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 <그림이 있는 정원>겉그림
ⓒ 진선아이
충남 홍성의 '그림이 있는 정원' 수목원에는 '더 갤러리'가 있다. 대한민국 미술대전에서 두번이나 입선한(1999년, 2000년) 구필화가 임형재씨의 그림이 걸려 있는 곳이다.

임형재씨는 자신의 의지대로 움직일 수 있는 것은 오직 입 밖에 없는 척수장애인이다. 이런 그가 붓을 입에 물고 그림을 그린다. 이렇게 그린 그림들이 걸린 미술관이다.

수목원과 이름이 같은 <그림이 있는 정원>은 구필 화가 임형재씨의 이야기다. 이 다큐 동화를 쓴 작가는 어린 시절 소아마비를 앓아 평생 목발을 짚거나 휠체어를 타야 하는 고정욱씨.

<아주 특별한 우리 형>이란 뇌성 마비 장애인에 대한 동화를 시작으로 <안내 견 탄실이>,<네 손가락의 피아니스트 희아의 일기> 등, 10편의 장애인 동화를 쓴 고정욱씨의 신간이다.

주인공 임형재씨는 처음부터 장애인이 아니었다. 대학 선후배들과 함께 MT를 갔다가 불의의 사고로 척수 장애인이 되고 말았다.

1987년 4월 3일 스무 살의 봄, 뜻하지 않은 그날의 사고로 저는 육체의 자유로움을 잃게 되었습니다. 건강한 몸으로 살다 하루아침에 꼼짝할 수 없는 몸이 된 저는 살아 있는 자신을 한탄하며 한해 두해를 보냈습니다. 그런 생각으로 살아오던 제가 '이 세상 다시 한 번 살아 보자'고 결심을 하게 된 것은 변함없는 사랑으로 제 곁을 지켜주신 어머님 때문입니다.

"몸은 움직이지 못하지만 보고 듣고, 생각하고, 말할 수 있는 기쁨이 남아 있지 않냐"


멀쩡하던 큰아들이 한순간 전신마비 장애인이 되어버린 것은 청천벽력과 같은 일이었다. 하지만 그의 부모는 절망하는 대신 묵묵히 아들을 지켜보면서, 장애인이 된 아들이 언제든 다시 삶의 고삐를 쥐고 일어서길 간절히 바라고 있었다.

입에 붓을 물고 그림 그릴 것을 권유한 것은 현재 수목원 대표인 그의 아버지였다. 어느 날 텔레비전에서 구족화가를 본 그의 아버지는,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는 것이라곤 ‘입’ 밖에 없는 자신의 아들에게 '삶의 의미'를 찾아 주고 싶었던 것이다.

아들에게 그림을 권유한 아버지는 하루 종일 창밖 풍경만 보고 살아야 하는 아들을 위하여 황폐한 산을 일구어 나무를 심기 시작한다.

"자식이 애써 그린 그림들이 어두운 창고에 쳐 박혀 먼지가 쌓이면 안 된다는 일념 하나로 불모지의 땅에 미술관을 만들고 수목원까지 꾸미셨습니다. 세상에 다시 서려 하는 아들을 위해 조금이라도 힘을 더하고픈 부모의 마음을 보여 주신 것이었습니다. (중략)건강할 때는 느끼지 못했던 헤아릴 수 없을 정도의 큰 사랑을 누리는 것에 감사하고 있습니다. 힘들거나 어려울 때일수록 진정한 사랑을 알 수 있는 법입니다."-늘 감사하는 마음으로, 그림이 있는 정원에서 임형재

ⓒ 책속에서
하루 종일 창밖에서 땅을 일구어 나무를 심는 아버지를 바라보면서 입에 붓을 물고 그림을 그리는 아들과, 아들에게 생명의 의지를 찾아 주고 싶은 간절한 마음으로 가꾼 것이 지금 현재의 '그림이 있는 정원 수목원'인 것이다.

