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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미디어 의제를 지배하는가?'

많은 커뮤니케이션 연구자들의 흥미를 끄는 화두 중 하나다. 1970년대 초 의제설정에 관한 체계적인 연구를 시도했던 맥콤스와 쇼 이후 언론학자들은 '누가 미디어 의제에 영향을 미치는가'에 주목해 왔다. 미디어 의제가 현실과 동떨어진다면, 이는 매우 중요한 문제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많은 언론학자들은 미디어 의제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가장 유력한 사람을 대통령으로 꼽는다. 대통령은 그 나라에서 최고의 뉴스 메이커이며 다른 사람들에게는 가능하지 않은 커뮤니케이션에 대한 접근권을 갖고 있다는 점에서다. 그 뿐일까. 아니다.

어떤 대통령이 미디어 의제를 주도했나?

▲ 전두환 전 대통령이 1월 5일 오전 연희동 자택 접견실에서 새해인사차 방문한 이명박 전 서울시장과 이야기를 나누다 취재진이 빠지는 동안 잠시 대화를 끊고 있다.
ⓒ 오마이뉴스 남소연
더 중요한 요인은 미디어와의 관계다. 대통령의 연설이 전국에 중계되면서 미디어 의제에도 즉각적이고 강력한 영향력을 발휘하기 때문. 이런 측면에서 대통령 의제와 미디어 의제와의 상관관계는 언론학자들 사이에 훌륭한 연구대상으로 손색이 없다.

분명 대통령 의제가 가장 잘 담긴 연설은 1회적 노출일 뿐이다. 그러나 뉴스 미디어의 반복적인 보도와 분석은 대통령 의제를 더욱 키운다. 메시지를 강화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대통령의 의제가 곧 미디어의 의제'가 되는 경우를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어느 나라에서건.

문제는 '대통령 의제의 노출정도'와 '미디어와의 관계'는 늘 매개변수로 작용한다. 대통령과 미디어가 지나치게 유착관계이거나 적대적 관계일 경우 의제는 현실과 동떨어지고 만다. 국내에서도 시대별로 약간 다르지만 대통령 의제는 미디어 의제에 중요한 역할을 차지해 왔다.

언론탄압과 통제가 심했던 80년대 전두환 군사독재 정권시절에도 지상파 방송의 프라임 뉴스 와 각 신문의 1면 톱기사는 온통 대통령 의제로 채워졌다. 대통령 사진과 함께 기사가 대문짝만하게 실렸다. 이 때야 말로 대통령 의제는 곧바로 미디어 의제와 직결됐다.

일찍이 1960년대 '미디어는 곧 메시지'라고 주장한 마샬 맥루한도 아마 깜짝 놀랐을 것이다. 6월 민주항쟁 20주년을 맞아 국내 각 언론사들은 그날의 민주함성을 특집으로 조명하느라 바쁘다. 당시 불법적인 무력으로 정권을 찬탈한 신군부 세력을 찬양했던 신문들도 빠지지 않는다. 민주화에 기여했다는 점을 은근슬쩍 사설에서 부각시킨 신문도 눈에 띈다.

"민주화에 영향...독재정권에 맞섰다"

<조선일보>는 9일 '대통령은 도대체 무엇이 '쪽팔린다'는 것인가'란 사설에서 "어디서나 언론을 끌고 가는 것은 대통령의 마음의 병이다"고 힐난한다. 그러더니 사설은 6·10 항쟁을 의식해서 인지 "한국갤럽 여론조사에서 '한국 민주화에 긍정적으로 영향을 미친 집단'으로 언론을 꼽은 사람(45.9%)이 가장 많았다"고 은근히 내세웠다.

6·10항쟁 20주년을 이틀 앞둔 지난 8일 원광대에서 명예 정치학박사 학위를 받은 후 쏟아낸 발언이 화근이 됐다. 노무현 대통령 의제는 민주항쟁과 버무려져 더 큰 비판의 부메랑을 만난다.

