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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삼국지>는 찬란한 성공보다, 아름답게 퇴장하는 것이 더 어렵다는 것을 가르쳐준다.
ⓒ 민음사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동양 문화권에서는 이제 필독서로 취급되고 있는 <삼국지>. 광활한 중국대륙을 배경으로 벌어지는 영웅호걸들의 장쾌한 무용담과 드라마틱한 인생역정은 현대인들에게도 인생의 지침서이자 처세술의 교본으로도 손색이 없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삼국지>는 결국 실패자들의 이야기라는 점이다. 엄밀히 말해 <삼국지>의 주인공들 중에서 승자는 아무도 없다. 조조도, 유비도, 손권도, 제갈량도. 한 시대를 풍미한 수많은 영웅호걸과 그들이 피땀 흘려 세운 기업은 모두 한 세기를 넘기지 못하고 허망하게 역사의 그늘로 사라졌다.

삼국을 일으킨 세대들이 지어놓은 과실을 따먹었던 것은 엉뚱하게도 사마씨의 진나라였다. 그러나 통일제국을 세운 진 황조 역시 창업군주인 무제(사마염) 사후, 반세기를 지탱하지 못하고 다시 분열의 역사로 회귀했다는 점을 감안할 때 완전한 승자라고 부르기는 어렵다.

주목할 것은, 알고 보면 <삼국지>를 풍미했던 수많은 영웅호걸 중에서 결말이 평안했던 인물은 거의 없다는 것이다. 동탁과 여포는 모두 측근들에게 배반당해 최후를 맞았고, 원소와 유표는 자식들의 골육상쟁으로 기업이 무너졌다,

관우는 지나친 자만심으로 정치적 판단을 그르쳤고, 장비는 부하들을 학대하다가 목이 잘렸다. 유비는 사적인 원한으로 전쟁을 일으켰다 실패하며 국력의 쇠퇴를 가져왔고, 제갈량과 강유 역시 무리한 전쟁을 주도하다가 결국 자신의 명운까지 재촉하고 말았다.

이것은 물론 너무 결과론적인 관점일 수도 있다. 그러나 <삼국지>의 독자들에게 깊은 여운을 남기는 것은, 그들의 위대한 무용담보다 인물들이 비범한 재능에도 불구하고 시대의 불운을 극복하지 못해 좌절할 수밖에 없었던 애석함에 있다.

험난한 역경을 헤치며 살아온 영웅들에게 찬란한 성공의 순간은 짧다. 그러나 한 순간의 잘못된 정치적 판단이나 불운은 순식간에 그들이 오랜 세월 쌓아온 공든 탑을 무너뜨리고 만다. 오늘날 저명한 정치가나 예술가, 학자, 운동선수, 연예인에 이르기까지. 한 때 찬란한 영광을 누리다가 한 순간의 실수로 시대의 패배자가 되는 모습은 과거와 별반 다르지 않다.

▲ 비범한 인물들이 순간의 선택과 시대의 불운으로 좌절하는 모습이 깊은 여운을 남긴다.
ⓒ 애니북스
조조가 만일 적벽대전에서 승리했더라면, 유비와 관우가 사적인 감정을 자제하고 오나라와의 동맹을 유지했더라면, 제갈량과 북벌시에 위연이 제시한 기습작전을 용인했더라면? 역사에 만약이라는 가정만큼 부질없는 것도 없지만, 한 순간의 선택으로 어쩌면 역사의 판도가 완전한 뒤바뀌었을 운명의 순간은 무수히 많았다.

위대한 인물들조차 한 순간의 선택으로 인생을 수렁에 몰아넣게 되는 원인은 대개 무리한 '집착'에서 나온다. 스스로에 대한 과도한 자만심, 성공에 대한 과도한 욕망, 냉정을 잃어버린 지나친 오기는 결국 자신만이 아니라 집단마저 파국에 이르게 만든다.

태산을 옮길 것 같은 용맹도, 삼라만상을 통찰하던 지혜도, 그 순간에는 모두 무용지물이 되고 만다. 실화가 아니라 소설속의 한 장면이기는 하지만, <삼국지> 후반부에 제갈량이 사마의를 유인하려던 계책이 물거품이 되고 난후 "일을 세우는 것은 사람이 하지만, 이루는 것은 하늘에 달렸구나" 하며 탄식하던 모습은, <삼국지>의 장대한 역사를 한 마디로 함축해서 정의내리는 표현이지 않았을까.

우리는 모두 궁극적으로 해피엔딩을 소망한다. 결과가 모든 것을 이야기해주는 것은 아니라도, 금메달을 목표로 뛰는 선수처럼, 아름다운 결말을 기대하며 인생의 동력을 얻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삼국지>는 결국 성공의 문턱에서 좌절할 수밖에 없었던 위대한 패배자들의 이야기인 동시에, 우리에게 인생에서 진정 '아름다운 퇴장'이란 어떤 것인가를 시사해주는데 더 큰 의미가 있다.

삼국지 세트 - 전10권

나관중 지음, 이문열 엮음, 민음사(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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