그래서 구필화가 임형재씨의 그림 속에는 나무들이 대부분이다. 그리고 장애인 아들을 둔 아버지가 20년 동안 손수 가꾼 수목원은, 장애인인 아들이 어디든지 가서 맘껏 그림을 그릴 수 있도록 배려한 흔적이 듬뿍 스며있는 곳이다.

몇 달 전 불길 속에서 뇌성마비 아이를 구해내고 숨져간 어느 어머니의 안타까운 죽음이 있었다. 부모들은 죽는 순간까지 세상에 남아질 자식을 걱정한다고 한다. 그 자식이 어엿하게 일가를 이루었고 남부러울 것 없는 유복한 환경에 있는데도 말이다.

장애를 가진 자식을 두고 가야하는 부모의 심정은 오죽하랴. 아니, 장애를 가진 자식을 바라보아야 하는 부모의 심정은 오죽하랴.

책속에는 부모가 없는 세상에 언젠가는 남겨질 장애인 아들이 조금이라도 편하게 살기를 바라는 부모의 애끓는 심정과, 그런 부모의 마음을 헤아려 다시 찾은 삶을 강하게 밀고 나가는 구필화가 임형재씨의 강하고 끈끈한 의지가 감동 있게 그려지고 있다.

장애인 작가 고정욱이 쓴 장애인 다큐 동화

태어날 때부터 장애인으로 태어난 줄로만 알았던 큰아버지는 왜 장애인이 되었을까? 장애인 친구를 어떻게 도와주어야 할까? 구족화가 협회란 어떤 곳일까? 이와 같은 장애인 관련 이야기와 함께, 뜻하지 않은 사고를 당했을 때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등을 큰아버지와 함께 지내는 동안 나래는 알게 된다.

<그림이 있는 정원>은 구필화가 임형재씨의 조카 나래가, 여름 방학 2주 동안 수목원에 있으면서 큰아버지를 통하여 알아가는 '장애와 장애인'이야기다. 나래에게 그동안 큰 아버지는 몸이 불편하고 무능력한 장애인일 뿐이었다. 때문에 수목원에 가는 것조차 싫어하던 나래는 이제 큰 아버지와 섭섭한 이별을 할 만큼 정이 함박 들고 말았다.

가까운 가족 중에 장애인이 있음에도 장애에 대한 아무런 인식이 없던 나래에게 큰 아버지를 통하여 알게 된 장애는, 이제 더 이상 특정 사람들의 특별한 이야기도 아니고 무능력한 모습도 아니다.

이런 설정은 이 책을 쓴 고정욱씨의 <아주 특별한 우리 형>이 출간된 지 5년이나 지났는데도 초등학생 독자들의 인기가 여전한 이유를 짐작하게 할 만큼 설득력이 있다.<그림이 있는 정원>도, 작가의 다른 동화들처럼 아이들의 가슴에 묵묵한 감동을 오래 오래 남길듯하다.

'그림이 있는 정원'과 '임형재'란 이름이, 어려운 일 앞에 쉽게 포기하고 싶고 생활에 대한 불평이 일때마다 떠오를지도 모르겠다.

덧붙이는 글 | <그림이 있는 정원>(고정욱/진선아이.2007년 6월/8천원

※그림이 있는 정원(http://www.gallerygarden.co.kr/)에 방문해 보세요.


그림이 있는 정원 - 아버지의 사랑이 만든 감동의 수목원, 세상과 만나는 작은 이야기 13

고정욱 지음, 장선환 그림, 진선북스(진선출판사)(2007)


태그:#임형재, #그림이 있는 정원, #고정욱, #구필화가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오늘도 제게 닿아있는 '끈' 덕분에 건강하고 행복할 수 있었습니다. '책동네' 기사를 주로 쓰고 있습니다. 여러 분야의 책을 읽지만, '동·식물 및 자연, 역사' 관련 책들은 특히 더 좋아합니다. 책과 함께 할 수 있는 오늘, 행복합니다.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