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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림의 복판에 둥그스럼하고 도톰하게 돋은 산이 여근곡이다.
ⓒ 정근영
선덕왕은 이름 그대로 선덕과 슬기를 갖춘 임금이었던 것 같다. 그는 우리 나라 최초의 여왕으로 쌓은 업적도 많다. 사학자들은 신라의 삼국 통일도 선덕왕 때에 싹이 튼 것으로 평가한다. 선덕왕은 김춘추, 김유신이 삼국통일을 구상하고 대내외적으로 활동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 주었다고 한다.

<삼국유사>에는 선덕왕의 지기삼사(知機三事)를 기록하여 그의 슬기로움을 보여준다. 아래는 지기삼사의 하나이다.

영묘사 옥문지에서 때도 아닌 겨울철에 많은 개구리가 모여서 3, 4일 동안 울고 있었다. 나라 사람들이 이것을 괴이하게 여겨 왕에게 알렸다. 왕은 급히 각간 알천, 필탄 등을 시켜 정병 2천 명을 뽑아 서교에 가서 여근곡을 탐문하면 반드시 적병이 있을 것이니 덮쳐서 죽이라고 명령했다.

이에 두 각간이 명령을 받고 각각 군사 1천 명씩을 거느리고 서교로 갔다. 부산 아래에 과연 여근곡이 있었다. 백제 군사 5백 명이 그곳에 매복해 있었다. 신라 군사는 그들을 모두 잡아 죽였다. 백제의 장군 오소란 자는 남산고개 바위 위에 매복해 있으므로 이들도 포위하여 쏘아 죽였다. 그리고 후속부대 1천3백 명이 오는 것까지 모두 죽여서 한 명도 남기지 않았다.

군신들은 이 일이 하도 신기하여 왕에게 그 까닭을 물었다. 왕은 대답했다.

"개구리의 노한 형상은 병사의 형상이고, 또 옥문이란 여자의 생식기니 여자는 음이요, 음은 그 색깔이 백색이고 백색은 서방이므로 군사는 서쪽에 있음을 알 수가 있었오. 또 남자의 생식기는 여자의 생식기에 들어가면 반드시 죽게 되므로 이것으로써 쉽사리 잡을 줄 알 수 있었오."


여근곡, 쉽게 말해서(속되게 말해서인가?) '보X골'이다. 술취한 사람이거나 불량배가 아니라면 점잖은 입에 여성의 성기를 가리키는 '보X'를 담는 것은 금기다. 우리 사람들의 의식에는 성은 감추는 것, 더러운 것, 쑥스러운 것이라는 생각이 숨어 있기 때문이다.

성(性)은 더러운 것인가. 아니다. 성은 깨끗한 것이다. 아니 성(性)은 깨끗해야 한다. 성(性)이 더럽지 않고 깨끗할 적에 성은 성(聖)스러워진다. 성이 성스러워질 적에 세상은 맑아지고 밝아진다. 선덕왕은 여근곡을 침범하여 성(性)을 더럽히는 백제군을 물리침으로써 성(性)을 맑히고 성을 성스럽게 했다.

성은 본래 성스러운 것이다. 불성(佛性)은 성스러운 것이지 않나. 사람은 누구나 불성을 갖고 있고 그 성스러움으로 부처가 될 수 있다. 비단 사람뿐만이 아니라 모든 중생의 본성은 불성이다. 모든 존재는 다 성스러운 것이다.

그렇지만 속물로 살아가는 세속인에게 역시 성은 부끄럽고 더럽고 속된 것인가 보다. 조선 시대 경주 부윤으로 부임하는 관리들이 이 여근곡을 보지 않으려고 먼 거리를 둘러 갔다고 하지 않는가.

여근곡을 둘러보고 나오다가 건천읍에서 식당에 들러 점심을 먹으면서 젊은 안주인에게 여근곡에 대해서 물어 보았다. 그런데 그 여자는 여근곡을 모르는 체 했다. 같은 읍내에 있는 여근곡을 모를 리 있는가. 젊은 아낙은 여근곡을 입에 담는 것이 불결하게 생각했거나 부끄럽게 생각했음이 분명하다.

▲ 여근곡 가는 길. 고속도로에서 건천 IC를 빠져 나간다.
ⓒ 정근영
여근곡을 가자면 경주 터미널에서 신평리 가는 버스를 타면 20분이 걸린다. 하지만 하루 두 번 밖에 없는 차를 기다린다는 것도 무리다. 거기다가 버스로 가면 또 이곳에서 내려 약 2Km를 걸어야 한다. 우리는 승용차로 여근곡을 찾았다. 승용차로는 경부고속도로 건천나들목을 나와 건천초등학교 4번국도에서 좌회전하여 신평리 윗장시 마을에서 상원시 마을을 거쳐서 가면 된다.

