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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엄살부리던 진호가 엄마한테 혼나고 있다.
ⓒ 정연훈
운동하는 내내 진호(수영선수, 21)의 정신은 다른 곳에 가 있다. 엄마가 자리에 있는지 없는지 확인하기 바쁘다. 엄살을 피우며 슬쩍 엄마에게 다가오지만 "자꾸 그러면 엄마 간다"는 말에 깜짝 놀라며 다시 운동하러 돌아간다. 진호는 "엄마 먼저 간다"는 말이 제일 무섭다. 아태장애인경기대회 수영부분 챔피언이 된 후에도 여전하다. 그래도 진호는 엄마가 제일 좋다. 다른 사람들과 어울리지 못하고 마음도 닫았지만, 엄마에게는 다르다.

"'진호엄마'는 세상에 나밖에 없잖아요"

@BRI@자폐증 아들을 두면서 유현경(47)씨는 자신의 이름을 잃었다. 대신 '진호엄마'라는 이름을 얻었다. 하지만 유씨는 자폐아의 엄마라는 것이 너무나 부끄럽고 수치스러웠다고 과거를 되짚었다. 개인적으로 꿈이 참 많았던 유씨는 "동시통역사, 작가, 방송인 등 하고 싶은 거야 참 많았죠, 그래서 진호가 더 미웠는지도 몰라요"라고 털어놓았다. 유씨가 하고 싶던 일들은 진호가 병이 있다는 것을 알고 난 뒤 모두 사라져버렸다. 좌절감과 미련 때문에 유씨에겐 진호가 더 밉게 보였다.

유씨는 "진호가 휴학했을 때 열심히 병원 다니고 치료했지만, 정작 내가 진호를 진심으로 사랑하지 못했다는 걸 깨달았다"며 "세상에서 '진호엄마'는 단 하나뿐이다, 분명 길이 열릴 것이라고 믿었다"고 말했다. 그 믿음은 유씨를 지탱하는 힘이자, 진호를 변화시키는 힘이었다. 20년 넘게 진호와 매순간 함께 한 유씨는 "진호가 다른 사람에게 받는 도움의 수치를 줄이는 것이 내 사명"이라며 "이제 진호엄마는 내 직업이에요"라고 웃으며 말한다.

수없이 생각한 동반자살... "죽는 것보단 낫겠지"

진호가 4살 때 TV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에서 자폐증을 처음 봤고 병원에서 자폐증 판정받고 나서도, 정확히 무슨 병인지 몰라 충격도 없었다. 하지만 완치가 불가능한 병이란 것을 알게 되면서, 자폐증은 절망과 충격으로 다가왔다.

유씨는 "사람들과의 관계를 거부하는 진호 때문에 데리고 다니면 부끄럽고 창피하고 정말 힘들었다. 지옥 같은 날들이었다"고 회상했다. "5살이 되던 해 3월부터 특수치료를 받았고 4년 동안 대한민국에서 '치료'자가 들어가는 건 다 받아봤다"고 고백했다.

유씨는 그것이 유일한 방법이라 생각해 병원만 계속 쫓아다녔다. 자폐증이 세상에 널리 알려지기 전이었기 때문에, 책을 찾고 인터넷을 검색해도 자폐증에 대한 정보는 얻기가 힘들었다. 유씨는 "버리고 싶고 도망치고 싶었지만, 그 무엇도 포기할 수 없었다"며 "치료든 약이든 좋아질 수만 있다면 무엇이든 다했다"고 말했다. 그렇게 진호를 데리고 병원을 전전긍긍하며 경제적, 육체적, 정신적으로 힘든 생활을 견뎌야만 했다.

2월 28일생인 진호는 7살에 학교에 입학했어야 하지만, 치료 때문에 미루다보니 9살이 돼서야 학교에 입학했다. 그것도 선생님께 구구절절한 장문의 편지를 보내 설득한 끝에 간신히 할 수 있던 입학이었다.