10일 <동아일보>는 사설 '6월 항쟁 20년에 민주주의 짓밟는 정권'에서 한술 더 떴다. "본보도 독재 정권에 맞서고 민주화의 편에 서서 국민과 고난을 함께했으며, 박종철 군 고문치사 사건의 진상을 끈질기게 파헤치는 등 진실보도를 통해 6월 항쟁을 점화 확산시키는 데 역할을 했다고 자부한다"고 했다.

"그럼에도 당시 정권에 굴종하며 침묵했던 일부 방송이 마치 민주화의 선봉에 서기라도 한 듯이 설치고 있고, 노무현 정권은 권력의 잘잘못을 시시비비하는 언론을 '민주주의의 적'이나 되는 듯이 몰아가고 있다"며 방송사와 대통령에게 화살을 퍼부었다.

<중앙일보>도 같은날 사설 '탄핵을 스스로 불러들이는 노 대통령'에서 "대통령은 헌법과 헌법재판소를 능멸하고 무시했다"며 "그는 1일엔 '그놈의 헌법'이라고 했다. 만약 미국 같은 나라에서 대통령이 헌법 앞에다 그런 수식어를 달았다면 이것만으로도 탄핵이 거론될 것이다"고 했다.

"대통령은 이렇듯 스스로 아노미로 달려가고 있다"는 사설은 "우리는 법의 이름으로 그런 그를 주저앉혀야 한다"고 까지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자만에 빠져 있는 일개 대통령이나 정권보다 국가와 법이 더 영원하며 중요하다는 것을 보여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군부 독재정권시절 용비어천가를 부르며 해바라기 언론이란 소릴 들었던 보수신문들이다.

해바라기 언론들의 용비어천가... 왜?

전두환씨에 대한 언론보도는 노골적인 찬양으로 낯이 뜨거울 정도였다. '80년 신군부 부역언론인 민언련 모니터보고서'에 의하면 대통령으로 취임하기 전 실시했던 이른바 '삼청교육대' 보도에서 대부분 언론은 전씨가 사회질서를 바로잡는 인물이라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또 각종 외신을 인용해 미국과 일본 등 외국에서도 전씨를 인정하고 있다는 보도가 줄을 이었다. 대통령이 되고 나서는 '새 시대의 지도자'라는 점을 강조하는 보도가 급증했다.

이런 가운데 '해바라기 언론의 용비어천가'에 대한 방송사의 특집 프로그램이 오히려 솔직해 보인다. KBS <미디어포커스>는 6월 민주항쟁 20주년을 맞아 전두환 정권 당시 우상화에 동원됐던 부끄러운 방송의 역사를 되짚어보는 특별기획을 9일 밤 방송했다.

'각하 생신 비디오', '전두환 자녀 결혼식'... 경조사에 동원된 언론들은 "각하, 만수무강하십시오!"라는 표현을 서슴지 않았다. 전두환 정권이 끝난 뒤 청와대에서 KBS로 이관된 미공개 영상 자료의 일부인 이 내용은 차마 지켜보기 민망할 정도다.

<미디어 포커스>는 당시 제작한 '각하 51회 생신 비디오', '전두환 자녀 결혼식' 등 대통령 개인 경조사에까지 공영방송이 동원된 역사를 그대로 보여주었다. 다음 주 <미디어 포커스>에선 한술 더 떠 "하늘이 내리신 대통령"을 방송할 예정이라고 한다.

당시 한 방송 진행자가 한 말을 그대로 따온 것이라는 점에서 대통령 의제에 국내 주류 언론들이 얼마나 충실하고 충성을 다했는지를 알 수 있다. 무고한 광주시민들을 대량 학살하면서 이루어진 군사집권이었기에, 전두환 정권은 훨씬 더 치밀한 언론통제를 근거로 한 적극적인 여론조작을 얼마나 필요로 했는지 가늠해 볼 수 있다.

