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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생 김용국(20)씨는 이번 학기말 시험에서 불이익을 받았다. 시험시간 50분 안에 B4 용지 가득히 글을 쓰는데 팔 받침대가 없는 책상(1인용 ‘ㄱ’자 책상 의자)이 그를 힘들게 한 것이다. 김씨는 "오른손잡이가 글쓰는데에는 불편함이 없지만 왼손잡이여서 짧은 시간에 많은 글을 쓰기가 힘들었다"고 말했다.

또 다른 왼손잡이인 박혜진(23)씨 역시 "대한민국에서 왼손잡이로 살아가는 것에 불편함을 느낀 적이 한 두 번이 아니다"고 했다. 버스나 지하철을 탈 때 교통카드 단말기가 오른쪽에 있어서 불편하고, 화장실 변기의 물 내리는 꼭지도 오른쪽에 달려있어 불편하다는 것.

뿐만 아니라 공공PC를 이용할 때, 자동차 운전할 때에도 오른쪽에 있는 변속기 때문에 불편하고, 심지어 과일을 깎을 때에도 그녀는 오른손잡이의 세상에 적응하려 노력한다고 한다.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은 다수인 오른손잡이에게 편리한 세상인 것이다.

현재 전 세계적으로 왼손잡이의 비율은 약 10%. 우리나라의 경우에는 약 6% 전후라는 것이 통설이다. 한국 사회에서 왼손 금기가 강한 것은 동양의 음양사상에서 그 기원을 찾을 수 있다. 음양사상에 따르면 왼쪽을 ‘음’, 오른쪽을 ‘양’이라 하였고, <소학>은 밥 먹고 글 쓰는 일, 어른에게 물건을 올릴 때 오른손을 써야한다고 가르쳤다.

또한 일제 강점기에 우리보다 왼손 터부가 강한 일본식 학교교육을 받으면서 왼손 금기가 더욱 강화되었다는 추측도 있다.

서양에서는 기독교가 왼손 터부의 기원으로 보인다. 구약성서에서 요셉의 아들 므낫세는 오른손으로 축복 받지 못했기 때문에 이스라엘의 적자가 되지 못했다. 또 신약성경에 ‘예수가 하나님 오른쪽에 앉아 계시다가 심판하러 올 것’, ‘심판의 날에는 구원받을 양은 오른쪽에, 심판받을 염소는 왼쪽에 있을 것’이라는 등의 기록을 남긴 후 왼손은 불길한 존재가 되었고, 근본주의자들에게는 ‘악마성’의 상징으로 여겨지기도 했다.

뿐만 아니라 언어에서도 왼쪽을 천시하는 경우를 볼 수 있다. 영어에서 왼손잡이를 뜻하는 sinister의 어원은 ‘불길한’, ‘사악한’ 따위의 의미로 쓰였고, 왼쪽을 뜻하는 left는 약하고 힘없는 등의 어원에서 출발했다.

중국어에서도 ‘좌족’은 서자혈통을 가리키는 등의 좋지 않은 뜻에 주로 사용됐다. 이렇게 왼손을 천시하는 어원은 거의 모든 언어권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난다. 한글에서도 오른손은 올바른 손이란 뜻이고 왼손은 그 반대다. 더 나아가 오른손을 아예 바른손이라고 하기까지 했다.

한국 사회에서는 오른손잡이를 강요하는 문화가 강했다. 하지만 최근에는 왼손잡이를 오른손잡이로 전향시키려는 부모들이 많이 줄었다고 한다. 한국갤럽이 지난 2002년 20세 이상 성인 15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자녀가 왼손잡이라면 오른손잡이로 바꾸겠다"는 대답이 전체의 38.2%로 나타났다.

또 왼손에 대한 편견들이 하나 둘씩 사라지고 있는 것은 물론, 오른손잡이에게 왼손을 쓰도록 하는 부모들도 늘고 있다. 오른손잡이는 좌뇌, 왼손잡이는 우뇌의 영향을 받는다는 이유에서이다. 우뇌는 직감, 상상력, 예술적 능력을 좌뇌는 계산, 기억, 논리 영역 등을 관장한다. 그래서 양손을 모두 사용하는 것이 뇌 기능을 골고루 계발하는데 도움이 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아직까지 생활에서 왼손잡이들이 겪는 불편은 많다. 모든 물건들이 오른손잡이를 중심으로 만들어지고 왼손잡이에 대한 배려는 좀처럼 찾아보기가 힘들다. 물론 왼손잡이를 위한 상품도 있다. 하지만 이들 대부분은 수입품이다. 국내에서 왼손잡이의 권리주장이 거세지면서 왼손잡이의 제품을 생산·판매하는 업체가 1990년대 말 상당수 등장했지만 대부분 타산을 맞추지 못했다.

왼손 제품의 종류가 적어 수입품을 판매하다보니 가격이 자연스레 올라가게 되고, 구매자는 끊어지는 악순환의 반복 때문이다. 그래서 업주들은 “왼손잡이 용품판매가 사업성이 거의 없다”면서 “다른 제품의 판매를 위주로 하고, 왼손잡이 용품의 판매는 거의 구색 맞추는 형식이다.”이라고 말했다. 현재 국내 왼손잡이의 수는 약 200~400만 명으로 추산되지만 그들만을 위한 제품의 숫자는 그에 미치지 못하고, 상품 판매 역시 지지부진하다.

왼손에 대한 사회적 편견을 바로잡기 위한 기념일과 협회도 있다. 1992년 ‘영국 왼손잡이협회’는 왼손잡이가 생활에서 겪어야 하는 어려움을 전 세계에 알리기 위해서 매년 8월 13일을 ‘세계 왼손잡이의 날’로 정했다.

또한 우리나라에도 왼손잡이 협회가 있다. 강미희 광주보건대 유아교육학과 교수가 1999년 ‘한국 왼손잡이협회’를 설립했다.

아직까지 사회의 ‘소수자’라는 그늘 속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왼손잡이. 사회가 이들을 바라보는 '편견의 색안경'을 벗어 던질 날은 언제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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