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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hemistocles(테미스토클레스.527?-460? B.C. : 아테네의 장군·정치가)의 이름이 적힌 도편
ⓒ 천선채
고대 그리스인들은 자신들의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한 방법으로 미래에 독재할 가능성이 보이는 인물을 뽑아 10년간 해외 추방을 했다. 당시엔 종이가 없었으므로 도자기 조각에 이름을 새겨 넣어 투표를 했다. 그래서 이를 '도편추방제'라 한다.

선거에서는 가장 많은 표를 얻는 사람이 영광의 자리에 오르는 것이 일반적 상식이지만 도편추방제에서는 이런 사람이 오히려 해외로 내쫓기는 비운의 주인공이 되었다. 내쫓거나 자격 박탈을 한다는 의미에서 주민소환제와 유사성이 거론되기도 한다.

그러나 주민소환제는 당선 이후 하는 일을 보아가며 유권자가 재심판을 하는 것임에 반해 도편추방은 아예 부정적 가능성이 있는 인물을 미리 제거한다는 의미에서 차이가 있다. 말하자면 주민소환제는 사람을 잘못 뽑아 발생하는 일종의 후유증이지만 도편추방제는 이러한 후유증 발생을 미연에 방지하고자 하는 고도의 정치적 예방활동인 셈이다.

마침 내년 7월부터 주민소환제가 실시된다. 당선자들에게는 적지않은 경각심을 주겠지만 막상 이 제도가 우리 현실에서 본래의 취지를 제대로 살리게 될지 그것도 의문이다. 혈연, 지연, 학연에 얽힌 온정주의가 이미 현직에 박힌 인물을 쉬이 몰아내기도 어렵게 할 뿐더러 재선거에 따른 주민들간의 갈등도 보통 문제가 아닐 것이다.

그래서 중요한 것은 선거 이후가 아니라 지금이다. 도편추방제처럼 부정과 뇌물에 얼룩질 가능성이 있는 사람은 선거 과정에서 축출해야 한다. 이것이 민주주의와 공동체를 위해 그리스인들이 도편추방제를 실시했던 진정한 의도다. 그들은 이렇게 해서 자신들의 민주주의를 꽃 피웠다. 지방선거를 턱밑에 두고 금품살포와 각종 부정선거가 다시 고개를 들고있다는 보도다. 현직 자치단체장들 세 명 중 한 명이 각종 비리로 사법처리를 받았다는 기막힌 소식도 들린다.

그들을 잘못 뽑은 우리의 잘못도 크다. 지금 우리에게는 2500년전 자신들의 민주주의를 지키고자 했던 그리스인들의 냉철한 사고방식이 필요하다. 딱딱한 도자기 조각 위에 추방자의 이름을 새겨 넣는 수고스러움이나 10년간 그와의 모든 사적인 관계를 끊어야 했던 고통스러움이나 모두 우리에게 큰 교훈을 준다.

이번 지방선거 투표장에 나갈 때는 모두들 가슴 속에 그리스 도자기 조각 하나씩을 품고 나가야겠다. 여기에 혈연, 지연, 학연을 떠나 진정으로 깨끗하게 지역 발전을 이끌어 줄 후보자의 이름을 새겨넣어야겠다. 이제 비리로 얼룩져 온 풀뿌리 민주주의의 상처를 '도편추방'할 때이다.

▲ 임기 중 비리 등으로 기소된 단체장.지방의원 증가 추세
ⓒ P&C리포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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