하지만 우리는 길을 잘못 들러 한참을 헤매다가 친절한 트럭 운전기사를 만나서 그의 안내로 비로소 찾아갈 수 있었다. 여근곡은 고속도로에서 빤히 보이는 곳인데도 그랬다.

▲ 창조의 신, 삼신 할머니상.
ⓒ 정근영
▲ 하늘과 닿은 산등성이를 보라. 임산부가 배 위에 손을 얹고 누워 있는 모습이 상상되지 않는가.
ⓒ 정근영
여근곡 미쳐 못가서 마을 입구에 제법 큰 연못이 있다. 연못이라기보다는 저수지라고 하는 것이 옳겠다. 저수지 이름이 불심지다. 부처 연못인 것이다. 여근곡에서 흘러온 물이 모여 부처못을 이루다니... 좀 이상하다는 생각도 들었지만 이내 그렇구나 하고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불교 설화에는 부처가 마야 부인의 옆구리로 태어났다고 하지만 성인도 역시 여근을 통하지 않고는 나올 수가 없는 것이리라.

여근곡 전망대로 들어갔다. 펼침막 시화전이 한창이다. 커다란 펼침막에 그림과 시를 게시한 것으로 상설 전시를 하는 것 같다. 마고 할머니 천지창조의 신화를 시로 표현한 것이다. 민족 종교에서 성전으로 삼고 있는 '천부경'도 걸려 있었다.

▲ 전망대(단층 옥상임)에 올라가서 여근곡에 대한 안내를 하는 여산 박용 선생, 왼쪽에서 두 번째.
ⓒ 정근영
▲ 복개구리 수석, 저절로 이렇게 생기다니 신기하다.
ⓒ 정근영
인공 연못에는 탄생의 신 '삼신 할머니상'이 아기를 보듬고 앉아 있다. 그 앞에는 복개구리 수석이 놓여 있고. 이곳에 여근곡 전망대를 만든 여산 박용 선생을 찾았다. 박용 선생은 일흔에 가까운 나이답지 않게 아주 젊은 모습이다. 여근곡을 자연문화재로 경주의 명물로 가꾸어 보겠다고 한다. 오만 평 땅을 사서 성박물관을 만들어 새로운 명소로 만들겠다는 당찬 포부를 보인다.

단층 옥상 전망대로 올라갔다. 바로 눈앞에서 여근곡이 숨을 쉰다. 몇 해 전에 여근곡이 자리 잡은 오봉산에 산불이 나서 주변은 다 불탔지만 여근곡만은 불타지 않았다고 한다. 여근곡의 음기가 불을 쫓아 냈다는 것이다. 여근곡에는 도랑이 있어서 맑은 물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물이 흘러 내린다면 그 주변은 습기로 채워져 있을 터, 그러니 산불이 침범할 수 없었던가 보다.

▲ 해설하는 여산 박용 선생은 신이 난다.
ⓒ 정근영
▲ 여근곡은 마고의 땅, 천지 창조가 시작된 땅이다.
ⓒ 정근영
펼침막 그림에 신선 같은 한 노인이 관운장 같은 멋진 수염을 달고 있다. 그 노인이 누굴까. 바로 전망대 주인 박용 선생이다. 그는 관광객들을 맞을 때 이렇게 분장을 한다는데 오늘은 몸이 피곤해서 좀 쉬고 있던 터라 분장을 하지 않았다고 한다. 하지만 여근곡에 대한 설명을 할 적에는 신이 나는 듯 목소리를 높였다.

박 선생이 가리키는 손길을 따라 여근곡 뒤 오른쪽 산등성이를 바라본다. 임산부가 손을 배 위에 얹고 누워 있는 모습이다. 사람들은 자연을 보고 재미난 상상을 한다. 이제 여근곡에서 천지창조의 마고 할머니 신화와 천부경을 떠올리고 삼신할머니의 설화와 복개구리의 전설을 지어낸다. 이렇게 해서 여근곡은 경주의 새로운 명물이 되어 수많은 관광객을 부르고 있다.

▲ 여근곡 부처못, 낚시터다.
ⓒ 정근영
▲ 여근곡에 있는 유학사.
ⓒ 정근영

 

덧붙이는 글 | 경주시 건천, 여근곡. 선덕왕 지기삼사의 전설이 깃들어 있는 곳입니다. 여근, 욕지거리를 내뱉는 사람이 빠지지 않고 입에 담는 말이겠지요. 여근, 성이 속되지 않고 성스러워질 적에 세상은 맑아질 것입니다. 지난 9월 말경에 여근곡을 다녀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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