유씨는 한시라도 눈을 떼면 사고가 나는 진호 때문에 짝꿍이 돼 하루 종일 옆에 붙어서 수업도 듣고, 매 시간 챙겨줬다. 그렇게 40일. 선생님께서 "도저히 못 가르치겠다, 출석 인정해줄 테니 제발 나가라"는 말을 전해왔다. 특수학교 입학 기간도 끝나고 여기서 포기할 수 없어 어떻게든 말려봤지만, 결국 42일만에 학교를 휴학할 수밖에 없었다.

유씨는 "진호가 학교에 가지 않자 하루가 너무 길었다"며 "정말 동반자살을 수없이 생각했다"고 고백했다. 죽고 싶을 만큼 힘든 생활의 연속이었지만 '그래! 죽는 것보단 낫겠지'라고 생각하며 이를 악물고 견뎌냈다.

▲ 엄마가 진호를 달래 헬스장 안으로 들여보내고 있다.
ⓒ 정연훈
'기러기 부부'가 된 사연

유씨는 "진호가 11살 때 장애인으로 등록했다, 장애인이라고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고 심경을 고백했다. 아이의 미래가 없어 보인다는 것은 부모를 절망하게 만들었고, 모든 것이 허무하기만 했다. 그럴수록 진호가 더 부끄럽고 수치스럽게 느껴졌다.

그럴 때 믿고 의지할 수 있는 것은 친척들뿐이었다. 하지만 유씨에게는 그것마저 허락되지 않았다. 진호는 이종사촌형을 아주 좋아한다. 그렇지만 진호가 놀러 가면 집이 완전 쑥대밭이 됐기 때문에, 이모는 진호가 오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다.

유씨는 "한번은 진호가 언니 집에 가자고 떼를 쓰기에 언니한테 '벨 누르면 나오지 마라, 그럼 없는 줄 알고 포기하고 간다'고 그랬더니 정말 없는 척 하더라, 참 속상했다"고 하소연했다. "3년 동안 외가 쪽엔 아예 가질 않았다, 친정엄마가 '나중에 진호가 크면 너도 알 것이다'라고 했을 때, 속상하고 서운해서 집에 와서 혼자 울었다."

모든 시간과 약속이 진호에 따라 맞춰지는 유씨의 생활은 다른 엄마들과는 다르다. 밥도 혼자 먹고 사우나도 혼자 가는 유씨는 혼자서 하는 것에 거부감이 없었다. 다른 사람과 시간을 맞추는 것이 어렵다 보니, 혼자서 해결하는 것이 자연스럽게 익숙해진 것이다. 이런 '왕따' 같은 생활을 유씨는 자연스럽게 받아들였다.

또한 자투리 시간에도 그녀에겐 쉴 틈이 없었다. "진호를 기다릴 때 책도 보고, 외국어 공부도 하고, 진호도 관찰하고, 기록도 한다"며 "진호보다 내가 더 건강해야 계속 따라다닐 수 있고, 더 열심히 공부해야 계속 교육시키고, 도와줄 수 있죠"라고 이야기한다.

진호의 아버지는 현재 안양에서 혼자 지내고 있다. "가족은 평생이지만 교육은 때가 있는 것"이라며, 진호를 부산체고에 진학시키기 위해 부산으로 이사한 것. 유씨는 "진호 아버지는 안양에서 병원을 개업해 내려올 수 없었다"며 "우리 집의 자랑은 각자의 뛰어난 자립능력"이라고 우스갯소리를 했다. "3시간이면 만날 수 있는데 뭐가 걱정이냐"고 말하지만 유씨로선 진호를 위해 기러기 부부를 선택할 수밖에 없었던 셈이다.

