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 곱게 담아낸 진달래 화전. 진달래 꽃잎과 쑥으로 장식한 화전에 봄이 찾아와 있다.
ⓒ 최성수
서울은 온통 철쭉이 한창인데, 내 고향 강원도는 이제야 진달래가 산을 물들이고 있다. 그만큼 추위가 오래 가고 계절이 더딘 곳이 강원도다. 특히 내가 주말이면 달려가 얼치기 농사를 짓는 안흥의 보리소골은 계절이 더 더디게 오는 곳이다.

지난주에야 산수유가 잎도 없이 노란 꽃을 피워내더니, 이번 주에 비로소 앵두꽃이 다투어 피고, 개나리도 제 속을 드러내더니, 이 산 저 산에 진달래가 지천이다.

횡성에서 안흥으로 넘어가는 전재 이 쪽과 저 쪽이 한 닷새 정도 차이가 나는가 싶다.

어느 해부터인가, 나는 봄날의 시간은 달력의 날짜가 아니라 피는 꽃에 기준을 두기 시작하게 되었다. 서울에서 느티나무 잎에 짙푸른 빛을 내기 시작하면, '아, 이제 보리소골 느티나무는 참새 혓바닥만큼 잎이 돋았겠구나'하며 또 다른 시간을 생각하게 된다.

봄은 꽃피는 순서 따라 온다

▲ 진달래 꽃 피어 이 강산에 봄이 온다.
ⓒ 최성수
학교 조팝나무가 하얗게 꽃잎을 흩날리는 것을 보면서, 내 고향집 주변 조팝나무는 아직 열흘은 지나야 꽃을 피우겠구나 하며 기다리게 된다.

봄은 달력의 날짜와 시계의 시간으로 오는 것이 아니라, 피는 꽃의 순서에 따라 오고, 그 꽃을 기다리는 마음으로 오는 것인지도 모른다.

주말, 늦둥이 진형이와 아내, 셋이 찾은 보리소골 고향 집 언덕에는 솔숲 사이로 핀 진달래가 눈부시기 그지없다. 이제 비로소 겨울이 가고 봄이 왔다는 느낌이 확연하게 든다.

떠나온 서울에는 철쭉이 한창이었는데, 이곳은 이제야 진달래가 핀다. 너무 진한 붉은 빛 때문에 오히려 한편으로는 천하게 느껴지는 철쭉에 비해 진달래의 은은한 분홍빛은 얼마나 마음을 넉넉하게 만들어 주는지.

"와, 진달래다. 우리 집에는 말커 진달래다."

늦둥이 진형이 녀석이 집 뒤의 진달래를 쳐다보며 소리 지른다. 녀석은 때때로 강원도 사투리를 섞어 쓰기도 하는데, 아마도 제 고모나 할아버지의 말투를 은연 중에 본받은 모양이다. 말커는 온통, 모두를 뜻하는 말이다. 그런 말을 하는 녀석의 볼에도 봄빛이 가득하다.

나도 진달래 꽃무더기를 바라보며 문득 오래 전 생각에 젖는다. 봄이면 산을 온통 태우는 것처럼 피어오르던 진달래 꽃 속에 숨어 하루 종일을 보낸 시절이 있었다. 변변한 간식거리가 없던 초등학교 저학년 무렵, 산골에 사는 우리 또래들에게 진달래는 봄에 맛보는 간식 중의 하나였다.

세상 천지에 지천으로 피어 따 먹어도 따 먹어도 줄어들지 않는 진달래 꽃잎을 먹은 우리 또래들의 입은 푸르뎅뎅한 진달래 꽃물이 들어 있곤 했다.

▲ 활짝 핀 진달래 꽃잎에 숨어 한나절 잠들고 싶다. 보리소골은 이제사 봄이다.
ⓒ 최성수

참꽃 따 먹으며 보낸 어린 시절

그 당시, 우리는 진달래를 참꽃이라고 불렀다. 혹은 창꽃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참이란 말은 우리 주변에 흔히 볼 수 있는 친근한 것들에 많이 붙어 있는 이름이다. 참나무, 참나물, 참새…. 진달래에 참꽃이라는 이름이 붙은 것은 진(眞)에서 참을 연상한 결과이기도 할 테고, 또 우리 주변에 지천으로 자라 친근하다는 의미이기도 할 것이다.

"뒷산에 참꽃 따 먹으러 가자."

동네 아이들 중 하나가 그렇게 말하면 아이들은 우르르 뒷산으로 올라가 질세라 진달래 꽃잎을 따 입에 우겨 넣곤 했다.

그러다 누군가가 "문둥이다!" 소리를 지르면 뒷머리꼭지가 쭈뼛거리기 시작했고, 한 아이가 내달리기 시작하면 모두들 걸음아 나 살려라 비탈길를 달려 도망치기 일쑤였다.

