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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나라당 이명박 전 서울시장과 박근혜 전 대표가 지난 8일 오후 부산 벡스코(BEXCO)에서 열린 정책비전대회에서 강재섭 대표의 인사말을 들으며 서로 다른 곳을 바라보고 있다.
ⓒ 오마이뉴스 권우성
이명박 캠프는 나름대로 선방을 하고 있었다. 정부 보고서 변조의혹 한 방으로 전세를 바꿔버렸다. 변조의혹은 경찰 수사선상에 올랐고 대운하 공약에 대한 시시비비는 쑥 들어갔다.

그런 이명박 캠프가 한 발 더 나갔다. 박근혜 캠프의 변조 의혹을 제기했다. 정두언 기획본부장과 진수희 대변인이 나서 박근혜 캠프(의 유승민 의원)의 변조·유출 의혹을 제기했다. 스스로 전선을 확장한 것이다.

왜 그랬을까? 이명박 전 서울시장 스스로 "사면노가 상황"에 답답해하고, 같은 당 "후보끼리 싸우고 있(는 상황)음"을 한탄할 정도인데 무슨 이유로 다중전선을 친 것일까?

"정두언·진수희 발언은 기획됐다"

얼핏 봐선 혼선 같다. 정두언·진수희 의원은 박근혜 캠프를 걸었지만 이명박 전 시장은 풀었다. "한나라당의 특정 캠프가 여당과 공모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했다.

하지만 겉모습에 이끌릴 일은 아니다. 정두언·진수희 의원의 발언은 거의 같은 시점에 나왔다. 다른 사안도 아니고 상대 캠프의 도덕성과 정체성을 부인하는 고강도 발언을 연타로, 그것도 실수로 한다는 것은 상상할 수 없다.

기획됐다고 보는 게 타당하다. 이명박 전 시장의 말은 여유와 포용의 이미지를 제고하고 퇴로를 확보하기 위한 발언으로 이해하는 게 타당하다.

그럼 그 기획 의도는 뭘까? 주목할 현상이 두 개 있다. 정두언·진수희 의원이 박근혜 캠프 변조의혹을 제기한 어제, 동시에 나타난 사실들이다.

국무총리실 산하 한국교통연구원이 '대운하 건설'과 '한중 열차페리'의 타당성 검토를 위한 태스크포스를 구성한 사실이 밝혀졌다. 그리고 중앙선관위가 정부 태스크포스의 대운하 보고서 작성 및 유출 경위와 함께 이명박 시장 재임시절 서울시 산하기관인 시정개발연구원이 대운하 관련 보고서를 작성한 경위를 수사해 달라고 검찰에 의뢰했다.

이 두 사안엔 공통점이 있다. 이명박 캠프에 별로 득이 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명박 전 시장이 그랬다. "국가의 녹을 먹는 공무원들이 할 일이 태산 같을 텐데… 보고서를 만드는 것 자체가 맞지 않다"고 했다. 변조 여부를 떠나 정부가 특정 후보의 공약을 검토하는 것 자체가 "잘못"이라는 취지다.

이렇게 말길을 놓으면 이명박 전 시장은 피해자가 된다. 정부의 부당한 '개입'과 '공작'에 피해를 보는 사람이 된다.

하지만 어제 새로 나타난 두 사실은 이명박 전 시장의 이런 '바람'에 희석제를 뿌린다. 똑같이 국가의 녹을 먹는 서울시 공무원에게 자신의 대운하 공약 보고서를 작성하게 한 행위를 설명할 길이 없어진다.

이명박이 박근혜 캠프에 변조의혹을 제기한 이유는?

더 큰 문제가 있다. 정부의 부당한 '개입'과 '공작' 대상에 똑같이 이름을 올린 박근혜 전 대표의 태도다. 박근혜 캠프의 유승민 의원은 교통연구원의 '한중 열차페리' 태스크포스에 대해 "충분히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는 반응을 보였다. 인천시 등이 추진을 희망했던 사업이기 때문에 정부가 사업 타당성을 조사할 수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와의 대치전선이 무뎌질 판이다. 오히려 시정개발연구원 때문에 배후전선이 쳐질지도 모른다. 전선 조정은 불가피하다.

박근혜 캠프 변조의혹을 들고 나온 이유를 이 맥락에서 풀어볼 수 있다. 이명박 캠프가 제기하는 의혹의 핵심은 '연루' 또는 '결탁'이다. 이 의혹의 핵심이 설득력을 확보하면 정부와 박근혜 캠프는 한 두름으로 묶인다.

이로 인해 무뎌지는 대정부 전선을 유지하는 효과를 누릴 수 있고, 그것이 아니라 해도 당내 경선구도에서 공격용 실탄을 장전하는 효과를 챙길 수 있다.

물론 이런 분석엔 단서가 있다. 시간이다. 경찰이 정치적 부담을 느껴 차일피일 수사를 미뤄야 의혹공방의 생명력이 유지된다. 만에 하나 경찰이 속전속결로 나서면 판은 완전히 달라지고 어느 한쪽은 치명타를 입는다.

참고로 <동아일보>가 보도한 사실을 전한다. 중앙선관위의 수사의뢰를 받은 대검찰청은 이 사건을 서울중앙지검 공안1부에 배당했고, 공안1부는 다시 서울경찰청으로 넘겼으며, 서울경찰청은 시정개발연구원의 보고서 작성 경위를 제외한 나머지 부분을 경기경찰청으로 넘기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한다.

경기경찰청의 간부들은 불만이다. "정치적으로 민감하고 전 국민이 관심을 갖는 사건인 만큼 당연히 본청 특수수사과가 담당하는 것이 맞다"고 주장하고 있다고 한다.

태그:#이명박, #박근혜, #열차페리, #운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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