리에게 롤라의 밥을 차려주라고 한다. 찰리에게 이 일은 무척이나 힘든 일이다. 롤라가 안 먹는 음식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롤라는 오빠가 밥상을 차려줄 동안 이렇게 말을 한다.

"난 콩하고 당근하고 감자하고 버섯하고 스파게티하고 달걀하고 소시지는 안 먹어. 난 꽃양배추하고 양배추하고 콩요리하고 바나나하고 오렌지도 안 먹어. 그리고 난 사과하고 밥하고 치즈하고 생선튀김은 싫어. 그리고 난 무슨 일이 있어도 토마토 절대 안 먹어."

그런 롤라에게 찰리는 이렇게 되받아쳤다.

"그것 참 잘됐네. 마침 우리 집에는 그런 거 하나도 없거든. 오늘 요리는 콩도 당근도 감자도 버섯도 스파게티도 달걀도 소시지도 아니야. 꽃양배추도 콩요리도 바나나도 오렌지도 아닌 걸. 사과도 밥도 치즈도 생선튀김도 하나도 없어. 게다가 토마토는 절대로 없지."

롤라는 의아해 하며 다시 묻는다.

"그런데 오빠, 왜 여기 당근이 있어? 난 당근 절대로 안 먹는데."

찰리는 천연덕스럽게 이렇게 말을 한다.

"오, 넌 이게 당근인 줄 알았구나. 이건 당근이 아니야. 이건 목성에서 나는 '오렌지뽕가지뽕'이라고."

롤라는 의심을 하지만 찰리는 목성에서는 당근이 절대로 나지 않는다며 '오렌지뽕가지뽕'이라고 우긴다. 롤라는 '그럼 먹어볼까?'하고 당근에 입을 댄다. 그 뒤로도 찰리는 여러 기발한 이름을 대며 롤라에게 설득을 한다.

"이건 콩이 아니야. 당연히 아니고 말고. 이건 초록나라에서 나는 '초록방울'이야. 초록빛이 뭉쳐서 생긴 건데 빗방울처럼 하늘에서 떨어진다고."

"아하, 이건 으깬 감자가 아냐. 보통 다들 그렇게 착각하는데, 사실은 아니라고. 이건 바로 백두산의 제일 높은 봉우리에 걸려 있던 '구름보푸라기'야."

"물론 그건 나도 알지. 하지만 이건 생선튀김이 아닌 걸. 이건 바로 바다 밑 수퍼마켓에서 사 온 '바다얌냠'이야. 인어들이 즐겨 먹는 음식이지."

롤라가 '초록방울'과 '구름보푸라기'와 '바다얌냠'을 다 먹고 났을 때였다.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롤라가 토마토를 가리키며 그 걸 먹겠다고 말을 한 것이다.

"너 진심이야? 진짜로? 이 걸 달라고?"
"그럼 물론이지. '달치익쏴아'는 내가 제일 좋아하는 건데. 혹시 이걸 토마토로 안 건 아니겠지? 그치, 오빠?"

도서관에 오는 채린이 엄마는 아이에게 이 책을 읽어주고는 한참 동안 잊어버리고 있었는데 아이가 토마토를 보고 "야! '달치익쏴아'다!" 라며 반색을 했다고 한다.

그도 그럴 것이 이 책에는 그림이 아니라 사진으로 당근, 토마토, 생선튀김 등 여러 음식들을 보여준다. 그리고 음식 아래 '오렌지뽕가지뽕', '달치익쏴아', '바다얌냠'이라고 적혀 있다. 아이들이 놀이문화처럼 친숙하게 음식을 받아들이게 될 때, 음식의 맛은 '발생한다'.

내일 세은이에게 이 책을 읽어주면 세은이는 '오렌지뽕가지뽕'을 잘 먹을 수 있을까?

덧붙이는 글 | 이선미 기자는 춘천에서 <꾸러기어린이도서관>과 <꾸러기공부방> 일을 하고 있습니다.


난 토마토 절대 안 먹어

로렌 차일드 글 그림, 조은수 옮김, 국민서관(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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