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난 진짜 작은 개미였다. 20년 전 직장 후배의 제안으로 20만원씩 둘이 합해 40만원으로 시작한 것. 후배가 하는 말, 직장을 그만두고 주식을 부업삼아 하고 싶은데 겁이 나서 혼자는 도저히 못하겠단다. 난 "그래 좋아, 20만원이라면 한 번 해 볼까?" 했다.

그러다 각자 계좌를 만든 건 2년 후였나. 조카가 은밀히 나를 불러서 우리사주 얘기를 꺼낼 때만 해도 난 주식을 잘 몰랐다. 가끔 신문에 난 주식시세나 보고, 때론 증권회사 전광판에서 내가 산 주식시세나 보는 정도. 오르면 팔고 내리면 그냥 묻어두는 식으로 정말 무식하게 주식을 한 셈이다.

직장을 옮기고 주식에 대한 새로운 목적이 생겼다. '해외여행, 쥐꼬리 월급으로는 꿈도 꿀 수 없으니 주식 차익으로 가 보자'. 매우 야무진 꿈이었지만 헛된 꿈만은 아니었다. 친구와 정보도 교환하고 주식을 몇 번 샀다 팔았다 하면서 작은 차익으로 1년에 한 번은 해외여행을 갔다.

그리고 주식으로 인해 삶의 생기가 생겼다. 오를 때는 장밋빛, 그러나 내릴 때는 평상심을 유지. 철저히 개미의 도를 지켰다. 주식에서 개미의 도란 욕심을 버리는 것. 자기 수입이나 재산과 견줘 잃어도 흔들리지 않을 정도의 투자에다 감정적이기보다 객관성을 유지, 마음의 평형을 잃지 않아야 할 것. 사실 큰 돈을 들이면 생활이 흔들리지만 작은 돈을 들이면 그냥 취미생활처럼 가볍게 즐길 수도 있다.

한 번은 제지회사의 우선주를 샀다. 처음에는 500만원 안팎을 투자. 그런데 내게 몫돈이 생기면 돈 빌려 달라는 사람이 왜 그리 많은지 홧김에 몫돈 천만원을 그 주식에 재투자했다. 한 달쯤 지나 우선주 파동이 일어났다. 자고 나면 상한가였다. 아슬아슬하게 세 번 상한가 치고 팔았다. 그 다음 날은 상한가였다가 곧 하한가로 곤두박질. 이럴 땐 기분이 최고다.

대박은 두 번이었다. 한 번은 법정관리주식이었다. 물론 회사 내용이 좋다는 정보만으로 위험투자를 한 것. 그런데 하필 IMF가 터졌다. 많은 돈은 아니었지만 걱정이 아닐 수 없었다. 그런데 우연히 동료 직원에게 그 회사 정보를 들었다. 자기 동생이 그 회사 기획실에 근무한다면서 "그 회사 이번에 법정관리에서 풀리려다 IMF 때문에 보류했어요"라고 하는 게 아닌가. 그러면서 곧 풀릴 테니 걱정말란다.

정말 얼마 지나지 않아 법정관리에서 풀렸고 또 한 번 수익을 냈다. 덕분에 해외여행은 좀 다녔다. 직장생활 틈틈이. 국내여행은 더 많이 다녔다. 삶이 지루해질 때면 난 언제나 달력을 들고 앉아 쉬는 날 체크하는 재미로 살았다. 달력과 지도는 항상 나와 가장 가까운 친구였다.

그러나 맨날 대박(?)이겠는가, 쪽박도 있지. 이게 주식의 근엄한 법칙인데. 나도 그것을 알았던지라 각오는 하고 있었다. 하지만 대박도 대박 나름이고, 쪽박도 쪽박 나름인 것. 없을 때의 대박이라면 하루 아침에 생활이 달라지겠지만, 반대로 쪽박이라면 머리통에 지진이 나는 충격을 감수해야 한다.

혹시나 하고 증권회사에 고이 묻어 놓았던 돈 300만원이 불씨였다. 수입이 거의 없어 비상금으로 남겨 놓은 건데. 게다가 한참동안 주식과 결별하고 있었고 직장도 다니지 않아 정보도 전무한 상태였다. 그런데 누가 말했던가 VK주식이 괜찮을 거라고. 난 그냥 가만히 묻어 두느니 아쉬운 판에 한푼이라도 늘려보자는 취지로 그것에 올인했다. 대박까지는 아니더라도 용돈 정도는 나오지 않을까 해서. 유상증자를 한다고 했을 때 알아봤어야 했는데. 여태껏 한 번도 겪어 본 적이 없었던 터라 난 그냥 구경만 하고 있었다.

법정관리로라도 넘어갔으면 어느 정도는 찾을 수 있었을 텐데 상장폐지로 가닥이 잡히면서 거래가 중단. 정리매매순이라나 뭐라나. 정말 딱 걸렸다. 그때 팔아도 20~30만원 수준. 난 깨끗히 두 손 들었다. 생활비도 요원한 판에 비상금까지 날리다니 아무리 평정을 되찾으려 해도 우울, 또 우울. 큰 액수는 아니었지만 지금 상황에서는 정말 뼈아픈 경험이었다.

1년 동안 그 일은 잊고 살았다. 물론 처음에는 속이 쓰렸지만 내 천하태평 성격은 곧잘 다른 곳으로 이동. "내 돈이 안 되려니까, 그랬겠지"하고 잊었다. 그런데 어제 이 기사를 쓰려고 다시 조회를 해 보았다. 정리매매 후 감자를 했는지 1500주는 25주로 줄었고, 현재 평가액 9만1373원이란다.

이럴 때 내 마음을 콕 집어 표현해 줄 말 없나? 쪽박보다 더 강렬하게 나를 대변해 줄 말! 그러나 주식시장의 교훈은 슬프게도 냉엄하다. '대박의 기쁨은 짧고 쪽박의 허무는 긴 것이다'

덧붙이는 글 | '대박 쪽박의 기억' 응모글입니다


태그: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