문둥이가 진달래 꽃밭에 숨어 있다가 아이들이 꽃을 따러 오면 잡아 간을 빼 먹는다는 얼토당토않은 이야기가 아이들 사이를 떠돌던 시절이었다. 청소년기 무렵 나는 서정주의 '문둥이'라는 시를 읽다가 시와 전혀 관계도 없는 진달래꽃을 떠올리기도 했었다. 아마도 어린 시절 진달래 꽃잎을 따던 기억이 내 머릿속에 남아 있어 그런 연상을 했던 것일 게다.

▲ 화전을 만들 재료. 봄맛 볼 준비 완료!
ⓒ 최성수
진달래는 두견화라고도 부른다. 꽃이 먼저 피고 잎이 돋는 것은 다른 일찍 피는 봄꽃들과 마찬가지다. 진달래 잎으로 만든 술을 두견주라고 하는 것도 진달래의 다른 이름인 두견화에서 나온 명칭이다. 두견주에는 고려 개국 공신인 복지겸의 일화가 전설로 전해지기도 한다.

궁예를 몰아내고 왕건을 도와 고려의 개국 공신이 된 복지겸이 원인을 알 수 없는 중병에 걸려 충남 당진의 면천에서 요양을 하고 있었다고 한다. 그때 그의 딸 영랑이 아버지의 병을 낫게 해달라고 근처의 아미산에 올라 백일간 기도를 드렸더니, 꿈에 산신령이 나타나 병을 낫게 하는 비방을 가르쳐주었다.

아미산의 진달래를 따 찹쌀로 술을 빚되, 물은 반드시 안샘의 것을 써야 하며, 100일 동안 숙성 시킨 후 먹게 하라는 것이었다. 영랑은 신령의 말대로 아미산에 지천인 진달래를 따 술을 담갔는데, 그 술을 먹고 복지겸의 병이 씻은 듯이 나았다고 한다. 지금도 면천에서는 이 설화처럼 술을 담가 두견주를 만든다.

▲ 진달래 화채에 넣을 경단. 꽃잎 속에 숨은 경단을 찾아 먹는 맛도 봄을 찾는 마음이리라.
ⓒ 최성수

진달래 화전 먹어야 봄맛을 본다

"여기에 진달래 꽃잎 좀 따와요."

진달래꽃을 하염없이 바라보고 있는 내게 아내가 소쿠리를 내민다.

"진달래 꽃잎은 뭐하려고?"

내가 의아하게 묻자 아내는 빙긋 웃으며 대답한다.

"보리소골에도 봄이 왔으니 진달래 화전을 만들어 먹어야지요. 봄맛을 봐야 할 것 아니에요?"

음식이라면 무엇이든 만들기 좋아하는 아내 덕분에 나는 결혼 후 지금까지 온갖 음식 호사를 하며 산 편이다. 뚝딱뚝딱 금방 만들어내는 아내의 음식에는 쉽게 만든 것 같지 않게 깊이가 있어, 주변 사람들도 감탄을 하곤 했는데, 이번에는 진달래 화전을 만들어 낼 심산가보다.

눈앞에 금방 진달래 화전이 소복하게 놓여 있는 것 같다.

언덕에 올라 꽃잎을 따는데, 마당가에서 놀던 늦둥이 진형이 녀석이 나를 쳐다보며 소리친다.

"아빠, 진달래꽃은 왜 따요?"

"응, 엄마가 맛있는 것 만들어 준단다."

나는 연분홍 고운 진달래 꽃잎을 따며 녀석에게 대답한다. 따던 꽃잎을 하나 입에 넣고 우물거려본다. 약간 새콤한 맛이 있기는 하지만, 내 추억 속의 어린 날 먹던 진달래 맛은 아니다. 아마도 기억이란 자꾸 윤색되어 실제로 없는 맛들이 상상으로 덧붙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래도 나는 마치 어린 날로 돌아간 듯한 착각에 빠져 진달래꽃잎을 딴다.

▲ 솔숲과 진달래가 어울려 새 봄을 일구어 낸다.
ⓒ 최성수
어느새 준비했는지 아내는 쑥과 진달래꽃잎을 예쁘게 장식한 진달래 화전과 오미자 물에 띄운 진달래 화채까지 만들어 내놓는다.

"진달래꽃은 먹을 수 있는 꽃이야!"

늦둥이 진형이 녀석도 맛이 좋은지, 연신 젓가락을 화전에 가져간다.

"음, 봄맛이야."

내가 한마디 하자, 진형이 녀석도 신이 나서 묻는다.

"진달래 맛이 봄맛이야?"

"그러엄. 진달래 꽃잎 속에 봄이 숨어 있다가 우리 진형이 입에 '봄이 왔습니다' 하고 쏘옥 들어오는 거야."

제 엄마가 웃으며 녀석에게 농담을 한다.

