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 아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와 지휘자 박용훈
ⓒ 김영조
예전엔 문화가 서울에만 집중되었었다. 그래서 문화를 즐기려면 먼 지방에서도 서울까지 힘든 품을 팔아야만 했다. 하지만, 이제 지방 곳곳에서도 문화를 즐길 수 있는 때가 왔다. 지방자치시대가 열리면서 문화에 관심 있는 사람들이 단체장이 된 까닭이다.

그 바람에 서울에 사는 나는 최근 지방 여행을 자주 했다. 지방의 관현악단들의 의미 있는 연주가 종종 있기 때문이다. 지난 8월엔 강릉시립교향악단의 정기연주회에 갔었고, 지난주엔 포천의 창작소리극 공연을 보았으며, 어제는 아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정기연주회가 있었다.

아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는 이번이 3번째 정기공연이었는데 차이코프스키 교향곡 제5번, 엘가의 “위풍당당행진곡” 등 서양음악과 함께 기타 협연이 있었다.

▲ 아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와 협연하는 이병욱 1
ⓒ 김영조

▲ 아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와 협연하는 이병욱 2
ⓒ 김영조

▲ 아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와 협연하는 이병욱과 지휘자 박용훈
ⓒ 김영조
협연자는 우리 음악을 서양음악에 접목한 선구자로 ‘어울림 실내악단’과 가족 악단 ‘둥지’를 이끌고 있으며, 현재 서원대학교 음악학과 교수인 이병욱 씨이다. 그는 황경애씨의 장구 반주와 오케스트라에 맞춰 본인이 작곡한 “기타와 오케스트라를 위한 우리 가락 환상곡”을 신명나게 연주했으며, 직접 노래를 같이한 “검정 고무신“, ”금강산“을 열창해 극장 안을 압도했다.

흔치 않게 시도되는 국악과 서양 음악의 협연은 성공적이었다. 지휘자와 오케스트라 단원들이 우리 음악에 익숙지 않아 많은 서양관현악단들이 꺼리는 게 바로 국악과 서양 음악의 협연이다. 하지만, 국악과 서양 음악을 모두 섭렵한 이병욱 씨와 국악에 대한 이해와 애정을 가지고 있는 지휘자 박용훈 씨 그리고 이에 충실히 호흡을 맞춘 단원들은 전혀 어긋나지 않는 협연 솜씨를 보인 것이다.

▲ 신들린듯 장구 반주를 하는 황경애
ⓒ 김영조
특히 이병욱 기타의 즉흥연주와 황경애 장구의 절묘한 어울림은 우리 음악의 무아지경에 이르도록 만든다. 1고수 2명창이란 옛말이 예서도 증명되는 것인지 황경애 씨의 신들린 장구 반주는 오케스트라 소리에 전혀 위축되지 않는다. 여기에 호응한 클라리넷, 바순 등 관악기와의 어울림도 앙코르를 쉽게 끌어낸 원동력이 되었다.

또 지휘자 박용훈 씨의 맛깔스러우면서도 시원하고 익살스럽기도 한 지휘는 청중들의 큰 호응을 받았다. 그는 단원들을 무리 없이 끌어안고 있었으며, 협연자를 편하게 하는 매력을 가지고 있다는 평을 들었다.

공연 뒤 박용훈 지휘자는 말한다.

“나는 우리의 음악 수제천을 들어보았는데 말러에 비할 바가 아니라 생각되었다. 그래서 우리 음악과 서양 음악과의 협연은 절대 필요한 일이란 믿음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보통 국악과 서양 음악의 협연 시도들은 많아도 자연스럽게 어울리는 경우를 별로 보지 못했다. 20년 전 대학 시절 사물놀이와 오케스트라 협연을 보았는데 오케스트라는 배경만 만들고 빠져 있었으며, 사물놀이 혼자만 놀았다. 대부분 그런 식이었다.

