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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 사발의 곤드레 밥에 돌나물 물김치만으로도 소박하고 훌륭한 한끼가 된다.
ⓒ 최성수
지지난 주에 심은 옥수수가 어린 아이 손가락만큼 자라났다. 밭 두둑에 일정한 간격으로 두알씩 심어 놓았는데, 바짝 말라 도저히 생명이라고는 붙어 있을 것 같지 않던 녀석들이 두 주 사이에 땅 속에서 숨을 고르고 몸을 추슬러 저렇게 싹을 틔운 것이다.

그 모습이 신기해 꾸부정하게 허리를 굽힌 채 한참을 들여다보고 있는데, 아내가 옆에서 한 마디 한다.

"내일은 일찍 일어나 돌나물을 좀 뜯어야 하는데…."

그 말을 들은 늦둥이 진형이 녀석이 반색이다.

"응, 돌나물 저기 선희 바위에 많아."

▲ 물가 바위 위에 봄이 왔다고 지천으로 돋아난 돌나물
ⓒ 최성수


▲ 마른 소나무 잎을 거름으로 돋아난 돌나물. 그 여린 싹이 싱그럽기 그지 없다.
ⓒ 최성수
녀석은 저 혼자만이 돌나물 밭을 아는 척하며 제법 고개를 빼들고 턱을 치켜 올린 채 돌나물 밭이 있는 개울 쪽을 향해 손가락질까지 한다. 아내와 나는 녀석의 그 말에 그만 웃음을 터트리고 만다.

몇 해 전의 일이다. 보리소골 골짜기에 작은 거처를 마련하고 주말이면 내려와 얼치기 농사를 짓는데, 오래된 친구 가족 몇이 김이라도 매주고 밤에 별 구경이나 실컷 하겠다며 같이 온 적이 있었다. 워낙 오래되고 친한 친구 부부들이라 아내들도 너나들이 없이 지내는 사이라 농담도 스스럼없이 하는 사이다.

보리소골 이곳저곳을 둘러보다가 경치 좋은 곳에 어울리는 이름을 붙이면 좋겠다는 이야기가 나왔다.

대부분 건천이라 물이 말라있지만, 군데군데 샘처럼 물이 솟아나는 곳이 있는데, 그 중 어떤 곳은 마루처럼 널따란 바위가 둘러앉기 좋게 자리 잡고 있기도 하다.

"저곳은 용숙천이라고 하자."

샘이 제법 웅덩이를 이룬 곳을 가리키며 일행 중 하나가 농담을 했다. 용숙은 친구의 부인 이름이다.

"그럼 저 바위가 넓게 펼쳐진 곳은 선희바위라고 하면 되겠네."

이번에는 다른 하나가 친구 부인 이름을 갖다 붙였다.

그 일이 있고 난 뒤부터 우리 부부는 용숙천이니 선희바위니 하며 아예 고유명사처럼 부르곤 했는데, 늦둥이 진형이 녀석이 그 말을 들었는지, 선희바위라고 진지하게 말하는 바람에 웃음을 터트린 것이다.

▲ 살이 통통하게 올라 실하고 탐스러운 돌나물
ⓒ 최성수
정말 선희바위 있는 곳에는 해마다 돌나물이 심지 않아도 저절로 자라나 우리 식구들의 반찬거리를 대주곤 했다. 오월 중순에 뾰족뾰족 순을 올리기 시작하는 돌나물은 넓은 바위를 집 삼아 점점 퍼지기 시작하는데, 자세히 살펴보면 바위 위에 떨어져 쌓인 나뭇잎과 풀잎들을 땅삼아 실하게도 자라고 있다.

일요일, 어제 이런저런 밭일 때문에 몸이 곤했던지, 깊은 잠에 빠져 있는데 갑자기 늦둥이 녀석의 목소리가 귓전을 흔든다.

"아빠, 벌써 새벽 다섯 시 반이예요. 얼른 일어나세요. 선희바위에 돌나물 뜯으러 가야지요."

