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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생명의 신비를 느낀 아침입니다. 아침에 눈을 뜨는데 느닷없이 노래가 나옵니다. 그것도 쌩뚱맞은 노래가요.

"댄씽 퀸~ 댄생 퀸~ ..........."

아마 그룹 아바의 옛날 노래죠? 아는 가사라곤 댄씽퀸 뿐이니 노래는 줄 튄 음반처럼 제자리를 맴돌지만 아무려면 어때요. 노래가 나를 흥겹게 한다는 사실이 중요하죠.

어제 종일 집에서 더위랑 씨름을 해서인지 에어컨 바람 때문인지 눈탱이가 통통하게 붓고 얼굴도 찐빵처럼 부풀었는데 뭐가 좋다고 노래가 나오는지. 아무튼 피곤한 몸과 뜨이지 않는 눈으로 댄씽 퀸을 흥얼대며 고3 아들을 깨우러 옥탑방을 내려갔습니다.

아들을 학교에 보내고 아침을 먹은 다음 다시 옥탑방으로 돌아왔는데 몸에서 확확 불이 납니다. 아침이라 아직 선선한데 왜 이렇게 덥지? 옷이라곤 깔깔한 민소매 웃도리를 입었을 뿐인데.

14년 전 위암으로 돌아가신 친정 아버지의 모습이 문득 떠오릅니다. 늘 더워하셨던 아버지. 집에서는 언제나 하얀 조끼 런닝만 입고 계셨습니다. 70이 넘은 나이에도 흰 머리가 없으셨고 런닝을 입으신 몸매는 젊은이 못지 않으셨습니다.

저는 늘 추위를 탔습니다. 가을이 깊어지면 긴긴 겨울을 어찌 보내야 하나 그게 큰 걱정이었습니다. 그리고 겨울 내내 "자네 입술이 너무 파래" 소리를 남편에게 들었습니다.

어려서부터 한약을 많이 먹었죠. 어머니는 저를 늘 측은히 여기셔서 시집을 가고 둘째 아이를 나은 후에도 약을 해 주셨습니다. 어렸을 땐 약이니까 먹어야 하나보다 하면서 먹었지만 둘째를 나은 다음부턴 마구 화를 냈습니다.

"그냥 좀 놔 두세요. 내 기운으로 살고 싶어요."

약을 정기적으로 해 주시는 어머니가 고맙긴커녕 원망스러웠습니다. 내가 해드려야 할텐데 그러지 못하는 죄스러움 늘 신세지고 산다는 속상함. 내 힘으로 살게 놔 두질 않는다는 원망. 어머니의 걱정은 나의 암 재발로 극치에 이르렀고 나 역시 어머니와 한 집에 사는 것이 숨쉬기 힘들 만큼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문제는 여기서부터 풀리기 시작했습니다. 내가 찾은 한의원에서 가족 사진을 보시더니 나와 아버지가 소양인이라고 하셨습니다.

말도 안되는 소립니다. 어딜 봐도 아버지와 내가 닮은 곳이 없습니다. 지금까지 외모, 식성, 성격, 모두 완벽하게 엄마를 닮았다고 생각했습니다. 어려서부터 엄마 닮았다는 소릴 많이 들었습니다. 바로 아래 여동생이 아버지를 빼 닮았기에 내가 엄마를 닮는 것은 오히려 당연한 일 같았습니다.

친정살이를 하면서 어머니와 시시콜콜한 일로 번번히 부딪치던 중에 한의사가 던져 준 말은 내 삶을 바꾸고 있습니다. 맏딸로 크면서 어머니의 강한 바람에 따라 언니 노릇 누나 노릇 하려고 애썼고, 15년 교직 생활하는 동안 바른 교사의 길을 걸어보려고 부단히 노력했습니다. 현모양처의 길은 끝을 알 수 없는 길이었습니다.

아니구나. 못 해. 미안하게 됐어. 그 소리 하지 못하고 힘들어도 웃고 울고 싶어도 합리화 시키며 그렇게 사는 게 잘 사는 것인 줄 알았던 바보! 욕심쟁이! 어리석기가 기네스감이었습니다.

아버지는 말이 없으셨습니다. 술을 많이 드셨죠. 마음이 한없이 여렸고 어머니에 대한 열등감과 죄책감이 많았습니다. 조용한 걸 좋아하시고 노래와 사진 찍기, 일기 쓰는 걸 즐기셨습니다. 다정다감하고 유머가 넘치는 분이었는데 새끼들 다섯을 대학까지 혼자 공부시키시느라 정신없는 어머니에게 아버지는 한심하고 무능한 남편일 뿐이었습니다.

이제보니 아버지와 저는 너무도 닮았습니다. 어머니도 깜짝 놀라시며 "니가 아버지를 꼭 닮았구나" 하십니다. 무능하다고 미워했던 아버지. 외면했던 아버지의 모습이 고스란히 내 속에 감춰져 있었습니다. 아버지처럼 무능해지지 않으려고 얼마나 애를 썼는지 내 의식은 모릅니다. 무지막지한 무의식의 힘으로 지금껏 살아온 것 같습니다.

한의사가 말하는 암환자의 특성은 자신의 한계를 모르고 무리를 한다는 겁니다. 무리가 되고 있다고 알려주는 센서가 고장난 사람들이래요. 그래서인지 아이들 키우며 직장 생활하던 15년 간 저는 몸살 한 번 앓지 않았습니다.

이제 입술이 붉어졌습니다. 몸살도 앓습니다. 싸늘하던 몸이 아버지처럼 뜨거워지고 있습니다. 요즈음 저도 아버지처럼 사진을 찍고 글을 쓰며 노래를 부릅니다. 암세포도 머지않아 '못살겠다'고 내 몸을 떠날 것 같습니다.

댄씽 퀸은 나의 무의식이 일러주는 나의 갈 길이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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