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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림책을 읽자, 아이들을 읽자> 표지 입니다.
ⓒ 우리교육
지난해 일이다. 평소 어린이 책을 좋아하던 나는 독서지도 교육을 받고 이웃 엄마들과 의논해 교환수업을 시작했다. 미술학원 운영하는 엄마는 미술을 맡았고, 영어에 능숙한 엄마는 영어를, 나는 독서와 글쓰기를 가르치기로 했다. 그런데 교환수업을 시작하면서 아이들은 전보다 더욱 바빠졌다. 돈 안 들이고 영어, 미술, 독서논술까지 해보겠다는 엄마들 욕심이 아이들을 괴롭힌 꼴이 된 것이다. 결국, 1년 쯤 하다가 그만두기로 했다.

이 책을 읽는 동안 지난 일년간의 경험이 떠오르면서 참 많이 부끄러웠다. 왜 그때 최 선생님처럼 아이들 마음을 읽어주지 못했을까? 왜 여유를 갖지 못했을까?

가장 큰 잘못은 아이들에게 수업 결과물을 요구했다는 것이다. 정말 잘하고 싶었던 탓에 나름대로 열심히 교안을 만들었다. 그 일은 내겐 정말 재미있었다. 그런데 정작 아이들은 괴로운 눈치였다. 장난기가 온몸에서 꿈틀거리는 아이들이 두 시간 내내 수업을 들어야 하니 그럴 만도 했다.

처음 독서지도를 하는 이들은 대부분 나와 비슷한 경험을 했을 것이다. 과도한 의욕 탓인데도 노력에 비해 아이들이 따라오지 못하는 것 같아 맥빠지는 경험을 말이다. 그래서 방법을 바꿔 교안을 간단히 하여 그 책에서 말하고자 하는 것, 혹은 배울 수 있는 것 하나에 집중하기로 했다.

그런데 <그림책을 읽자, 아이들을 읽자>에서 최 선생님은 아이들 마음을 읽는데 온 정성을 쏟고 있었다. 그제야 깨달았다. 나의 오류는 아이들 마음을 읽으려 하지 않고 아이들에게 뭔가 가르치기만 하려 한 것에 있다는 것을. 내가 미처 해보지 못한 것을 하고 있는 최 선생님이 마냥 부러웠다.

아이들은 글을 쓸 때 할 말이 많은 내용에 대해선 길게 쓰면서도 참 잘 쓴다. 반면에 생각해 보지 않은 내용에 대해선 형식적인 감상을 짧게 나열하고 끝내버린다. 그래서 독서지도에 있어서 책에 대한 흥미를 갖게 하는 사전작업이 중요하다. 그래야 아이들은 책을 건성으로 보지 않고 깊게 보고 생각하며 본다.

내가 저지른 두 번째 실수는 이런 사전작업을 소홀히 했다는 거다. 그래서 아이들은 건성으로 책을 읽고 내게 와서 내가 느낀 감성을 배워갔다. 이 얼마나 어처구니없는 바보짓인가, 내가 느낀 감성이 아무리 좋다 한들 그게 아이들에게 무슨 의미가 있는가, 말이다. 중요한 건 아이들 스스로 생각하고 스스로 표현해야 하는 것인데도 나는 아이들에게 그럴 기회를 마련해 주지 못했다.

가끔은 학원에 쫓겨 피곤해 하는 아이를 보면서 적어도 나와 함께 있는 시간에는 편안하게 속내를 털어 놓는 시간이 되었으면, 다른 학원에서는 참아야 했던 말들을 실컷 떠들다 갔으면 했다. 하지만 그건 속마음이었고 아이들에게는 겉으로 보이는 수업 결과물을 요구했다. 나는 아이들에게 인정받기보다는 엄마들에게 인정받고 싶었던 것 같다.

또 다른 잘못을 고백하자면 우리 아이에게 그림책 읽기를 빨리 끊은 것이다. 마치 젖먹이 아이에게 초유를 먹이고 더 이상 영양가가 없다는 이유로 끊듯이 학년이 높아졌다는 이유로 학습에 도움이 되는 책, 글자가 많은 책을 아이가 읽기를 바랐다. 하지만 아이는 자기 혼자 책을 읽기 시작하면서부터 주로 만화 책을 보기 시작했다.

이제 비로소 아이가 하는 독서에 수준을 맞출 수 있을 것 같다. 아이가 하는 대로 따라 가는 것이다. 그래서 아이가 매일 매일 숙제로 내주는 ‘하루에 한 책읽기’ 하기 위해 짧은 글 책만 골라 읽어도 더 이상 군말을 하지 않았다. 밤이면 살아남기 시리즈나 딱 좋아 시리즈를 꺼내 키득거려도 간섭하지 않는다. 오히려 잠들기 직전에 아이가 들려주는 책 내용에 귀를 기울인다. 그러다 보니 아이가 책을 고르는 데는 나름대로 이유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밤마다 우스운 책을 읽고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은 다음날 친구들에게 같은 내용을 들려주기 위해 엄마반응을 먼저 보는 거였다. 친구들이 자신이 한 이야기를 듣고 까르르 넘어가는 모습을 보고 싶은 거다. 그렇게 친구들을 웃겨 시선을 받고 싶은 것이, 어릴 적 내 모습인데도 짐직 모른 체했다. 이런 아이의 사소한 즐거움을 빼앗고 심각한 주제나 지식을 전하는 책을 강요해서야 쓰겠는가. 내가 아이에게 해주어야 할 것은 아이가 원하는 책을 사주고 아이가 들려주는 이야기에 귀 기울이고 웃어주면 되는 거였다.

<그림책을 읽자, 아이들을 읽자>을 읽고 아이에게 그림책을 다시 읽어 주고 싶어졌다. 5학년이나 된 아이에게 이제와서 다시 그림책을 읽어 주다니, 순서가 뒤바뀐 것 같지만 아이가 더 크기 전에 꼭 다시 한번씩 읽어 주고 싶다. 건성으로 글자만 읽었던 그림책을 옛 앨범을 보듯 그렇게 그렇게 천천히 다시 읽어 나가고 싶다.

이 책을 읽기 전 책 목록만 보았을 땐 그리 탐탁지 않았다. 누가 어린이 책에 관해 그렇고 그런 이야기를 썼으려니 했다. 그런데 첫 장 (너와 나, 존재의 소중함 - 강아지 똥)을 읽고는 손을 뗄 수가 없었다. 내가 놀란 것은 학생과 선생이 한결같이 몰입하여 책을 읽는다는 거였다. 선생님이 아이들 하나하나를 주의 깊게 관찰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랬기에 아이들에게 필요한 때에 칭찬하고 격려할 수 있었다.

최 선생님을 보면서 ‘자신이 하는 일에 진실하고 충실할 때 행복이 찾아온다’는 믿음이 생겼다. 그리고 흐뭇했다. 흔들림 없이 꿋꿋이 자신을 지키고 아이들을 지키는 최 선생님의 모습은 정말로 크고도 아늑한 나무 그늘이었다.

덧붙이는 글 | 그림책을 읽자, 아이들을 읽자 / 최은희 지음 우리교육 펴냄 / 값15,000원
쪽수 P 323 (듬성듬성 엮어서 빨리 읽혀요.)

책 읽어 주는 부모나 독서지도 하시는 선생님들 꼭 한 번 읽기을 권합니다. 마음이 따뜻해지는 책입니다.


그림책을 읽자 아이들을 읽자 - 마음을 여는 그림책 읽기

최은희 지음, 에듀니티(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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