노 대통령, 토머스 제퍼슨 심경 헤아릴까?

▲ 노무현 대통령이 5월 18일 오전 광주광역시 국립 5·18민주묘지에서 열린 광주민주화운동 27주년 기념식에서 기념사를 하고 있다.
ⓒ 오마이뉴스 권우성
미디어가 필요 이상으로 노출을 확대하거나 허위·왜곡·과장시킴으로써 국민의 눈과 귀를 멀게 했다. 미디어는 그저 대통령 의제의 도구로 활용된 것이다. 6·10 민중항쟁 20년이 흐른 지금 국내 언론들은 200년 전 미국의 대통령 의제에 귀 기울이고 있다. 왜 그럴까.

중앙은 물론 지역신문 사설과 칼럼에는 1800년 미국의 3대 대통령에 취임한 토머스 제퍼슨의 말을 마치 금과옥조처럼 인용하고 있다. "신문 없는 정부와 정부 없는 신문 중 하나를 우리가 선택해야만 하는 경우가 주어진다면 한순간의 주저함도 없이 후자를 택할 것."

하지만 1804년에 재선된 이후 임기 말인 1807년, 존 노벨이라는 사람이 그에게 '신문을 가장 유익하게 경영하는 방식이 무엇이냐'고 물은 데 대한 그의 답신 속 언론관은 180도 바뀌어 있었다.

그는 "신문에 나타난 것은 이제 아무 것도 믿을 수가 없다. 그 오염된 매개물에 실리게 되면 진실조차도 의심을 받게 된다. (중략) 나는 신문을 전혀 들여다보지 않는 사람이 신문을 읽는 사람보다 오히려 세상사를 더 잘 알고 있다고까지 말하겠다"고 했다.

임기 6개월 반을 남겨두고 있는 노무현 대통령이 언론과의 전쟁에 다시 돌입했다. 기자실 통폐합문제로 언론과의 관계가 더욱 불편해졌다. 지금 노무현 대통령은 "신문에 나타난 것은 이제 아무것도 믿을 수가 없다"고 했던 토머스 제퍼슨 대통령의 당시 심경을 헤아리고 있는지도 모른다.

대통령과 언론 일정한 거리 유지해야

노 대통령의 지나온 임기는 언론과의 끊임없는 긴장의 연속이었다. 그러나 따지고 보면 무명 정치인 노무현을 대통령으로 만드는데 언론은 상당한 기여를 했다. 국회에서 5공 비리 청문회가 열렸던 지난 1988년, 생중계로 폭로되는 정치인들의 비리를 바라본 국민들은 커다란 충격과 함께 시원함을 맛볼 수 있었다.

공격적인 어투로 비리의 급소를 파헤치는 국회의원들의 청문회활동은 언론의 스포트라이트 감으로 손색이 없었다. 당시 세간에 잘 알려지지 않았던 노무현 국회의원은 일약 전국적인 스타 정치인으로 각광받게 되었다.

이른바 언론의 '청문회 스타 만들기'로 각광받았던 그가 급기야 민주당의 대통령 후보물망에까지 올라 청와대에 입성하게 된 것은 미디어 정치의 강력한 위력으로 볼 수 있다. 그럼에도 적대적 매체지각으로 돌아선 것은 역사의 아이러니로 불릴 만하다. 그러나 대통령과 언론의 의제설정 상호관계는 정치, 경제, 사회 등 모든 분야와 국민들의 삶에 직접적인 영향을 끼친다는 점이다.

적대관계나 유착관계가 아니고 일정한 거리를 두고 견제하면서 겪는 대통령과 언론의 갈등은 국민을 흡족하게 하지만 사사건건 적대적 관계를 유지하면서 마찰을 빚게 되면 국민들은 불안해진다.

태그:#미디어포커스, #노무현, #의제설정, #전두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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