▲ 진호가 수영하는 사이 텅빈 벤치에 혼자 앉아 진호를 바라보고 있다.
ⓒ 정연훈
눈물 흘리며 택한 '매정한 엄마'의 길

유씨는 진호에게 상과 벌을 엄격히 구분했다. 그리고 꾸준히 반복학습을 시켰다. 진호 교육을 위해서라면, 어떤 장소와 시간도 장애물이 될 수 없었다. "사람들이 저를 교사인 줄 알았어요." 유씨가 교육을 강조하다보니 주위에서 엄마가 아니라 교사인줄 알았던 것.

진호가 잘못하면 유씨는 엄하게 교육했다. 유씨는 "밤 새워 새벽까지 반성문을 쓰게 한 적도 있고, 밤 새워 줄넘기를 시킨 적도 있다"며 "그때 진호 아빠가 '그만 좀 하라'고 해서 싸운 적도 있다"고 털어놓았다. 유씨의 엄한 교육을 보고 유씨 어머니가 "넌 원래부터 잔인했어", "인정머리가 없어"라고 했을 때 유씨는 혼자서 눈물을 삼켜야 했다.

유씨는 "혹시 실수했을 때 넘어가주면 다시 예전으로 돌아가진 않을까 걱정해서 애써 실망한 척, 화난 척했다"며 "더 잘해주고 싶고 챙겨주고 싶은 것이 부모 마음인데, 그러지 못해서 많이 힘들었다"고 말을 이었다. '매정한 엄마', '장애아 학대하는 엄마'로 보여 상처받을지라도 진호를 위해 더욱 독하게 마음을 먹었다. 그리고 매일 밤, 잠든 진호를 보며 혼자 수없이 눈물을 닦았다.

▲ 진호는 카메라만 보이면 수영하다 말고 손가락으로 V자를 그렸다.
ⓒ 정연훈
수영, 진호가 세상으로 나가는 통로

진호는 물을 굉장히 좋아했다. 한번 들어가면 물에서 잠들 때까지 놀았다. 5학년 때 진호는 수영부를 하고 싶어했다. 유씨는 "진호가 수영에 자질이 있다"고 거짓말해서 수영부에 넣었다. 진호는 중학교에 올라가서도 수영을 계속했지만, 소속이 마땅치 않아 다른 팀에서 더부살이를 해야 했다.

유씨는 "처음에는 친하게 지냈지만, 대회만 나갔다 오면 사이가 안 좋아졌다"며 이야기를 꺼냈다. "시합에서 소속팀 선수를 앞지른 진호 때문에 선수들이 코치님께 혼이 났는데, 혼이 난 선수들이 진호를 곱게 볼 리 없었다"는 것. 유씨는 "하지만 코치님이 '너희들은 병신한테도 지냐'고 혼내는 것을 들었을 땐 정말 화가 났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소속 없는 더부살이는 중학교 내내 계속됐다.

진호가 고등학교에 입학할 시기가 됐을 때, 유씨는 일반 아이들과 수영으로 경쟁하면서도 학습 비중이 낮은 학교를 찾아나섰다. "근처에 있는 학교에선 장애인이라고 거절당했는데, 다행히 부산체고에서 진호를 받아주겠다는 연락이 와 부산으로 이사했다"고 말했다.

이사를 결정하자 주위에서 '왜 굳이 수영선수를 시키려고 그 고생을 하느냐'고 걱정스레 물었다. 유씨는 수영선수를 만들기 위해 수영을 시킨 것이 아니라고 한다. "수영은 진호를 사회화하고 자립심도 길러주기 위해서, 사람답게 만들고 싶어서 시킨 것"이라며 "수영선수가 되는 것은 중요하지 않았으며, 선수 자격은 그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얻은 것"이라고 말했다.

유씨는 이도저도 아닌 선수들이 어떻게 지내는지 알고 있다. 한계를 뛰어넘어야만 성공한다는 것도 안다. 그래서 힘들고 혹독해도 진호에게 모질게 훈련을 시켰다. 일부러 문제점을 찾기 위해 비장애인들과의 경쟁을 반겼다.