이병욱 교수님은 내가 오기 전인 지난 해 아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와 협연한 적이 있는데 이후 아산시장님과 우리 오케스트라 단장님이 이교수님을 한 번 더 모셨으면 좋겠다고 했다. 그래서 나는 이교수님을 만나 작품을 보았는데 이제 우리나라도 이런 분이 계시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실제 협연해보니 편안하게 와 닿았고 아주 잘 어울린다는 느낌을 받았다. 이 교수님은 이제 우리 것을 들고 외국에도 나갈 자신감을 내게 주었으며, 우리의 갈 길을 제시해 주었다. 서양 음악 만이 아닌 우리의 음악을 가지고 이 교수님과 함께 외국에 나가 연주를 하고 싶다. 좋은 반응을 얻을 것이라 믿으며, 그러기 위해 더 많은 작품을 써주길 부탁드린다.”

▲ 지휘하는 박용훈
ⓒ 김영조

▲ 지휘도중 청중들에게 음악에 대해 설명하고 있는 지휘자 박용훈
ⓒ 김영조
그는 협연이 흡족함을 말하고 있었다. 또 이병욱은 협연이 끝난 뒤 소감을 말했다.

“아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는 다른 관현악단에 비해 열정적이고, 큰 의욕을 가지고 있다는 생각이다. 우리 음악을 자주 들어서 이해를 넓히고, 연습을 많이 하면 더 훌륭한 연주, 깊이 있는 연주를 할 수 있을 것이라 믿는다. 협연자로서 우리 감성을 잘 표현하기 위해선 관악기, 현악기와의 조화에 더 많은 연구가 필요함을 느낀다.”

이병욱과 박용훈은 천생연분으로 만났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들의 결합이 앞으로 우리 음악과 서양 음악의 상생에 든든한 주춧돌을 놓고 있는 것이다.

다만, 이 공연을 본 뒤 나는 우리 음악계에 대한 아쉬움은 털어낼 수 없었다. 작은 도시, 강릉과 아산의 관현악단이 국악과 서양 음악의 접목을 시도할 때, 서울과 대도시의 관현악단들은 무엇을 하고 있다는 말인가? 그들은 오로지 서양 음악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안개 속에서 헤매고 있는 것은 아닌지 모른다.

▲ 제3회 정기연주회를 하는 아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 김영조
서양의 음악을 우리가 열심히 섭렵하려 해도 그들이 수천 년 동안 익혀온 음악을 그들만큼 따라가기가 결코 쉽지 않을 터이다. 한국이 나은 세계적인 음악가 윤이상 선생은 성악을 하더라도 판소리의 느낌이 살아있지 않고서는 그들을 따라갈 수가 없다고 했다. 윤이상 선생의 말처럼 하려면 서양 음악에 우리 음악의 접목은 꼭 해야 한다는 생각이다.

이제 케이비에스 교향악단, 서울시립교향악단 등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오케스트라부터 우리 음악과의 협연에 적극 나서주길 기대해본다. 겨울이 성큼 다가선 어느 가을 밤 우리는 환상의 음악을 맛보았다. “어느 먼 곳의 그리운 소식이기에 / 이 한밤 소리 없이 흩날리느뇨.” 나는 조용히 김광균의 시 ‘설야’를 읊조리며, 우리 음악이 세계 음악이 되는 기쁜 소식을 상상해 본다.

덧붙이는 글 | ※ 다음, 대자보, 뉴스프리즘에도 보냄


태그: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으로 우리문화를 쉽고 재미있게 알리는 글쓰기와 강연을 한다. 전 참교육학부모회 서울동북부지회장, 한겨레신문독자주주모임 서울공동대표, 서울동대문중랑시민회의 공동대표를 지냈다. 전통한복을 올바로 계승한 소량, 고품격의 생활한복을 생산판매하는 '솔아솔아푸르른솔아'의 대표를 하고 있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