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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한 기회에 <충무경찰서 초대가수>라는 이상수 노동부장관의 수필집을 읽게 되었다. 사실 정치인의 수필집이나 전기라는 것이 괜한 자기자랑거리나 무용담 등으로 과대포장 되거나, 대필 작가에 의해 그럴듯하게 포장된 미사여구의 나열이거나, 책이라고 보기보다는 의정활동보고서 정도인 것이 대부분이어서 이장관의 수필집 또한 특별한 경우가 아니라면 그런 부류에 속한 또 한 권의 책 정도일 것으로 생각했다.

그러나 책의 차례를 대강 훑어보고 막 첫 장을 열어보는 순간 이러한 나의 상상은 완전히 잘못된 것이었다는 것을 발견하였다. 그가 대학 졸업 후 첫 출발한 직장이 제약회사의 외판원이었다는 사실에 깜짝 놀라지 않을 수 없었으며, 평탄하지 않았던 그의 인생역정이 나를 책속으로 빠져들게 하였다.

사실 나는 외판원으로 성공한 사람이나 외판원으로 일하는 사람을 보면 무조건 존경하는 마음이 생기고 그 사람의 얼굴을 다시 한 번 쳐다보게 된다. 외판이라는 것은 단순히 물건을 파는 것이 아니라 자기를 파는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보통의 인내와 보통의 노력, 보통의 당당함이 아니고서는 성공할 수 없기 때문이다. 모든 사람들이 천하다고 생각하는 일을 즐겁게 할 수 있다는 것은 보통의 용기와 보통의 자신감으로는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열과 성을 다하여 자기의 모든 것을 보여 줄 때 상대방도 감동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특히 버스나 전철 칸에 올라와 자신 있게 자기 물건을 파는 사람을 보면 “아 나도 한 번 해보고 싶다”는 충동을 느끼게 된다. “저런 사람이라면 무슨 일이라도 할 수 있을 것이다”는 믿음이 생기기 때문이다.

아마 저자가 한 2~3년 만 더 외판을 해보았더라면 그의 법조생활은 물론 그의 정치역정에 또 다른 세상이 열렸을 것이라고 생각해 볼 때, 저자의 제약회사 외판생활이 1년 만에 그치고 말았다는 점에 대해서는 못내 아쉬운 마음이다.

정치라는 것이 무엇일까? 여러 가지로 표현 될 수 있겠지만 딱 한마디로 표현한다면 “어려운 처지를 당한 백성들의 마음을 헤아리고 그 어려움을 풀어주고자 하는 노력”이라고 생각한다. 열과 성을 다하여 자기의 물건을 파는 외판원과 같이 고객인 백성의 입장에서 한 번 더 생각하고 한 번 더 설득한다면 따라오지 않을 사람이 없을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내가 직접 그 어려움을 당해보아야 한다. 어려움을 모르고 살아온 사람, 자기 잘난 맛에 살아온 사람은 너무 쉽게 다른 사람을 무시해버리고, 교만에 빠지기 쉬우며, 나태해 지기 쉽기 때문이다. 오늘의 정치인들도 그렇다. 과연 그들은 힘겨워 허덕이는 서민들의 고통을 얼마나 이해하고 있을까?

오늘의 정치가 불신과 지탄의 대상이 되고 있는 것도 어려운 사람의 입장에서 그 어려움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나는 지금도 충무경찰서 유치장의 초대가수 시절을 돌이켜 보면서 목에 힘을 주지 않는 겸손을 보이고, 그 겸손과 다정함 속에서도 자신을 지키려고 애쓰고 있다”는 저자의 술회에서 보듯 <충무경찰서 초대가수>가 잔잔한 공감을 주는 것은 그의 겸손함에 있다고 생각한다. 한편 독서로 꽉 찬 그의 인생 여백에서 우러나는 글은 단순한 사실의 서술에 그치지 않고 문학적 서정성과 주어진 현상에 대한 냉혹한 가치평가를 수반하고 있다.

“나는 피아골 하면 민족의 한을 연상하게 한다. 여순사건과 6.25 때 뿐만 아니라 구한말 격동기에도 이 계곡에서 수많은 사람이 죽어 갔다고 하나, 그 전란의 자취는 이젠 흔적조차 찾아볼 길이 없다. 그들의 피맺힌 비원이 역사의 어디에 메아리 되어 남아 있는지, 민족사의 현장에 선 나는 일순간 숙연해지는 마음을 가눌 길이 없었다” 는 저자의 독백은 민족의 분단현실에서 몸부림쳐 아파하는 젊은 지성인의 고뇌를 엿보게 한다.

이제 저자가 대통령의 임기와 더불어 노동부장관으로서 그의 임기를 마감할 것인지 아니면, 정치 본연의 현장에 뛰어들어 또 다른 민심의 외판 보따리를 들 것인지는 알 수 없는 일이다. 다만 바라고 싶은 것은 아둔하게 보일지라도 진득하게 민심의 보따리를 둘러 메고 묵묵히 걸어가는 외판원으로 살아가달라는 것이다.

충무경찰서 초대가수

이상수 지음, 서정시학(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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