녀석의 채근에 그만 자리에서 일어나 주섬주섬 바구니와 칼을 챙겨들고 집을 나선다. 봄날이라서인지 새소리가 유난히 요란하다.

밭을 가로질러 개울을 따라 올라가자 널찍한 선희바위가 나타난다. 바위에서 산비탈 쪽으로 파랗게 돋아난 돌나물이 가득하다. 나는 마치 아무도 모르게 감추어 놓은 보물 상자를 열어보는 기분으로 돌나물을 뜯는다. 초고추장에 새콤하게 무쳐 먹고, 또 물김치도 담가 먹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며 한 삼십 분 돌나물을 뜯으니 제법 바구니가 실해진다.

▲ 깨끗하게 씻어 놓으면 돌나물 물김치 기본 재료 완료
ⓒ 최성수
돌나물 물김치를 생각하니 벌써 십 수년 전의 그 음식점이 생각난다. 그 당시 나는 전교조 관련으로 해직되어 참교육실천위원회에서 근무하고 있었다. 무슨 집회 때였든가, 아니 사범대에 다니는 학생들의 교육에 대한 강의 요청 때문이었던 것 같다.

고려대에서 학생들과 이야기 자리를 갖고 난 뒤, 학생들은 나를 뒤풀이라며 술집으로 데리고 갔다. 고모집이라는 곳이었는데, 고대 학생들에게는 주인이 가족 같은 분이었던 것 같다. 고모 어쩌구 하며 스스럼없이 대하는 태도하며, 술이나 안주도 제가 날라다 먹는 등, 어느 학교 앞이나 있는 마치 학교의 일부가 되어버린 것 같은 술집이었다.

나는 그 때 음식을 조절해야 하는 병에 걸려 있었는데, 나를 진료한 의사는 스트레스 때문인 것 같다며 마음 편하게 가지고 음식 조절을 해야 한다고 몇 번이나 강조를 했다. 그래서 모임이 있을 때면 가능하면 뒤풀이에서 빠지곤 했는데, 그날만은 어쩔 수 없었다.

사양을 하기는 했지만, 막걸리를 몇 잔 마시고, 안주에는 젓가락도 대지 않았더니 주인 아주머니가 사연을 묻고는 대접에 무엇을 가득 담아 왔다.

"이거는 드셔도 될 거예요. 우리가 담가 먹는 건데, 설탕도 하나 안 넣고 만든 거니까요."

아주머니가 내온 것은 돌나물 물김치였다. 돌나물의 파릇파릇한 순과 붉은 고춧가루 물이 어울려 곱디고운 물김치를 나는 그 날 두 대접이나 비웠다.

비록 술을 마음껏 먹지도 못했고, 푸짐한 안주에 젓가락도 대지 않았지만, 그날의 술자리는 내게 지금도 가장 푸짐하고 향긋한 기억으로 남아 있다.

개울물 졸졸졸 흘러가는 시냇가에서 돌나물을 뜯으니 운치가 아주 그만이다. 귓전으로는 물소리를 듣고, 눈으로는 푸릇푸릇 싱그러운 돌나물을 바라보는 이런 재미 때문에 한 주도 빠짐없이 보리소골에 찾아오게 되나보다 하는 생각도 절로 든다.

▲ 돌나물 물김치를 담글 재료들. 좋은 물과 싱싱한 자연산 돌나물이 있으니 남은 것은 맛있게 먹는 일 뿐.
ⓒ 최성수
"아빠, 돌나물 많이 뜯어 왔어요?"

돌나물을 뜯어 돌아오니 진형이 녀석이 묻는다. 나는 바구니를 녀석의 눈앞에 내민다. 녀석보다도 아내가 먼저 놀라고 기뻐한다.

"이렇게 많이 뜯었어요? 돌나물 참 실하고 곱네."

아내는 벌써 돌나물로 어떤 음식을 만들까 생각하는 눈치다.

