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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충남 홍성 그림이 있는 정원 수목원 풍경 일부
ⓒ 김현자
지난 8일 일요일 오전 7시. 우리 가족은 충남 홍성 '그림이 있는 정원 수목원'을 향해 떠났다. <그림이 있는 정원>(진선아이) 출간기념회 초대를 받았기 때문이다.

<그림이 있는 정원>은 지체장애인 임형재(40)씨의 이야기를 고정욱(48)씨가 동화로 풀어쓴 책이다. 책 속에는 건강하던 주인공이 어떻게 장애인이 되었으며, 어떻게 새 삶을 시작할 수 있었는지, 어떻게 구족화가가 되었는지 등이 잔잔하게 그려지고 있다. 물밀듯 밀려드는 감동으로 읽은 책이었다.

▲ 왼쪽부터 <그림이 있는 정원>겉그림, 진선출판사 대표,그림 그린이 장선환,임형재씨의 부친 임진모 수목원대표,주인공 임형재,세계 구족화가 협회(한국) 대표,지은이 고정욱
ⓒ 김현자
<인간극장>(KBS-2TV)에 임형재씨와 '그림이 있는 수목원'의 사연이 10부작으로 방송되면서 워낙 유명해진 수목원과 수목원 사람들이다. 방송으로 볼 때와는 달리 임형재씨 어머니의 허리가 눈에 띄도록 구부정해 보여 콧날이 시큰해졌다.

오전 11시. 출간 기념회가 시작되었다. 동화를 쓴 고정욱씨와 주인공 임형재씨의 인사말이 끝나고 임형재씨 아버지의 차례가 되었다. 하지만 쉽게 말을 잇지 못했다. 지난 20여 년간 척수장애인이 된 아들을 바라보아야만 했던 수많은 고통과 그런 아들의 이야기가 책으로 나온 그 감회가 한꺼번에 밀려들어 목메고만 듯했다.

사람들의 격려 박수를 받고서도 쉽게 말을 잇지 못하는 모습을 보면서 눈시울이 붉어졌다. 아마 다른 사람들도 나처럼 눈시울이 붉어졌으리라.

▲ 구족(필)화가 한 분이 입에 붓을 물고 계곡 풍경을 그리고 있다.
ⓒ 김현자
▲ 발로 그림도 그리고 시도 쓰는 분이다.
ⓒ 김현자
출간기념회 한쪽에서는 구족화가 한 분이 입에 붓을 물고 그림을 그리고 있었고, 그 옆에는 발로 그림을 그리는 또 다른 구족화가 한 분이 잠시 쉬고 있다가 다가서는 내게 반가운 인사를 건넸다. 한마디도 알아듣지 못했지만, 반가워하는 기색에서 사람 좋아하는 따뜻한 성품이 느껴졌다. 다시 한 번 꼭 만나고 싶은 분이다.

입이나 발가락으로 붓을 마음대로 움직일 수 있기까지는 얼마나 걸릴까? 그림 한 점이 완성하기까지 얼마나 걸릴까? 장애인으로, 혹은 장애인의 가족으로 살아가는 동안 가장 힘든 것은 무엇일까? 한참 동안 붓끝을 따라 그림 구경을 하였다. 거의 무채색에 가깝던 계곡의 나무들 잎이 파릇파릇해지고 돌멩이 하나하나가 제 빛을 찾아가고 있었다.

몇 분의 이야기를 종합해 보면, 이분들이 입이나 발로 붓이나 펜 등을 마음대로 움직일 수 있기까지는 7년에서 10년가량이 걸린다고 한다. 하루 그림을 그렸으면 또 하루는 그림을 그리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아니, 하루에도 몇 번씩 마비되는 몸을 쉬어주고 풀어주어야만 한다.

입이나 발로 그림을 그리는 분들은 임형재씨처럼 파리나 모기조차 제힘으로 좇을 힘이 없기 때문에 가족이 늘 옆에 있어야만 한다. 물통을 갈아 준다거나 종이를 바꾸어 주어야 하는 것 등도 가족들의 몫이다. 그나마 이런 가족이 있는 장애인들은 행복한 거라고, 음지에 있는 장애인들이 훨씬 많다며 어느 척수장애인은 이렇게 말했다.

"걸어다니지 못해도 손이라도 마음대로 움직일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지난날 많은 원망을 하였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그림을 그릴 수 있는 입이 있고, 가족들이 곁에 있는 것만으로도 행운이라고 생각합니다. 척수장애인이 되어 입에 붓을 물고 그림을 그리면서, 제대로 그려지지 않아 고통스러운 시간들을 수도 없이 보내면서, 건강할 때 남을 위하여 아무것도 하지 않아 부끄러운 손이었다는 사실을 비로소 알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출판기념회가 끝나고 구족화가들의 작품이 전시된 미술관으로 이동하였다. 사람들은 미술관에 들어서자마자 감탄을 하였다. 미술관에는 노트만 한 그림부터 2미터에 이를 만큼 큰 그림도 있었다. 어떻게 저렇게 큰 그림을 그릴 수 있을까?

ⓒ 김현자
ⓒ 김현자
오후에는 '더불어 사는 삶'이란 주제로 고정욱(국제장애인연맹 한국지부 이사)씨의 강연회가 수묵원에서 자랑하는 후박나무 숲에서 있었다.

'고정욱 선생님의 동화들이 아이들에게 인기 있는 이유가 바로 이것이었구나!' 싶을 만큼 강연회는 재미있었다. 학교 공부가 저렇게 재미있으면 게임중독이 되는 아이들이 하나도 없을 거야. 그 대신 책 좋아하는 아이들이 훨씬 많아질 거야! 할 만큼 재미있는 강연이었다.

