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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수 옥주현이 극중 아이다로 분장하고 열연하는 모습
ⓒ 신시뮤지컬컴퍼니
요즘 문화계에는 뮤지컬 공연이 봇물 터진 듯 흥행하고 있다. 그만큼 훌륭한 작품들이 무대에 올려진 것은 물론, 거기에 부응하는 관객들의 호응이 어느 때보다 뜨거운 때문이다. 그런 가운데 여러 작품을 제쳐두고 사람들이 <아이다>를 고른 것은 엘튼 존의 음악과 출연하는 배우들의 탁월한 노래와 춤 실력에 높은 점수를 준 때문이리라.

하지만 무엇보다 많은 관객들을 '아이다'로 이끄는 매력은 브로드웨이 '팰리스 시어터(Palace Theater)'에서 공연되었던 <아이다>의 원래 무대와 의상 등을 공연이 끝난 후 그대로 한국으로 공수해 왔다는 점일 것이다.

▲ 색감의 대비를 통해 화려함의 극치를 보여준 장면
ⓒ 신시뮤지컬컴퍼니
특히 강렬한 색감과 함께 화려함과 은은함이 적절하게 조화된 무대장치는 다섯 번이나 토니상 후보에 오르고 <회전목마>(carousel)로 토니상을 수상하기도 했던 실력자 밥 크로울리(Bob Crowley)의 작품이다. 그는 이 작품의 의상디자인까지 함께 작업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문혜영과 옥주현 어떤 '아이다'를 보러 갈까

그렇다면 여러 뮤지컬 중 <아이다>를 선택한 이들은 더블캐스팅된 두 주연여배우 가운데 어느 '아이다'를 보기위해 공연장을 찾을까. 포털사이트에서 '뮤지컬 아이다'를 검색해 봐도 '아이다 보러 가려고 하는데 문혜영과 옥주현 중 누구 공연이 더 나을까요'라는 질문과 그에 대한 답변이 여럿 올라와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 신시뮤지컬컴퍼니
현실적인 결론은 너무도 간단하게 나와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대중스타 옥주현이 뮤지컬에 처음 출연한다는 데 환호하고 그 모습을 지켜보기 위해 적지 않은 돈을 투자해 공연을 보러온다. 심지어 '아이다'를 보러 온 관객들 중 배우 문혜영의 존재를 잘 모르는 이들조차 있을 정도다.

이날 지인들과 함께 옥주현의 공연을 보러 온 관람객 김녹덕(60. 인천 학익동)씨는 '물론 문혜영이라는 배우도 잘 하겠지만, 가수 옥주현에 대한 기대 때문에 오늘 공연을 예매했다'고 말한다. 참고로 김씨는 성악을 전공하고 얼마 전까지 음악학원을 운영했다고 한다.

여기서 잠시 냉정해질 필요가 있지 않을까. 옥주현은 단지 유명한 대중가수라는 이유만으로 주역을 따낸 것이 아니라, 뮤지컬 전문배우인 문혜영과 똑같이 엄격한 오디션과정을 거쳐 발탁된 것임을 잊지 않아야 한다. 때문에 기자는 두 여배우의 공연을 아무 전제조건 없는 상태에서 객관적으로 감상하고 나름의 평을 싣고자 한다.

아이다의 기본적인 스토리는 자신의 나라를 짓밟은 침략국의 장군을 사랑하는 비운의 여주인공 아이다와, 예약된 이집트의 차기 권좌를 버리면서까지 사랑을 택하는 남자주인공 라다메스, 그리고 라다메스와 약혼한 사이지만 결국 그의 마음을 얻지 못한 채 연적 아이다와 사랑하는 라다메스를 함께 죽이고 마는 이집트 공주 암네리스, 이 세 사람을 중심으로 전개된다.

어찌 보면 뻔한 줄거리이다. 애절한 비운의 여주인공과 그녀와 사랑에 빠지게 되는 출세가도의 젊은 청년, 그리고 권세와 부귀영화를 모조리 거머쥐었으나 사랑을 얻는 데 실패하는 불쌍한 여인의 삼각구도. 드라마나 영화에서도 흔히 봤음직한 스토리일 뿐이다.