그날 돌아오는 길에 안흥 시장의 나물 가게에 들러 이것저것 나물을 뒤적이던 아내가 반색을 한다.

"아 이거 곤드레 나물이잖아. 그래, 돌나물 물김치는 곤드레 밥에 제격이지."

그날 저녁에는 돌나물 물김치에 곤드레 밥이 밥상에 올랐다. 달랑 밥에 물김치 하나지만, 밥에는 고소한 들기름과 곤드레 나물의 향이 그대로 배어 있다. 채 맛이 들지 않았지만, 돌나물 물김치는 쌉싸래하면서도 그윽한 봄 맛이 제격이다.

늦둥이 진형이 녀석은 양념 간장을 밥에 쓱쓱 비벼 한 숟갈 퍼 넣고 우물거리다 삼키더니 한 마디 한다.

"곤드레 밥은 정말 맛있어."

나는 밥을 먹으면서 연신 돌나물 물김치에 숟가락을 가져간다. 새벽, 상쾌한 바람을 맞으며 물소리를 듣던 순간이 돌나물 물김치에 담겨 있는 것 같다. 아니, 십 수년 전의 고대 앞 술집의 풍경도 밥상에 고스란히 남아 있는 것 같다.

▲ 완성된 돌나물 물김치. 그 속에 보리소골 골짜기의 모습과 십 수년 전 고대 앞 술집의 인정이 함께 녹아 있다.
ⓒ 최성수
돌나물은 석상채(石上菜)라고도 한다. 돈나물이라고 부르는 경우도 있는데, 원래 이름은 돌나물이다. 돌틈이나 바위 위 같은 데서 잘 자라기 때문에 그런 이름이 붙었을 것이다. 돌나물이라는 이름이 와전되어 돈나물이라는 말이 생긴 것 같다. 초고추장에 무쳐 먹기도 좋고, 물김치를 담가 먹으면 쌉싸래한 봄맛이 그만이다.

돌나물 물김치에 곤드레 밥으로 그 날 우리 가족의 저녁은 다른 어느 때보다도 풍성했다. 확실히 음식은 양이나 맛보다 추억이고 기억인 것 같다. 우리 늦둥이가 돌나물 물김치에 곤드레 밥을 어린 애답지 않게 맛있게 먹는 것도 보리소골의 기억 때문일 테고, 나나 아내가 그런 음식을 좋아하는 것도 그 맛에 얽힌 추억 때문일테니까 말이다.

<돌나물 물김치>와 <곤드레 밥> 만드는 법

<돌나물 물김치>
1. 돌나물은 물에 넣고 살살 씻는다(너무 주무르면 풋내가 난다).
2. 찹쌀 풀을 쑤어 놓는다.
3. 소금물을 만들어 간을 맞추고, 식혀놓은 찹쌀 풀과 고운 고춧가루, 쪽파, 마늘, 돌나물을 넣어 물김치를 담는다.
4. 2-3일 후 먹으면 제 맛이 난다.

<곤드레 밥>
1. 곤드레는 깨끗하게 씻어, 끓는 물에 소금을 넣고 살짝 데쳐낸다.
2. 밥 지을 쌀을 미리 불려 놓는다.
3. 압력밥솥 또는 전기밥솥 밑에 들기름을 고루 바른 후 데쳐놓은 곤드레 나물을 담고, 그 위에 불려 놓은 쌀을 놓는다.
4. 간장에 들기름, 고추 다진 것, 마늘 다진 것, 파 다진 것, 깨소금을 넣어 양념장을 만들어 밥에 비벼 먹는다.
/ 김선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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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집 <장다리꽃같은 우리 아이들>, <작은 바람 하나로 시작된 우리 랑은>, <천년 전 같은 하루>, <꽃,꽃잎>, <물골, 그 집>, <람풍>등의 시집과 <비에 젖은 종이 비행기>, <꽃비> , <무지개 너머 1,230마일> 등의 소설, 여행기 <구름의 성, 운남>, <일생에 한 번은 몽골을 만나라> 등의 책을 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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