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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표지
ⓒ 푸른길
서울올림픽이 열리던 1998년 전까지 해외뉴스에 고정적으로 등장하던 기사거리가 있었다. 바로 이란-이라크 전쟁. 매주 토요일이면 방영되던 주말의 명화에서 나쁜 인디언들을 물리치던 정의의 미국이 이라크 편을 들었기에, 어린 마음에 이란이 나빠서 전쟁을 하는 줄만 알던 때였다. 아마 당시 뉴스도 다분히 이란에 대해 편파적이었던 것 같은데 당시 이란의 호메이니는 지금의 후세인만큼이나 전쟁광으로 인식되던 때였다. 그랬던 이라크가 언젠가 쿠웨이트를 침공하여 미국한테 된서리를 맞고선 십수년 동안 미국에 의한 경제봉쇄를 당하더니, 결국에는 미국한테 전쟁에 패하게 되고 현재에 이르렀다. 영원한 우방은 없다는 말이 참으로 실감나는 국제관계다.

미ㆍ소 냉전시대까지만 해도 이분적으로 쉽게 분리되던 국제정세는 이제 각 국가의 명분과 실리의 실타래로 복잡하게 얽혀서 어느쪽이 옳고 그른지 판단하기 어렵게 되었다. "대량 살상 무기를 제거함으로써 자국민을 보호하고 세계 평화에 이바지한다는 이라크 전쟁의 명분 이면에는, 전쟁을 통해 재고품을 소모하고 신제품을 실험하고자 하는 군산 복합체의 이해관계와 석유 자원을 안정적으로 확보하려는 미국의 전략이 깔려 있다"는 지적은 세계의 경찰이 되고자 하는 국가가 단순히 희생정신으로만 일관하지 않는다는 냉엄한 현실을 보여준다. 이러한 복잡한 국제정세 속에서는 더 이상 단순히 우방국의 편에 서서 분쟁국가간의 옳고 그름을 판단하여서는 안된다는 교훈을 준다.

그럼 도대체, 이렇게 입장이 순식간에 바뀌곤 하는 국제정세를 두고 우리는 어떤 시각을 가져야 하는 것일까. 동유럽이나 아프리카에서 빈번히 발생하는 '인종청소'라는 현상의 이면에는 도대체 어떤 사실이 숨겨져 있는 것일까? 평소 뉴스를 통해서만 듣던 분쟁지역이나 각종 세계의 테러 사건에 대해 분쟁의 원인이 무엇인지, 해결되지 않는 민족간의 갈등의 원인이 무엇인지에 대해 알고 싶다면 바로 이 책이 기본적인 해답을 알려준다.

우리 귀에 익숙한 분쟁 지역인 팔레스타인, 동티모르, 소말리아 등을 비롯하여, 아니 이런 곳도 포함되나 할 정도의 지역까지 포함하여 이 책에는 30곳이나 되는 분쟁 지역에 대해 그 역사와 원인, 현재 상황 등에 대해 적고 있다. 이 책을 읽고 나면, 빈번히 수입되는 외국 영화에서 특공대에 죽어나가는 테러범들, 작전지역으로 등장하는 각종 국가들이 단순히 우리편이 아닌 나쁜 등장인물로만 보이지는 않을 것이다.

이 책을 읽다 보면 중동과 동유럽에서 벌어지는 대부분 분쟁의 기본적인 원인이 기독교와 이슬람교 간의 대립, 인종간ㆍ민족간의 갈등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십자군전쟁 이래 1000여년이 넘도록 두 종교는 화합의 길을 찾지 못하고 있는 듯하다. 또한 동시에 우리민족에게 이와 같은 종교 문제가 아직 극심할 정도로 드러난 적이 없다는 사실에 너무 감사한 마음을 느끼게 된다.

같은 종교를 믿으면서도 민족이 달라 싸우기도 하고, 민족이 같으면서도 종교가 달라 싸우기도 한다. 어느 때든 힘없는 측은 분리와 독립과 자유를 희망하고, 힘 있는 측은 강제로 억압한다. '테러는 가난한 자의 전쟁이요, 전쟁은 부유한 자의 테러이다'라는 말은 이러한 힘의 논리를 놓고 볼 때 너무나도 가슴에 와 닿는 말이다.

그 단위가 국가와 국가 간이 되든, 국가와 집단, 집단과 개인 간이 되든 간에 서로 화합하지 못하는 것은 인류가 슬기롭게 해결하고 넘어야 할 최종 과제인 것 같다. 종교가 다르고 인종이 다르다는 이유로 수십만이 되는 사람을 '청소'해버릴 수 있을까? 하지만 불과 수십여 년 전에 일본으로부터 거의 비슷한 취급을 당했던 우리 민족을 되돌아 본다면, 이념이 다르다는 이유로 서로에게 총을 겨누었던 전쟁을 기억한다면, 이러한 인류의 잔악성은 언제 어느때든 나타날 수 있는 집단적 인류의 한가지 본성인 듯 느껴진다. 이 책을 잠시 덮으며 스스로 자문해 본다. 나는 과연 한 개인의 양심을 통해 집단의 의지를 거스릴 수 있는 사람일까?

실로 세계의 여러 곳에서 여러 가지 이유로 인해, 서로 미워하고, 죽이고, 죽어 간다. 때문에 선의의 피해자도 생기고, 서로 믿지 못하게 되고, 자신의 키만큼이나 되는 총을 들고 싸우는 소년ㆍ소녀병이 생겨나고 전사한다. SF나 미래소설에서나 볼 수 있는 전지구적 평화는 과연 이루어질 수 있는 것일까? 대한민국은 더할 나위 없이 평화로워 보이지만, 미국이나 서방의 눈에는 '악의 축'을 곁에 둔, 잠재적인 분쟁지역일 것이다. 만일 평화적인 통일이 이루어지고 중국과 국경을 마주한다면, 중국에 의해 억압되는 티벳이나 위구르의 경우를 예사롭게 보아서는 안 될 것이라는 생각마저 든다.

서로의 이득을 포기하지 않는 한 평화로운 공존의 길은 쉬이 오지 않을 것 같다. 그러나 어느 한 쪽의 피해를 바탕으로 이뤄진 평화는 진정한 평화가 아닐 것이다. 이 책을 통해 세계에서 벌어지는 분쟁을, 어릴 때처럼 우리 편이 도와주면 우리 편이라는 시각을 떠나, 좀더 깊게 생각해보게 되는 기회를 가져 본다.

덧붙이는 글 | 도서 제목 : 세계의 분쟁지역
저자 : 이정록/구동회
출판사 : 푸른길


세계의 분쟁 - 지도로 보는 지구촌의 분쟁과 갈등

구동회.이정록.노혜정 외 지음, 푸른길(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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