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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존하는 오래된 건축물 가운데는 종교와 관련한 건축물들이 많다. 문명과 문화권에 따라 신전이나 예배당, 사찰 혹은 종교적 양식으로 구성된 거대한 무덤 등에 이르기까지 종교와 관련된 다양한 건축물들이 존재한다. 종교의 역할과 기능에 대한 문제제기를 떠나 사람들의 영적인 세계에 대한 관심과 그 문화적 표현들은 인류의 문화발달과 함께 해 왔다.

대부분의 미래서들은 앞으로도 종교는 없어지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한다. 다만, 기존의 전통적인 기독교나 불교, 이슬람 등의 종교 외에 다양한 형태의 종교가 나타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사회가 더욱 세밀하게 변화되고 눈코 뜰새 없이 바쁜 분주한 일상이 일반화된 요즘같은 시대는 상대적으로 더욱 정신적인 재충전과 영성관리가 필요한 때라고 볼 때 공감이 가는 말이다.

▲ 한 수도원내 마련된 아담한 규모의 성당
ⓒ 유태웅
최근 강원도 모 지역에 대규모 리조트형 전원주택단지를 건설하고 있는 한 업체의 기본단지계획을 살펴보면 성당과 사찰, 교회 등 종교시설이 한 리조트 단지내에 사이좋게 배치되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산과 강을 중심으로 지형을 따라 전원주택단지를 형성하고 그 주위로 유실수와 작물들을 심을 수 있게 했으며, 적당한 간격을 두고 작고 아담한 종교시설들이 들어설 예정이다.

이는 생업전선에서 은퇴한 후 전원주택에 상주하려는 현지 거주자는 물론, 주말이나 휴일을 이용해 전원주택이나 펜션 등을 임대해 사용하려는 사람들이 자연속에서도 자신들의 종교활동이 가능하도록 배려한 계획이다. 자연이라는 안락한 공간에서 정신적인 안정과 더불어 경우에 따라선 영성관리에 관심있는 일일 방문객들에게도 좋은 피정(避靜)이나 안식처가 될 것으로 보인다.

여기서 '피정'이란 보통 카톨릭에서 일상생활에서 벗어나 성당이나 수도원 같은 곳에서 묵상이나 기도를 통하여 자신을 살피는 것을 말한다. 특히 도심속 교회나 성당과는 달리 자연속에 묻혀있는 수도원이나 명상의 집 같은 곳은 이러한 피정처로 안성맞춤이다.

이러한 곳은 잠시 일상의 삶과 동떨어져 산책과 묵상을 통해 내면의 세계를 발견하고 점검해 보는 사색의 공간으로 손색이 없다. 자연속에 동화된 듯 도심속의 웅장한 성당과는 달리 작고 낮은 자연친화적인 건축물들은 피정처를 찾는 또다른 발견의 순간들이기도 하다.

자연친화적인 건축미가 돋보이는 한 수도원의 풍경

▲ 이 넒고 긴 길은 자연스럽게 '사색의 공간'이 된다.
ⓒ 유태웅
▲ 수도원내에 있는 펼쳐있는 배밭 과수목들의 풍경
ⓒ 유태웅
▲ 봄맞이 한참인 수도원 내부 배밭 풍경
ⓒ 유태웅
학부과정 중에 건축설계를 담당하는 건축과 교수들은 학생들에게 종종 이런 말을 해준다.

"너희들이 만약 교회를 설계한다면 교회건물 자체가 설교를 할 수 있어야 한다."

설교나 미사의 주관은 목사나 신부들이 하지만, 건축가는 교회나 성당 등의 건축물을 통해서 이러한 공간감을 살릴 수 있어야 한다는 말이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우리가 보아오는 도심속 교회건축물들은 갈수록 커지는 그 크기에 비해 그러한 건축적인 의의와 역할을 제대로 발휘하고 있는지는 솔직히 의심스러울 뿐이다. 때문에 교세의 확장과 더불어 교회건물은 일단 신축하고 보자는 외형위주의 교회를 바라보는 일반인과 일부 교인들의 시선은 매우 비판적인 경우가 많다.

그래서일까! 최근에 찾아가 본 서울 인근에 있는 한 수도원의 풍경은 작고 소박한 성당 건축물과 피정관을 둘러싼 자연미가 한눈에 보기에도 무척 신선한 곳이었다. 특히 작고 아담한 피정관 벽면 현판에 적혀있는 '기도하고 일하라(Ora et Labora)'는 문구가 인상깊은 이 수도원은 성베네딕도회 소속으로 그 공간감만으로도 자연스럽게 묵상이 이루어질 수 있는 곳이었다.

목재루바와 단층 벽돌조로 이루어진 성당과 피정관은 소박함과 검소함이 그대로 묻어나는 건축물이었다. 페인트칠이나 별도의 마감재료없이 노출콘크리트로 마감한 벽면의 차가움을 목재루바로 입면을 보완해줌으로써 전체적으론 건물에 따뜻한 이미지를 입혔다. 벽돌조로 외부마감재를 사용한 성당은 내부공간을 마루로 처리해 방석을 깔고 앉을 수 있도록 했다.

도심 속의 거대한 교회건물과 수없이 많은 상가건물들 사이로 빛나는 붉은 십자가상보다는 이러한 검소하고 소박한 건축미로 자연속에 보금자리를 튼 채 단지 공간감만으로도 말없는 설교를 내뿜는 건축물이 훨씬 더 영성적인 느낌이지 싶었다.

▲ 단층 벽돌조로 건축된 아담한 성당의 입구
ⓒ 유태웅
▲ 단촐한 규모에 각 방의 베란다를 형성하는 피정관 정면
ⓒ 유태웅
▲ 노출콘크리트와 목재루바, 벽돌조로 이루어진 피정관 입면
ⓒ 유태웅
▲ 빛이 스며들게 만든 피정관 안쪽공간
ⓒ 유태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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