그렇게 진호는 발전했지만, 어느 곳에서도 도움 받기란 쉽지 않았다. 장애인 수영대회도 직접 사이트를 검색해서 찾아내고 외국어로 된 것도 손수 번역해가며, 진호가 더 큰 무대에 올라설 수 있도록 노력했다. 쉬운 일은 아니지만, 진호를 위해 해야만 했다. 결국 진호는 아태장애인경기에서 챔피언이 됐고, 더 성숙해졌다.

"챔피언이 그렇게 행동하면 돼?"라고 물으면 진호는 "안돼요"라고 대답하며 챔피언다운 행동을 보여주기 위해 스스로 자제하고 절제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런 진호를 보며 유씨는 참으로 뿌듯했다. 금메달을 따고 사람들의 관심을 받는 것도 좋지만, 진호 스스로 자신의 감정을 조절하고 겉으로 표현할 때 유씨는 가장 행복하다고 말한다.

유씨는 "예전에 너무 아파서 움직이기도 힘든 날, 진호가 설거지했던 모습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며 "금메달 땄을 때보다 더 기뻤다"고 말했다. 수영은 진호가 자신을 변화시키고, 세상과 어울리며, 사람들과 함께 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준 좋은 통로였다.

▲ 진호가 금메달을 어머니의 목에 걸어주며 사랑한다고 말하고 있다.
ⓒ 정연훈
진호는 엄마의 미래다

진호는 길어야 3~5년 사이에 선수생활이 끝난다. 유씨는 지금 진호 은퇴 후 계획을 세우고 있다. "엄마가 죽었는데도 혹시 옆에서 웃고 있진 않을까, 그런 걱정이 들 때 섬뜩했다"는 유씨는 엄마가 없으면 어떻게 될지 모른다는 불안감, 사람답게 살았으면 하면 바람 등은 자폐아를 둔 부모의 공통적인 심정이라고 전했다.

그래서 유씨는 노후, 직업, 경제 개념 등을 통해서 평생 치료와 교육을 할 수 있는 센터를 만드는 것이 꿈이다. "사회화하고 적응하기 위해 센터에서 살더라도 운동이나 경제활동 등은 일반인이 이용하는 것을 그대로 이용할 거예요"라고 전하며 "내 아이도 사람들과 어울려 살도록 자립심을 키웠으면 좋겠다"고 이야기했다.

유씨는 "일하다 보면 분명 진호가 도울 일이 있을 거예요"라며 벌써 진호와 함께 일하는 꿈을 머릿속에 그리는 듯했다. 유씨의 가장 큰 꿈은 "진호가 다른 사람들에 대한 부적응이나 사회에 대한 부작용 없이 살아가는 것"이라며 "진호가 많은 사람들에게 즐거움을 주고, 부담 없이 살도록 자립능력만 갖췄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어느새 유씨의 꿈은 진호를 위한, 진호와 함께 만드는, 진호의 꿈이 되어버렸다. 아이의 미래가 없어 좌절했던 과거와 달리, 같이 꿈을 만들고 미래를 그려가는 유씨는 아들과 함께 할 미래를 생각하며 벌써부터 행복하다. 때론 모질게도, 엄하게도 했지만 유씨의 모든 것은 이미 진호를 향해 있다. 포기하지 않고 함께 견디며 고생한 것이 이제 빛을 발하기 시작한 것이다.

"항상 최선을 다해주는 진호가 고맙고 자랑스럽다"는 유씨처럼, 자식을 세상의 주인공으로 만들기 위해 자신들을 감춰가는 이들, 꿈을 향한 미래의 열정을 전부 자식에게 쏟아 붓는 어머니야말로 세상을 빛내는 진정한 조연이 아닐까.

덧붙이는 글 | 김진호군 응원카페 cafe.daum.net/jinhomans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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