▲ 고운 빛깔의 화채. 봄 빛이 바로 이런 색이리라.
ⓒ 최성수
오미자 물에 살짝 담가 낸 진달래 화채에도 봄이 한가득 들어 있는 것 같다.

겨우내 죽은 것 같던 세상을 제일 먼저 열어젖히고 이제 봄이라고 알려주는 꽃, 진달래. 우리나라 어느 곳이나 봄이면 지천으로 피어나 비로소 이 땅에 봄이 왔음을 알려주는 꽃 진달래는, 그냥 꽃이 아니라 이 땅에 살다 간 수많은 사람들의 마음이 담겨 있는 영혼 같다. 그래서 신동엽 시인은 그 넋을 '진달래 산천'이라고 노래했는지도 모른다.

길가엔 진달래 몇 뿌리
꽃 펴 있고,
바위 모서리엔
이름 모를 나비 하나
머물고 있었어요

잔디밭엔 장총(長銃)을 버려 던진 채
당신은
잠이 들었죠.

햇빛 맑은 그 옛날
후고구렷적 장수들이
의형제를 묻던,
거기가 바로
그 바위라 하더군요.

기다림에 지친 사람들은
산으로 갔어요
뼛섬은 썩어 꽃죽 널리도록.

남햇가,
두고 온 마을에선
언제인가, 눈먼 식구들이
굶고 있다고 담배를 말으며
당신은 쓸쓸히 웃었지요.

지까다비 속에 든 누군가의
발목을
과수원 모래밭에선 보고 왔어요.

꽃 살이 튀는 산 허리를 무너
온종일
탄환을 퍼부었지요.

길가엔 진달래 몇 뿌리
꽃 펴 있고,
바위 그늘 밑엔
얼굴 고운 사람 하나
서늘히 잠들어 있었어요.

꽃다운 산골 비행기가
지나다
기관포 쏟아 놓고 가 버리더군요.

기다림에 지친 사람들은
산으로 갔어요.
그리움은 회올려
하늘에 불 불도록,
뼛섬은 썩어
꽃죽 널리도록.

바람 따신 그 옛날
후고구렷적 장수들이
의형제를 묻던
거기가 바로
그 바위라 하더군요.

잔디밭엔 담배갑 버려 던진 채
당신은 피
흘리고 있었어요


진달래 화전과 화채로 봄맛을 한껏 즐긴 밤, 마당가에 나와 서니 소쩍새 울음이 그치지 않고 울려온다. 소쩍새 울음 속에 어둠 저 편에서 진달래꽃이 봄밤을 밝히고 있다.

따라 나온 진형이 녀석이 그 진달래를 바라보며 혼잣말처럼 중얼거린다.

"진달래꽃은 먹을 수 있는 꽃이야."

이제 정말 보리소골에도 봄이 오긴 온 것 같다.

진달래 화전, 진달래 화채 만드는 법

진달래 화전

1. 찹쌀을 하루 정도(현미 찹쌀 하루, 찹쌀 한 나절) 불린 후, 건져 내어 방앗간에서 곱게 빻아 온다.

2. 색이 곱고 꽃잎이 실한 진달래를 뜯어서 깨끗이 씻는다.

3. 쑥이나 쑥갓도 깨끗이 씻어 놓는다.

4. 찹쌀 가루에 소금을 조금 넣고, 물을 조금씩 부어서 너무 질지 않게 반죽한다.

5. 프라이팬에 기름을 두르고, 반죽을 동글납작하게 만들어 지져 낸다.

6.먼저 한쪽을 익힌 후에 뒤집어서 그 위에 진달래 꽃과 쑥을 모양내어 얹는다.

7.그런 다음 한 번 더 뒤집어서 잠깐 익힌 후에 넓은 쟁반이나 접시 위에 설탕이라 꿀을 골고루 뿌리고 화전을 담는다.

*약한 불에서 천천히 익히는 것이 중요하고, 서로 달라붙지 않게 넓게 펼쳐놓았다가 식은 후에 담는 것이 좋다.

진달래 화채

1. 오미자 물을 만들어 차게 식혀 놓는다.

2. 찹쌀가루로 경단을 만들어 끓는 물에 익혀서 차게 식힌다(동동 뜨면 익은 것이다).

3. 진달래를 깨끗이 씻어 놓는다.

4. 오미자 물에 찹쌀 경단을 넣고 그 위에 진달래 꽃을 보기 좋게 띄워 낸다. / 김선정

태그: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시집 <장다리꽃같은 우리 아이들>, <작은 바람 하나로 시작된 우리 랑은>, <천년 전 같은 하루>, <꽃,꽃잎>, <물골, 그 집>, <람풍>등의 시집과 <비에 젖은 종이 비행기>, <꽃비> , <무지개 너머 1,230마일> 등의 소설, 여행기 <구름의 성, 운남>, <일생에 한 번은 몽골을 만나라> 등의 책을 냈습니다.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