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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몸도 마음도 풀어준 깔끔한 맛의 수제비
ⓒ 정현순
"너 오늘 이사하느라고 수고 많았다. 대충 해놓고 쉬어라. 하늘만큼 땅만큼 사랑한다."
"네 저도 어머니를 하늘만큼 땅만큼 사랑해요."

10일전 분가한 며느리한테 보낸 시어머니의 문자 메시지라고 한다.

하루 종일 장대비가 내리는 19일, 친구들을 수제비 집에서 만났다. 그는 우리들이 자리에 앉자마자 이렇게 말했다.

"지난 7일에 우리 며느리 분가 시켰어."
"진짜 잘했다. 잘했어."

친구들은 이구동성으로 그를 칭찬했다. 얼굴이 환해진 그는 또 이렇게 말했다.

"10명이면 9명은 잘했다고 하는데 우리 영감만 잘 못했다고 해. 집이 허전하다면서."
"잘했어. 요즘처럼 더운 날씨에 옷을 마음대로 벗고 있을 수도 없고, 같이 오래 살다 보면 서로에게 실망을 해서 상처가 될 수도 있어."
"그 말이 맞아. 1년6개월 데리고 살았으니깐 정도 들었고 우리 집안 분위기도 익혔으니깐 그것으로 만족해."

그러면서 친구는 손녀는 보고 싶지만 솔직히 편하다고 한다. 함께 살면 서로의 눈치를 보는 것도 사실이다.

"그런데 며느리한테 그런 문자 보낼 생각을 어떻게 다했니?"
"언젠가 성당에서 들은 얘기가 생각나서. 아들, 딸, 며느리, 사위한테 말하기 멋쩍으면 문자메시지를 마구 마구 보내라고 하더라고. 마침 며느리 이사해서 고생했으니까."
"자 박수 짝짝짝~~~."

며느리한테 사랑고백을 한 친구는 아들만 두 명 둔 친구이다. 그는 며느리가 처음 들어와서 하는 일 모두가 신기해서 따라하고 싶은 마음이 생겨서 마치 딸처럼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어떤 때는 며느리 액세서리를 하고 나오거나 구두를 신고 나온 적도 있었다. 그의 남편도 며느리와 손녀를 무척 예뻐해서 분가시키는 것을 적극 반대했다고 했다.

그러나 친구가 "그 애들도 따로 살아봐야 알뜰하게 살림도 하고, 지들끼리 재미있게 살아도 봐야 하고, 이렇게 고부간의 사이가 좋을 때 좋은 모습으로 분가를 시키는 것이 좋다"고 하면서 설득을 시켰다고 한다. 나가서 산 지가 10일 조금 넘었는데 친구 집에 오면 며느리가 전기를 아끼고 가스불도 아끼는 것이 확연히 달라졌다고 했다.

시댁에 살 땐 생활비 일체를 시어머니가 부담해왔다. 하지만 앞으로는 그의 신랑(아들)이 벌어오는 것으로 해결해야 하므로 절약해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우린 그의 얘기를 들으면서 "그러게 먼저 며느리 본 사람이야기를 듣고 우리도 배워야해. 얘기만 들어도 저절로 기분이 좋아진다" 하고 그의 말을 열심히 경청했다. 세월이 많이 좋아졌다고는 하지만 고부간의 문제는 서로의 노력이 없으면 불편한 관계가 되기가 십상이다.

결혼해서 25년을 시어머니를 모시고 살고 있는 친구가 "정말 잘했다. 난 여태까지 시어머니와 함께 살아서 아들 결혼시키면 절대로 같이 안 살 거야. 어떤 때는 시동생이 몇 달만이라도 모셨으면 하는 생각도 들면서 괜스레 약이 오를 때도 있었어"라고 한다.

나도 아들이 결혼하면 같이 살고 싶은 생각을 한때는 했었다. 그러나 주변에서 며느리와 함께 살면서 크고 작은 문제로 자주 부딪히는 것을 보면서 내 생각도 완전히 바뀌게 되었다. 가까이 살면서 각자의 생활을 존중해주는 것도 좋은 방법이란 생각으로 바뀐 것이다.

친구들과의 수다는 참으로 이로운 것이 많다. 좋은 일은 혼자 알고 있기보다는 여럿이 함께 공유하는 것이 좋다. 고민도 털어놓고 여러 명이 의견을 말하다 보면 거기에서 해답을 찾을 때도 있다. 내가 미처 경험하지 못한 일들, 내가 갈등하는 일들의 해답을 친구들의 수다 속에서 찾을 수 있는 것이다. 누군가가 어려운 일을 해결해나가는 과정을 들으면서 배우기도 한다.

우리들의 수다는 좀처럼 끝날 줄을 몰랐다. 그때 그의 며느리로부터 전화가 왔다. 이번 돌아오는 일요일에 친구들을 자신의 집으로 초대를 했단다.

"그러게 내가 아무리 편하게 해준다고 해도 친구들을 한 번도 초대를 못한 거야. 그러니 그게 시집살이이지 뭐가 시집살이이야."
"그래 네가 요즘 한 일 중에 제일 잘했다."

그가 한마디 더 덧붙인다.

"니들도 애들한테 사랑한다고 메시지 보내."
"그래 그래 알았다. 알았어."
"얘들아 하늘만큼 땅만큼 사랑한다."

태그:#며느리, #시어머니, #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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