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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랜덤하우스중앙
연탄재 함부로 발로 차지 마라
너는
누구에게 한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느냐

- 시 <너에게 묻는다> 전문


시집 안 팔리는 요즘 세상에 시를 읽도록 하기 위한 출판사의 노력은 정말 눈물겹다.

랜덤하우스 중앙에서 최근 펴내고 있는 시화집 시리즈는 정호승, 송기원, 안도현과 같은 시인들의 시에 예쁜 그림을 넣어 대중들의 시선을 끌어 모은다. 이 시화집들은 다양한 작가의 대표작들을 모아 예쁜 그림을 곁들인 덕에, 자연스레 출판 시장에서 베스트셀러가 되고 있다.

아무리 시를 잘 모르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맨 처음에 언급한 안도현의 이 '연탄 시' 정도는 한번쯤 들어 봤지 싶다. 시를 비롯한 모든 문학 서적들이 고전하는 요즈음 그나마 '팔리는' 시인으로 꼽히는 안도현, 그의 시는 왜 이토록 인기가 있을까?

"안도현의 사랑은 지순하다"

시인 도종환은 이 시선집에 대한 추천 글을 통해 안도현을 이렇게 평가한다.

"안도현의 사랑은 지순하다. 지순하고 뜨겁다. 뜨거우면서도 서늘하게 빛난다. 안도현은 연애만 아는 시인이 아니라 사랑도 아는 시인이다. 사랑만 아는 시인이 아니라 삶에 대해서도 아는 시인이다. 안도현은 풋풋하고 때 묻지 않았다. (중략) 안도현같이 사랑하고 싶다. 안도현같이 연애하고 싶어진다. 안도현같이 빛나는 상상력으로 자유롭고 싶다."

이 정도면 한 시인에 대한 다른 시인의 찬사치곤 꽤 빛난다. 도종환 자신 또한 사랑과 삶을 뜨겁게 노래하는 시인이면서 '안도현처럼 사랑하고 연애하고 빛나는 상상력을 지니고 싶다'고 말한다.

도대체 안도현의 시가 어떻기에 이 정도의 극찬을 받을까? 이런 궁금증으로 시를 하나하나 읽다 보면 한 시인의 더운 가슴이 그대로 느껴진다.

징하다, 목련 만개한 것 바라보는 일

이 세상에 와서 여자들과 나눈 사랑이라는 것 중에
두근거리지 않은 것은 사랑이 아니었으니

두 눈이 퉁퉁 부은
애인은 울지 말아라
(후략)

- 시 <목련> 중에서


만개한 목련을 보면서 '이 세상의 여자들과 나눈 사랑 중 두근거리지 않은 것은 사랑이 아니다'라는 고백을 할 줄 아는 시인.

앞에서 말한 사랑이란 '육체적이고 즉각적인 사랑'이고 뒤에 말한 사랑은 아마도 '진정으로 마음을 다한 참사랑'일 것이다. 시의 화자는 애인의 눈물을 앞에 두고 이처럼 사랑에 대한 정의를 펼친다.

마음이 두근거리지 않는 사랑은 진정한 사랑이 아니라는 말.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이 구절에 안도현의 시는 그대로 독자의 마음에 와 닿고 만다. 그러면서 두 눈이 퉁퉁 부은 애인에게 '나는 당신을 진정으로 사랑했다'고 말하는 것보다 더 큰 효력을 얻는다. 세상의 모든 사랑은 가슴이 두근거리는 긴장 속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던가.

안도현의 시들은 이처럼 사랑, 인생, 고달픔, 번민, 슬픔, 행복 등에 대해 아주 소박한 정의를 내리는 것이 많다. 그의 시는 어렵고 추상적인 비유를 하는 시들과 달리 실생활에서 느끼고 접하는 감상을 전함으로써 대중적이고 보편적인 가치를 지닌 작품들이 대부분이다. 그래서 그의 시들은 쉬우면서도 마음에 와 닿는다.

연애 시절
그때가 좋았는가
들녘에도 바닷가에서도 버스 안에서도
이 세상에 오직 두 사람만 있던 시절
(중략)
연애 시절아, 그날은 가도
두 사람은 남아 있다
우리가 서로 주고 싶은 것이 많아서
오늘도 밤하늘에는 별이 뜬다
연애 시절아, 그것 봐라
사랑은 쓰러진 그리움이 아니라
시시각각 다가오는 증기기관차 아니냐
그리하여 우리 살아 있을 동안
삶이란 끝끝내 연애 아니냐

- 시 <연애> 중에서


연애하는 남녀의 눈에는 오직 상대방만 보인다. 이 세상에는 오직 두 사람만 있는 것 같고 모든 사물들은 둘을 위해 존재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그때가 얼마나 좋은 시절인가.

연애의 경험을 갖고 있는 모든 이들은 이 시의 첫 구절에 공감할 것이다. 그러나 그 달콤했던 시절이 지나가고 나면 그저 씁쓸한 추억만이 남는다.

그러나 일반적인 생각과는 다르게 시인은 비록 행복했던 연애 시절이 가더라도 남은 것이 많다고 말한다. 그날이 가도 두 사람은 남아 있으며 서로에게 주고 싶은 것이 많아 밤하늘에 별이 뜬다.

그래서 사랑은 쓰러진 그리움이 아니라 '시시각각 다가오는 증기기관차'이며 헤어진 후에도 연애 시절의 감정은 마음에 남아 새로운 삶의 기차를 달리게 만든다.

안도현의 시는 가볍다?

안도현의 시가 인기 있는 이유 중 하나는 바로 이와 같은 '희망적인 사랑과 삶'을 노래하기 때문이 아닐까.

지나치게 슬프고 비관적인 시보다 슬픔 속에 담긴 작은 희망을, 어두운 삶 속에 존재하는 불씨 같은 생명력을 노래하는 시인. 이런 시인의 모습에 많은 사람들은 자신의 삶처럼 공감하고 용기를 얻는다.

그의 시가 지나치게 대중적이고 가볍다는 비판을 서슴지 않고 던지는 비평가들이 간혹 있다. 나도 가끔 그의 시가 인기에 영합하는 대중성을 보이는 것 같아 싫을 때도 있다.

하지만 이 정도의 감성으로 우리가 살아가는 아주 소박한 이야기를 전할 수 있는 시인이 얼마나 있을까. 그런 점에서 좋은 점수를 주고 싶은 안도현의 시들이 책 <잠들지 않은 것은 나와 기차 뿐>에는 옹기종기 모여 있다.

잠들지 않은 것은 나와 기차뿐 - 안도현 시화선집

안도현 지음, 박남철 그림, 랜덤하우스코리아(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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