우리나라 장애인은 전체 인구의 10%. 그러니까 500만 명에 가까운 사람들이 장애인이다. 하지만 우리 주변에는 장애인이 그다지 보이지 않는다. 그 많은 장애인들이 어디로 간 걸까? 고정욱 선생님은 아이들에게 소외받는 장애인들의 현실부터 장애인과 비장애인인 더불어 살아가는데 꼭 필요한 것들을 자세하고 재미있게 설명해 주었다.

또 세상에 태어나 단 한걸음도 걸어보지 못한 자신의 이야기를 아이들에게 들려주었다. 물론 자신처럼 장애를 겪음에도 어머니의 사랑이 있어 세상에 당당하게 나올 수 있는 장애인들이 더 많이 늘어나기를 바라면서, 아이들에게 그 소중한 역할을 알려주기 위해서다.

장애란 무엇인가? 장애에는 어떤 것들이 있는가? 인간이 행복하게 살 수 있는 필수 조건에는 무엇이 있는가? (교육, 결혼, 직업) 비장애인이 길에서 장애인을 만났을 때 도와주는 방법을 설명하는 것으로 강연회는 끝났다.

▲ 오후에는 저자 고정욱씨가 '더불어 사는 삶'이란 주제로 강연을 했다.책을 좋아하는 가족들이 초대를 받았다.
ⓒ 김현자
[고정욱] "길에서 장애인을 만나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아이들] "먼저 도와드릴까요? 라고 물어야 해요? 그리고 무엇을(어떻게) 도와 드릴까요?라고 물은 다음에 대답에 따라 도와드려야 해요."


장애에 대해 모르고 있던 것들을 또한 많이 알게 되었다. 언론이나 매체들을 통하여 구족화가에 대해 들었지만 입에 붓을 물고 그리는 것은 처음 보았다. 마음으로는 장애인에 대해 특별한 편견이 없다고 자부하던 나였지만 '조건 없는 동정이 앞섰던 것은 아닌가'하고 강연을 들으며 생각했다.

장애인에게 병신, 벙어리, 곰배팔, 절름발이, 봉사, 혹은 장님이라는 표현이 잘못된 것조차 모르고 자란 우리에 비하면 요즘 아이들은 장애인에 대해 훨씬 맑고 순수하며, 그만큼 편견도 없는 것 같다. 이런 아이들과 장애를 가진 아이들이 변함없는 우정으로 자라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자연스럽게 더불어 사는 그런 세상을 간절히 바라본다.

특별한 가족나들이였다. 많은 사람들을 만났고 그들의 많은 세상을 만났다. 이젠 더는 그들만의 세상이어선 안 될 것이다. 함께 살아가는 순간이 훨씬 많아져야 할 것이다.

강연회가 끝난 후 수목원을 둘러보았지만 다 둘러보지도 못했고, 수목원에 있는 1800여 종의 식물 중 보지 못한 것이 더 많다. 멋있고 예쁜 나무들이 너무 많은 수목원이다. 예쁘고 신기한 꽃들도 많다. 조만간 다시 들르기로 약속하면서 아쉽게 떠나와야만 했다. 여유 있게 감상하지 못한 그림도 아쉽다. 이틀 전 일인데 그날의 풍경이 아른거리고 있다.

출판기념회에서 만난 작가 고정욱

▲ 작가 고정욱씨
ⓒ김현자
출간기념회에 앞서 고정욱 선생과 잠시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림이 있는 정원>이 112권째 책이라는 말에 깜짝 놀랐다.

1살 갓난아이, 걸음마조차 배우지 못한 첫아이가 소아마비로 평생 걷지 못한다는, 자신의 의지로는 단 1cm도 걷지 못한다는 의사의 말에 그의 어머니는 책을 맘껏 읽을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해주고 날마다 업어 등교시켜 고등학교까지 개근으로 졸업했다고 한다.

워낙 공부를 잘하고 아는 것 많았던 학생 고정욱은 의사가 되고 싶었지만 의사가 될 수 없었다. 의사는 종종 환자에게 많은 힘을 쏟아야 하기 때문이다. 이런 그를 국문과에 입학시키고 작가 혹은 문학박사가 되게 한 사람은 그의 부모였다. 순전히 부모의 선택인지라 2학년이 되어서야 비로소 작가가 될 결심을 하게 되었단다.

"아이들에게 장애인들에 대해 알려주고 싶어 동화를 쓰기 시작했습니다. 책을 읽은 아이들이 자라나 어른이 되는 20년 뒤에는 지금처럼 장애인에 대해 일부러 설명하지 않아도 될 만큼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자연스럽게 더불어 사는 그런 세상이 될 수 있었으면 바라면서요."

고정욱 선생은 자신을 성공한 사람, 행운아라고 생각한다. 자신의 행운과 성공은 혼자 가져선 안 된다고, 다른 사람과 나눌 때 더욱 빛나고 의미가 커진다고 말한다. 장애인들을 위한 그의 발걸음이 바쁜 이유다. / 김현자

덧붙이는 글 | 그림이 있는 정원 수목원 : 충청남도 홍성군 광천읍 매현리 459-1번지


그림이 있는 정원 - 아버지의 사랑이 만든 감동의 수목원, 세상과 만나는 작은 이야기 13

고정욱 지음, 장선환 그림, 진선북스(진선출판사)(2007)


태그:#그림이 있는 정원, #임형재, #고정욱, #진선아이, #홍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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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제게 닿아있는 '끈' 덕분에 건강하고 행복할 수 있었습니다. '책동네' 기사를 주로 쓰고 있습니다. 여러 분야의 책을 읽지만, '동·식물 및 자연, 역사' 관련 책들은 특히 더 좋아합니다. 책과 함께 할 수 있는 오늘, 행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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