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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도토리 도사님 안녕하세요.

얼마전 호주로 배낭여행을 갔다가 그곳에서 지금의 남자친구를 만났습니다. 저와 남자친구 모두 동성의 친구 두 명과 함께 여행중이었고요. 서로 전혀 모르는 상태로 만났지만, 낯선 외지에서 같은 한국인을 만났다는 사실만으로도 반가웠고, 일정과 계획도 서로 비슷해 보름의 여행기간 중 거의 반 정도를 함께 하게 되었습니다.

작별할 즈음 남자친구가 제 홈페이지 주소를 물었고, 자연스레 한국에 돌아와서도 연락을 나누게 되었죠. 사귄 지는 이제 한달 정도 되었고, 같이 있으면 무척이나 즐겁습니다. 배려하는 마음도 많고요. 제 친구들이 그를 미스터 매너라고 부를 정도입니다.

그런데 요즘 고민이 하나 생겼습니다. 이 얘기는 민망해 아직 친구들에게도 못했는데요. 사귄 지 이제 막 한달쯤 되었을 뿐이고 아직 서로에 대해 잘 알지도 못하는데, 자꾸 단 둘이 바닷가로 여행을 가자고 조릅니다.

너와 여행가고 싶다고. 몇 번은 웃어넘기기도 하고, 어려울 것 같다고 얼버무리기도 했는데, 포기할 줄을 모르네요. 이건 미스터 매너가 아니라 미스터 집요예요. 같이 있고 싶고 더 친해지고 싶다고. 자기 못 믿느냐고 하는데, 점점 거절하기도 미안합니다.

저도 같이 있으면 즐겁고, 서로 많은 이야기를 나누고 알아가고 싶은 마음이야 마찬가지입니다. 그리고 처음 만난 것도 여행중이었던 터라 마음이 조금 흔들리기도 합니다만. 하지만 그래도 다 큰 남자 여자가 단 둘이 여행을 가는 것은 아무래도 신중해야 할 것 같은 느낌이 듭니다.

꼭 혼전순결을 지켜야 해서라기보다, 주위에서 가끔 그런 이야기를 들을 때가 있거든요. 다른 누구누구 선배가 임신을 하게 되었는데, 그 사실을 알았을 때는 이미 남자친구와 헤어진 때였다거나, 고등학교 동창인 누구는 임신을 해서 힘든 마음으로 남자친구에게 말했는데 칠칠치 못하다고, 그리고 자기 애 아니라고, 이런 얘길 자신에게 왜 하느냐며 화를 내더니 아예 연락을 끊더라고, 그래서 혼자 가서 수술을 받았더라는 이야기. 그런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정말 조심해야겠단 생각을 하던 터입니다.

어떻게 해야할지 모르겠네요. 저도 남자친구가 많이 좋지만, 적어도 아직은 단 둘이 여행을 가고 그러는 건 싫습니다. 제가 어떻게 해야 할까요. 어떻게 하면 남자친구 마음 상하지 않게 잘 말해줄 수 있을까요? 아니면 여행을 가되 방을 두 개를 잡고, 제가 조심하고 분명하게 선을 긋는다면 어떨까요? 참고로 남자친구는 저보다 네 살 연상이고, 저는 스무살입니다. 도도사님 도와주세요.

일산에서 대학생 썬

A. 에헤라디야~

어디서 질질 - 젤젤 - 소리가 들리는구나! 오호랏! 남자친구 입에서 침 흘러내리는 소리렸다! 그 소릴 아가씨 친구들이 들으면 "이거 미스터 매너가 아니라 미스터 진상인데?"라고 하겠구나!

오늘은 미스터 도올이라고 하는 양반께서, 썬양에게 해주실 말씀이 있다는구나! 썬양은 잘 듣고, 좋은 가르침을 얻도록! 에헤라디얏~ 오오오~! %&뚄@**ㅉ@#(접신중)#%2%^^$%ㅉ! 휘뚜루!

아가씨, 잘 오신 거예요. 잘 온 거야! 내가 그 방면에 전문이잖아. 내 별명 중에 음탕도올 뭐 이런 식의 별명이 몇 있어. 그리고 한창 때 침도 좀 흘리고 다리도 좀 떨었잖아 내가. 난 웃음도 으흐흐 - 막 이렇게 웃어! 그러니 그 남자친구 속내를 누구보다 잘 알아요 내가.

"너와 단 둘이 여행가고 싶어" 이 만큼 많은 의미를 함축하고 있는 말도 드물다 이거야. 여러 의미 가운데 공공연히 드러낼 수 있는 것으로는 "너와 같이 있고 싶고 많은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쓰읍)"라는 의미가 있단 말이지. 그런데 이건 정말이지 솔직하지 못한 말인 거라. 원하는 것이 열이라고 한다면, 저런 식의 표현은 그 중 아홉은 숨기고 있는 것이지.

그럼 숨기고 있는 나머지 아홉의 정체가 뭐냐?! "함께 밤을 지새고 싶어(추릅)", "너를 안고 싶어(질질)", "갖고 싶다(젤젤)", "이쯤에서 우리 해줘야 한단 말이지(콸콸)" 뭐 이런 식인 거라! 군자가 볼 때 이런 말을 하는 존재들은 무엇이냐, 바로 소인배! 또 무위를 추구하는 노장사상의 입장에서 본다면, 이렇게 의도와 목적을 감추고 빙빙 돌려 말하는 것이 곧 위선이고 미망이라 이거야.