하지만 그렇게 식상한 스토리라인이기에 오히려 극적 긴장감을 높여주고 감동을 선사하는 것은 아이러니한 일이다. 맨날 먹는 점심메뉴가 김치찌개나 된장찌개이지만 먹을 때마다 즐거움을 느끼는 것과 별반 다를 게 없다.

옥주현, 가창력 뛰어나지만 대사 전달력 약해 아쉬워

여기서 잠깐 문혜영과 옥주현의 노래실력에 대해 이야기해 보자. 둘 다 기본적인 실력은 갖추고 있다고 본다. 배우 문혜영의 목소리가 맑고 감미롭게 다가오지는 않는다. 오히려 함께 열연한 라다메스 역의 이석준이 더 부드러운 목소리를 소유하고 있었다. 여자치고는 굵게 느껴지는 저음은 또 다른 매력을 만들어내고 깊이 있게 다가온다.

한편 자타가 공인하는 가창력을 지닌 가수 옥주현의 노래는 기대했던 것 이상으로 만족스럽다. 그녀가 얼마 전 위염으로 입원했다 채 회복되지 못한 상태에서 공연에 임하고 있다는 것과 뮤지컬에 출연한 것이 처음이라는 점을 모두 배제하고 보더라도 충분히 훌륭한 발성과 아름다운 목소리를 관객들에게 선사한다.

다만 심금을 울릴만한 내면의 깊이가 부족해 보이고 절절한 감정표현이 군데군데 전달되지 못한 것은 아쉬운 대목이다.

이날 공연에 초대돼 객석에 자리한 가수 이문세씨는 이렇게 얘기한다. '그 정도면 훌륭하지 않나요? 대사전달력이 조금 미흡한 것을 제외하곤 흠 잡을 데가 없다고 봅니다'라고 말했다.

그렇다면 두 여배우의 연기는 어떨까. 사뭇 궁금한 대목이 아닐 수 없다. 한 사람은 7년 동안 한 우물만 판 뮤지컬 전문배우이고, 다른 한 사람은 연기 자체가 처음이라 할 정도이기에 비교한다는 것 자체에 무리가 있다고 볼 수도 있다.

예측은 크게 빗나가지 않았다. 문혜영은 비운의 여주인공 아이다 역할을 잘 소화해 낸 반면, 옥주현은 노래실력과는 달리 표정과 대사전달 능력에선 아직 부족한 점이 많은 듯 보였다. 하지만 초반부에 등장한 이집트 병사들과의 격투장면에선 오히려 옥주현이 상대적으로 더 리얼한 연기를 보여주기도 했다.

▲ 아이다가 노예로 잡혀와 라다메스의 병사들과 격투를 벌이는 모습
ⓒ 신시뮤지컬컴퍼니
완벽한 연기를 보여주진 못했으나 공연 내내 정열적으로 타오르며 의욕으로 가득찬 그녀의 눈빛을 보고 있노라면, 지속적으로 뮤지컬에 관심을 가지고 훈련한다는 가정 하에 '어느 누구 못지않은 뛰어난 배우로 성장할 것'이란 기대를 갖기에 부족해 보이지 않는다.

뮤지컬 <아이다>에는 이 두 배우 말고도 걸출한 연기력을 자랑하는 배우들이 포진돼 있다. 암네리스 역을 연기하는 배해선과 유채정, 라다메스 역의 이석준과 이건명, 그리고 조서 역할은 맡은 성기윤과 이집트 왕 파라오 역의 김길호에, 감초같은 메렙 역을 잘 해내 관객들로부터 뜨거운 박수를 받은 김호영까지 일일이 나열하기 힘들 정도로 탁월한 실력파 배우들로 구성돼 있다.

컬컬한 목소리로 극중 조서의 정치적 야욕을 실감나게 보여준 성기윤의 카리스마와, 깊이있는 표정연기와 중후한 음성으로 경외심을 가지게 하는 김길호, 그리고 춘향전의 방자같은 메렙 연기를 감칠맛 나게 해낸 김호영은 이 작품을 돋보이게 하는 중요한 양념이라 하겠다.

