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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일 교육인적자원부에서는 '논술을 위한 사고력 신장, 학교 수업 혁신으로 충분하다'라는 제목으로 추후 시행될 학교 수업방법 혁신방안의 골자(이하 방안)를 발표하였다.

주요 내용을 보면 사고력과 문제해결력 함양을 위한 교육과정 보완, 교과서 개발 보급, 교과교육과 독서교육 연계강화, 협동학습과 토의·토론학습, NIE 교육 포함한 다양한 교수학습방법 개발 등이다. 또 전문성과 교직관 함양을 위한 교원 양성 제도 개편, 방과후 사고력 신장 프로그램, EBS 논술교육 프로그램 확대 등의 방안도 제시되었다.

교육부는 대학의 의견만을 반영하는 곳인가?

이번 방안의 발표 계기는 얼마 전 뜨거운 논쟁을 일으켰던 2008학년도 서울대 입시전형 방안의 논술비중 강화 방침 발표 이후 교육관련 단체의 비판 여론과 청와대·교육부와 서울대 간 '본고사형 논술' 논쟁에 따른 것으로 보인다.

이 과정에서 교육부는 처음에 서울대의 논술강화 방침에 대해 긍정적 태도를 보이다 비판 여론이 거세지자 태도를 바꾼 바 있다. 이런 점으로 미루어 교육부의 이번 방안 역시 대학측의 논술 강화 방침을 학교교육에 반영하는 것을 골자로 하고 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잘 알려져 있다시피 논술 실력은 하루 아침에 완성할 수 없다. 더구나 서울대가 도입한다는 통합교과형 논술은 현재 교과별 교육과정을 운영하고 있는 고등학교 교육과정에서 충족하기 어려운 내용이다.

따라서 이를 충족하기 위해서 학생과 학부모가 사교육 기관을 찾을 것이란 점을 예상할 수 있다. 교육부의 이번 방안 역시 바로 이러한 문제의 대비책인 것이다. 즉 통합교과형 논술의 취지를 받아들이면서 사교육 문제의 해법을 학교교육 내에서 찾고 있는 것이다. 그 점은 이번 방안의 제목을 통해서 확인되고 있다.

실효성 없는 방안 될 것

그렇다면 과연 현재 학교교육에서 대학입시에 대비한 논술교육을 할 수 있는가? 교육부의 의도와는 반대로 현재 학교교육은 논술교육을 제대로 수행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본래의 논술 취지를 살릴 수도 없다. 그리고 몇 가지 점에서 교육부의 이번 방안이 여전히 실효성이 없을 것이라는 점을 예상할 수 있다.

우선 사고력과 문제해결력 신장을 위한 교육과정이나 교과서 개편의 경우 현재 진행 중인 교육과정 수시 개편 상황에 현장 교사들이 주체적으로 참여하고 있지 못하다. 이제까지 그랬던 것처럼 대부분 교과의 개발 주체는 대학교수나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의 연구원 책임 하에 진행되고 있어 실제 사고력 신장의 내용이 도입된다 하더라고 현장과 차이나는 것을 피할 수 없다. 이는 실제 운영하는 주체인 교사가 개발과 실행의 주체가 되지 못하는 이상 절대로 피할 수 없는 부분이다.

독서교육과 교과교육을 연계한다는 것도 그동안 수업개선에 힘써온 교사들에게는 또 하나의 타율적 강요일 뿐이다. 연간 4회 평가에 수시로 하는 수행평가 그리고 인성지도와 담임업무, 행정잡무 등의 업무 과중 탓에 전문성을 살리고 싶어도 어려운 현실이다.

또 독서교육이나 논술교육의 본질적 성격상 학생들의 서열을 매기는 입시전형에 반영할 경우 본래의 취지를 살릴 수 없다는 점을 분명히 할 필요가 있다.

여기에 협동학습과 토의·토론학습, NIE 교육 등 다양한 교수학습방법과 관련된 내용들은 이미 현장에서 꾸준히 개발 노력하여 확산되고 있는 교수학습 방법들이다. 이를 모든 수업에 적용시키기 위해서는 준비를 위한 시간과 여건이 마련되는 것이 우선이다. 그럼에도 마치 어떤 특별한 방안인 것처럼 이번 '수업개선 혁신방안'에 넣어놓은 것은 이미 어려운 여건에서 노력하는 교사들에게 대단히 타율적인 느낌을 준다.

나아가 논술교육 강화를 위해 교사양성 체계와 더불어 방과후 교육 및 EBS 논술 프로그램에 반영한다는 것도 이해하기 어려운 내용이다. 도대체 일개 대학의 논술반영이 얼마나 중요한 내용이기에 초중등교육 전반은 물론 교사양성 체제까지 손질을 한다는 것인가? 아무리 논술교육이 중요하다 하더라도 일단 입시준비를 위한 것이기만 하면 방과후 논술교육은 방과후 보충학습으로 변질되고, EBS 논술 프로그램 역시 학교교육의 입시종속을 강화하는 쪽으로 변할 것이 자명한 것 아닌가.

대학 입시 때문에 중등교과과정까지 바꾸나?

교육부는 이번 방안에 첨부하여 외국의 논술시험 사례를 제시하고 있으나, 그들의 경우 우리와 같이 대학서열체계가 공고하지 않다. 나아가 대학입시에서 초중등교육의 자율성을 실질적으로 확보하고 있다. 이를테면 교수가 아닌 교사가 중심이 돼 시험 문제를 출제하고 교육과정을 편성한다. 우리의 경우 서울대를 비롯한 명문대 진학을 위한 과정으로 초중등교육의 자율성이 왜곡되어 있는 이상 아무리 좋은 취지의 평가방법이라 하더라도 제대로 안착될 수 없다.

더구나 현재 서울대를 비롯한 대학에서 평가하고자 하는 논술 방식은 통합교과형 논술이다. 교과별 교육과정으로 운영되는 학교 현실에서 이를 충족시킬 수 있는 길은 김진표 부총리의 말처럼 논술교과를 신설하는 일이다. 이처럼 일개 대학의 입시전형 때문에 중등학교 교과신설 논의가 나온다는 것은 이 나라의 초중등교육의 자율성이 얼마나 대학에 속박되어 있는지를 여실히 보여준다고 하겠다.

교육부는 이제까지 그래왔던 것처럼 이번 방안에서도 말로는 입시교육의 문제를 지적하고 있으면서 정작 입시문제의 본질인 대학서열체제는 전혀 문제 삼지 않고 있다. 더구나 대학서열체제를 유지하고자 하는 일개 대학 입시전형의 논술강화 방침을 학교교육에 강요하고 있다.

논술의 중요성에 대해 누구도 반대하지 않는다. 문제는 논술이 대학입학의 결정적 수단이 될 때, 이미 그것은 논술이 아닌 학생 서열화의 도구일 뿐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예전의 본고사 폐해가 그렇듯이 입시 서열화를 위한 논술 또한 마찬가지의 폐해를 가져올 것이라는 점에서 본고사나 다름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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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 분야와 학교체육, 그리고 학교운동부에서 벌어지는 수많은 현상과 그 배후의 구조에 깊은 관심을 갖고, 언젠가는 변화해야 하고 또 변화해야만 한다는 생각으로 비판적 글쓰기를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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