여행가자는 말 속에 숨은 의도 간파해야

나도 남자이지마는, 남자, 우리는 누구인가? 남자란 무엇이냐?! 남자란 동물이다 이거야. 동물은 뭐냐? 짐승, 금수라 이거야! 금수는 뭐냐? 먹고, 자고, 싸고, 하고의 본능에 충실한 존재라 이거야. 여기서 본능에 충실한 그 자체는 잘못이 아니다 말이지. 그건 그야말로 무위이고 자연스러운 거다 이거야. 그럼 뭐가 문제냐? 본능에 충실한 뒤 그 결과에 책임지지 않는 것, 책임질 수 없는 짓을 하는 것이 문제라 이거야.

남자를 늑대에 비유하는 것은 반은 맞고 반은 틀린 말인데, 이유인즉 저 자연상태에서 늑대는 본능에 충실하다 이거야. 그러니 이 점에 있어서 남자를 늑대라 일컫는 것은 대단히 합당한 말이라 이거야. 그런데 그러면서도 늑대라고 하는 짐승은 실은 일부일처의 동물이고, 암컷이 새끼를 낳으면 수컷이 암컷을 위해 먹이를 운반한다 말이지. 그러니 사실 늑대라고 하는 짐승은 자신의 행동과 그 결과에 책임을 지는, 책임질 줄 아는 동물이라 이 말이야.

인간이라고 다 인간이 아니라 이거야. 늑대, 짐승, 금수만 못한 소인배들이 있다 이거야. 그러니 조심해야 한다 이말이라. 그런즉 썬양의 말에 이미 답이 다 나와 있다 이거야. 서로 아직 잘 알지도 못하는데, 만난 지 한달 만에 여행, 아 - 아주 위험하다 이거야. 이런 것은 서로 몇 년을 사귀고, 애정이 깊고, 정말 믿을 수 있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조심해야 하는 거라 이거야. 정말 책임있는 행동이 뭐냐?! 진짜 매너가 뭐냐?! 소중히 아껴주고 지켜주는 것이라 이거야!

방을 두 개를 잡는다? 아가씨가 알아서 선을 긋는다? 그 말인즉 범퍼카 타면서 접촉사고 없는 안전운전을 하겠다는 것인데. 여행 가자는 말에 아가씨가 OK하는 순간 그는 썬양이 자신을 대자대비의 마음으로 품어주려는 것이라 넘겨짚고는, 콘돔을 몇 개쯤 준비할까 떠올릴 거라 이거야! 아니면 콘돔 살 생각도 않고 그냥 단지 침만 흘리는 수도 있고!

그러니 방 두 개니 여행지에서 선을 긋니 하는 건 소용없다 이거야. 안 봐도 비디오야. 밤에 와인 들고 와서, 한잔 하자며 방문 두드린단 말이지. 그럼 그보다 네 살 연하의 아가씨 썬양은 마음은 약해갖고 그냥 돌려보내기도 미안하고, 여행지가 갖는 그 어떤 무드에 취해 선선히 문을 열어줄 것이고, 그렇게 되면 서울 함락은 시간 문제! 라 이거야! 아울!

웃어 넘기거나, "안될 것 같은데"라는 식으로 얼버무리지 말고, 또 뭐 "부모님이 안된다 하셔"하는 식의 핑계도 대지 말고 그냥 솔직하게 안된다고 가기 싫다고, 확실하게 진지하게 말 해줘야 한다는 거라! 그리고 말 할 때 미안한 기색을 보이지 말고, 미안해 하지도 말며, 미안하다는 말도 하지 말아야 한다 이 말이야. 미안해 할 일도 아닐뿐더러, 마음 약하게 흔들리고 미안해하는 듯한 인상을 보이며 자꾸 들러붙는 수가 있다 이거야.

"나 못 믿느냐"고 묻는 남자, 자신도 못 믿어

그런다고 삐치고 그만 만나자고, 너 보기가 역겨워 가시겠다 한다면, 알았다고 가시라고. 연변에 약산 진달래꽃 아름따다 가실 길에 뿌려드리라고. 그럴 정도의 소인배라면 빨리 끝내는 것이 낫다 이 말이지. 또, 나 못 믿느냐 뭐 이딴 소리 하면 막 비웃어줘야 한다 이거야. 그런 말을 하는 놈들은 자기 스스로도 자신을 못 믿는다 이거야!

여행을 가지 않겠다, 가기 싫다고 말했을 때, 그가 알았다고 순순히 수긍하면, 그때야 말로 대자대비의 마음으로 준비해 간(준비해 가시라고요) 테마파크 자유이용권을 짠!하고 꺼내보이라 이거야 내 말이. 녀석이 소인배가 아니라 정신이 제대로 박힌, 좀 된 놈이라고 한다면 그쯤되면 흐르던 침을 닦고, 정신을 차리고는, 찬찬히 그리고 소중히 여기며, 아껴주고 지켜주며 가야겠다 생각하겠지.

아가씨도 알겠지마는 썬양의 몸과 인생은 다른 누가 지켜줄 수 있는 게 아니야. 아가씨 자신이 지켜야지. 그러니 앞으로도 그렇게 주욱 - 지혜롭게, 스스로를 소중히 여기며 지켜가기를 바란다 이거야!

태그:#도올, #도토리, #연애, #여행, #남자친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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