한 가지 아쉬운 점이 있다면 주연배우들이 연기할 때 뒤에서 안무를 하는 조연배우들의 움직임을 일일이 보기 힘들다는 것이다. 한 사람 한 사람 어느 누구랄 것도 없이 모두 멋진 춤 솜씨와 아름다운 화음을 가졌기에 그들의 손짓과 표정을 하나도 놓치지 않고 감상한다는 것은 간과할 수 없는 대목임이 틀림없다.

▲ 배우 문혜영이 극중 아이다로 분해 연기하는 장면
ⓒ 신시뮤지컬컴퍼니
그 중에서도 특히 아이다와 함께 노예로 잡혀온 누비아인들이 합창하는 장면은 가히 소름이 돋을 정도로 감동적이고 완벽한 화음을 자랑한다. 물론 이에 못지않게 아이다와 암네리스의 듀엣곡, 그리고 라다메스까지 가세한 주인공 셋이 만들어내는 환상적인 선율은 보는 이의 가슴을 벅차오르게 만든다.

주연에 따라 다른 색깔, 두 번 봐도 감동적인 뮤지컬

공연을 지켜보고 있노라니 영혼이 맑아지는 느낌이 든다. 머릿속은 하얗게 텅 비워진 채 그 안을 아름다운 음악과 화려한 무대장치의 색감이 빈틈없이 채워나가고 있는 것이다. 객석에서 느끼는 감동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암네리스 공주의 화려하고 사치스런 궁중생활을 보여주는 대목에서는 약간은 농염한 분위기가 연출되고, 20분 간의 휴식 후 올려지는 첫 장면에서는 사이버틱한 무대까지 감상할 수 있다.

이 외에도 공연 중간중간에 펼쳐지는 조연배우들의 군무(群舞)는 넋을 잃고 쳐다봐야 할 정도로 멋지고 아름다우며, 무대 아래에서 그 존재조차 알려지지 못한 채 연주하는 17인조 오케스트라와 그들을 지휘하는 박칼린씨에게도 기립박수를 보내고 싶다.

특히 암네리스 공주 단 한 사람만을 위한 패션쇼 장면에서는 아름다운 색감의 극치를 보여줬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듯싶다.

ⓒ 신시뮤지컬컴퍼니
누가 기자에게 두 사람의 공연 중 어느 하나만 택하라고 한다면 이렇게 대답하겠다. '가능하면 둘 다 보시라고' 감미로운 목소리로 뭇 여성을 녹이는 가수 성시경이 있는가 하면, JK 김동욱의 남성적인 저음의 목소리 또한 우리에겐 없어서는 안될 보배로운 존재이다.

연기력은 조금 떨어질지 모르겠으나 그 존재만으로도 팬들을 즐겁게 해주는 스타가 있는 반면, 오직 연기력 하나만으로 승부해 대중으로부터 박수를 받는 이들도 있게 마련이다.

얼마 전 관람했던 영화 <왕의 남자>와 마찬가지로 뮤지컬 <아이다> 역시 두 번 봐도 전혀 아깝지 않은 명작임에 틀림없다. 아니 오히려 다시 보는 공연이 훨씬 감동적이고 더욱 섬세하게 가슴을 울린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사랑과 현실 사이에서 수없이 번민하다 결국은 현실을 택하고 만다. 딱 한번만이라도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목숨을 거는, 애절하고 가슴 시리지만 용기있는 사랑을 해보고 싶다.

사막 아래의 한 평 남짓한 무덤 안에서 아이다와 라다메스가 마지막으로 사랑을 불태우는, 뮤지컬 '아이다'의 마지막 장면을 보면서 느끼게 되는 솔직한 감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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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을 사랑하고 대자연을 누리며 행복하고 기쁘게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서울에서 평생 살다 제주에서 1년 반,포항에서 3년 반 동안 자연과 더불어 지내며 대자연 속에서 깊은 치유의 경험을 했습니다. 인생 후반부에 소명으로 받은 '상담'을 통해 많은 사람들이 더 행복한 가정생활을 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을 꿈꾸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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