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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MBC
나는 <닥터스>라는 프로그램을 참 좋아한다. 마치 아직도 장준혁인 것 같은 김명민씨가 MC를 보는 이 프로그램은 응급실에서 일어나는 갖가지 에피소드를 보여준다. 가끔씩 눈물짓는 나를 보고 동생은 텔레비전을 울려고 보냐고, 울려면 아예 텔레비전을 보지 말라고 면박을 주곤하지만, 나는 울기 위해서가 아니라 웃기 위해서, 삶에 대한 고마운 미소를 짓기 위해서 이 프로그램을 본다.

일상 속에서 누구에게나 쉽게 일어날 수 있는 사건들, 그로 인해 다치는 사람들, 그리고 그들을 치료하는 의사들. 때로는 다행스런 웃음을 짓기도 하지만 때로는 죽음 앞에 오열을 토해내야 하는 일도 생긴다.

19일 나온 내용은 술에 취해 넘어져 한쪽 팔의 뼈가 완전히 돌아간 아저씨와 경기를 앞두고 미끄러져 다리를 다친 중학생 테니스 선수, 친구들과 놀다가 앞니가 빠진 아이, 뺑소니를 당한 할머니, 유서를 써놓고 약을 먹은 걸로 의심되는 여자 등에 관한 이야기였다.

정형외과 의사가 돌아간 뼈를 맞추는 모습은 영화 속 한 장면처럼 신기했고 사고로 다음 주 경기에 나갈 수 없게 된 테니스 선수는 안타까워 보였다. 약을 안 먹었다며, 위세척을 하지 않겠다고 발버둥치다가 갑자기 사라져서 보호자와 병원 사람들을 힘들게 하는 환자는 야속해 보이기도 했다.

무엇보다 내 마음을 짠하게 한 건 이 프로그램의 한 코너인 '미라클'에 나온 석현이었다. 석현이 부모님은 아기가 태어났을 때 건강하다는 말 대신 기형이 심하다는 말을 들었다고 한다. 석현이의 양 손과 양 발은 보통 사람의 그것과 많이 달랐다.

다지증과 합지증이 겹쳐서 나타나는 드문 경우인데다, 발은 발등까지 갈라져 있었다. 태어난 뒤 돌이 가까워 오면서 석현이는 우선적으로 왼손을 수술하기로 했다. 두 개인 엄지손가락을 하나 자르고, 붙어 있는 손가락을 분리한 후에 부족한 피부는 자른 엄지손가락의 것을 붙이기로 한 것이다.

착하게, 수술 잘 받고 오라는 외할머니의 말에 석현이는 그 마음을 알기라도 하는지 환하게 웃었다. 세상에 안 예쁜 아기 없다지만 정말이지 그 밝은 웃음은 흔한 표현이지만 천만불짜리였다.

부모님이 초조하게 기다리는 동안 수술은 무사히 끝이 났다. 음향 담당하시는 분이 센스있게도 배경음악을 <하얀거탑> OST로 깔아준 덕에 더 진한 감정을 느낄 수 있었다.

석현의 부모님은 세상의 편견 앞에 상처받을 아이가 걱정 돼 아기만 보면 울었던 적도 있다고 한다. 누구의 잘못도 아니지만 죄책감에 아이에게 미안해 하는 부모님의 모습은 내 마음을 울렸다.

내가 건강하다는 게 슬펐던 적이 있다. 이기적인 내가 누구 대신 아팠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적은 없지만, 그때는 정말이지 내가 대신 아팠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었다. 몇 해 전, 내가 정말 예뻐하던 친척 동생이 뇌경색으로 쓰러졌다는 얘기를 들었을 때였다.

중환자실에 있어야 했던 동생은 다행히 의식을 회복했고 건강을 되찾았다. 하지만 마비로 인해 지금도 오른팔과 다리가 불편하다. 나는 의지도 강하고 사람들의 시선도 비웃을 줄 알며 내 꿈을 위해 노력할 수 있는데, 동생은 아직 어리니까, 세상은 참 무서운 곳이니까, 그러니 나와 몸을 바꿀 수만 있다면 진심으로 그랬으면 좋겠다, 나는 그렇게 생각했었다.

동생을 보고 나서 나는 내가 어리석었단 걸 깨달았다. 동생은 내가 생각하는 것만큼 어리지 않았고, 여리지도 않았으며, 약하지도 않았다. 아직 아이의 순수함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이모를 위로할 만큼 성숙하기도 했다. 계단을 올라갈 때 내가 부축해주려고 하면 계단은 혼자 올라가는 게 더 편하다며 아무렇지 않게, 뒤뚱대며, 웃으며, 올라가는 아이였다.

그 무렵에 감동적으로 본 드라마 <아일랜드>에서 중아는 다리를 다친 재복에게 이런 말을 한다. 네가 다쳤다고만 생각했는데, 넌 살아난 거라고. 내 친척동생에게도 똑같이 말해주고 싶었다. 네가 몸이 불편해졌다고만 생각했는데, 넌 살아난 거야. 넌 살아있는 거야.

섣불리 걱정하고 연민한 내가 부끄러웠다. 앞으로 살아갈 날 동안 겪지 않아도 좋을 시련을 겪게 될 지도 모른다. 수많은 좌절 앞에 쓰러지고 싶을 때가 생길지도 모른다. 하지만, 동생이라면, 자신을 예쁘게 낳아줘서 이모에게 고맙다고 농담 아니 진담을 하는 아이라면, 충분히 이겨낼 것이다.

석현이도, 그럴 것이다. 그토록 환하게 웃는 아이라면, 어떤 시련이 와도 보란 듯이 이겨내고 세상 앞에 당당하게 살아갈 것이다. 나는 믿는다.

마지막으로 세상 사람 모두가 건강했으면 좋겠다. 몸도 마음도 건강한 사람들이 가득 찬 건강한 사회가 됐으면 좋겠다. 아니, 아파도 좋은데 의사들이 고칠 수 있을 만큼만 아팠으면 좋겠다. 시인 기형도의 시 구절처럼 살아있으라, 누구든 살아있으라.

덧붙이는 글 | MBC <닥터스> 매주 월요일 오후 6시 50분 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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