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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 최초의 신생국. 호주와 인도네시아 사이에 끼어 있는 강원도 크기 만한 작은 섬나라. 8만 인구의 40% 이상이 하루 70센트로 생활하며 국가 1년 예산이 1억 달러도 안 되는 가난한 나라 동티모르와 혈맹을 자처하던 '빅 브라더' 호주가 티모르 해를 사이에 두고 양국 간 막대한 경제 이권이 걸린 영해권 분쟁에 휩싸였다.

영해 분할을 놓고 두 나라가 팽팽히 맞서고 있는 이유는 영해권 분할 구도에 따라 미화 200억 달러 상당의 막대한 오일과 가스자원의 개발 소유권이 결정되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오일 및 가스 자원이 동티모르 측에 편중돼 있어 동티모르가 요구하는 중앙 해역을 기준으로 영해권이 분할될 경우 호주로서는 이권의 상당 부분을 포기해야 한다.

문제의 뿌리는 동티모르의 역사적 굴곡에서 비롯된다. 동티모르는 500년 동안 포르투갈의 지배를 받아오다 1975년 인도네시아 수하르토 정부가 침략하면서 99년 독립하기까지 인도네시아 군정 치하에 놓이게 된다. 당시 호주 정부는 인도네시아의 동티모르 침공을 묵인하는 대가로 동티모르 해의 3분의 2를 호주 영해로 인정받는 동시에 석유와 가스자원이 풍부한 지역을 석유 공동개발 구역으로 규정해 로열티 수익을 양국 간 50대50으로 나누는 데까지 합의를 끌어냈다.

독립과 함께 동티모르 측은 국제법의 관행대로 해협 중앙선을 기준으로 두 나라의 영해를 다시 나누어 줄 것을 요구하고 있다.

하지만 호주는 공동개발구역 내에서 발생한 수익의 90%를 동티모르에 주는 대가로 호주 주도 아래 개발 프로젝트를 지속하되, 영해권 분할 사안은 50년 내지 100년 뒤로 미루자는 제안을 했다. 그러나 동티모르 입장에서는 국제법에 따라 영해가 재조정되면 오일 필드 대부분을 소유하게 되어 90대10이라는 수익배분이 무의미하다고 보고 있다.

특히 관련 설비 구축 및 운영에 따른 고용 창출, 관계 산업 활성화 등 경기 부양 효과를 고려할 경우 현행대로라면 호주의 경제 부양 효과는 연 10억 달러에 이르는 반면, 동티모르는 500만~1000만 달러 선에 불과한 완전 불평등 조약이 된다는 것이다.

99년 당시 호주는 동티모르의 독립 지원을 위해 군인 4000명을 파견하고 유엔군의 사령탑까지 맡으면서 우방의 큰형님 노릇을 톡톡히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익 앞에서는 한 치 양보도 할 수 없다는 태도를 견지하고 있는 것이다.

호주 정부의 태도에 대해 국내외 압력도 만만치 않다. 녹색당과 노동조합 등 호주 내 동티모르 후원 기관들은 독립 지원과 외자 지원을 빌미로 정부가 국익 챙기기에 급급해 가난에 허덕이고 있는 이웃 나라에 대한 인도주의를 저버렸다고 비난하고 있다. 미국 의회에서도 호주 정부가 양국 협상을 보다 공정하게 끌어나갈 것을 정식으로 요청한 바 있다.

하지만 호주 정부는 동티모르가 처해 있는 경제적 어려움은 이해하지만 경제협상과 자선은 분명히 구별돼야 하며, 국익을 위해 협상의 의무를 다해야 한다는 자세를 견지하고 있어 협상의 추이가 주목된다.

덧붙이는 글 | 경제 전문지 <이코노 미스트> 789호에 실렸던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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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화여대 철학과를 졸업한 후 1992년 호주 이민, 호주동아일보기자, 호주한국일보 편집국 부국장을 지냈다. 시드니에서 프랑스 레스토랑 비스트로 메메를 꾸리며 자유칼럼그룹 www.freecolumn.co.kr, 부산일보 등에 글을 쓰고 있다. 이민 칼럼집 <심심한 천국 재밌는 지옥>과 <아버지는 판사 아들은 주방보조>, 공저 <자식으로 산다는 것>을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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