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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정치는 정당정치며, 정당정치는 책임정치라고 한다. 따라서 우리 헌법 제8조는 정당설립의 자유를 인정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정당은 그 목적, 조직과 활동이 민주적이어야 하며, 국민의 정치적 의사형성에 참여하는 데 필요한 조직을 가져야 한다”고 하고 있다.

그러나 엊그제 치러진 한나라당의 대통령후보자 경선결과를 보며 과연 얼마나 민주적인 방식으로 후보자를 결정했는지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23만 명의 선거인단 중 투표장에 가서 직접 투표하게 되는 선거인수가 18만5080명이었고, 이 중 12만7858명이 투표에 참여한 결과 박근혜 후보가 이명박 후보를 432표 차로 이겼다고 한다.

그런데 6000명의 일반국민 여론조사 표본 중 5490명이 응답한 결과를 전체 선거인단의 20% 비율로 환산한 결과, 이명박 후보가 박근혜 후보를 2452표 차로 이겨 한나라당의 대통령 후보가 되었다는 것이다.

물론 이 문제는 한나라당 내부 문제이기 때문에 이를 두고 한나라당의 잘잘못을 말할 근거는 없다. 다만 앞으로 계속될 여권의 대선후보자 결정과정은 물론, 각종 공직선거 후보자 결정방식에서 일반국민여론조사 반영비율을 어떻게 적용할 것인가에 따라 후보자의 당락이 결정된다면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기 때문에 이의 심각성을 지적하고자 한다.

정당은 그 목적과 활동, 정강과 정책에 동의하는 사람들이 정권을 획득할 목적으로 모인 집단이다. 따라서 정당은 그 목적과 활동, 정강과 정책에 동의할 당원을 모집하고, 그 당원들로 하여금 일반 국민들을 설득하고 의식화함으로써 세력을 확장하고 정권을 장악한다. 그렇기 때문에 당에서 훈련된 당원들이 정권의 중심에 서고 그들을 공직에 임명한 대통령이 책임을 지는 것은 정당정치의 본질이다.

그런데 정당의 조직과 활동에 참여한 일이 없고, 정강과 정책으로 훈련된 사람이 아닌 자가 정당의 의사결정에 결정적인 영향을 끼친다면 어떻게 되겠는가? 만약 그렇다면 정당은 더 이상 존립한 근거가 없다.

이번 한나라당의 대통령 후보 결정 방식에서 보듯 일반국민의 여론조사 결과가 후보자의 당락을 결정할 수 있다면 정당은 더 이상 많은 예산과 인력으로 조직기구를 구성할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우연히 걸려온 전화를 받고 응답한 사람의 표가 당원과 대의원으로 수년 또는 수십 년간 고생고생 하여 행사한 한 표보다 훨씬 더 위력을 발휘한다면 과연 이것이 민주적일 수 있겠는가?

그 전화를 받은 사람은 해당 정당을 극도로 싫어하는 사람일 수도 있고, 정당이 무엇인지, 정당의 대통령후보자경선이 무엇인지, 해당 정당의 대통령후보자가 누구인지도 모르는 사람이 있을 수 있다.

지역별, 연령별, 성별에 의한 유의표본추출로 6000명의 표본이 정해졌다할지라도 응답을 거부하는 사람이 있을 경우 표본의 대표성을 보장할 수 없기 때문이다.

당원이 아닌 국민선거인단이 30%를 점유하는 상태에서 또다시 일반국민여론조사를 한다는 것은 경선흥행에는 도움이 될 수 있을지언정 정당의 민주적 의사결정과는 무관하다.

더구나 이번 경선에서 대부분의 여론조사기관은 이론 없이 이명박 후보의 당선을 예측했다. 그러나 이것은 정확히 들어맞지 않았다. 왜 그런가? 여론조사기관들은 선거인단 중 직접 투표에 참여하는 자들만을 조사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실제 결과는 어떠했는가? 박근혜 후보가 이명박 후보를 432표 이기지 않았는가?

따라서 이번 한나라당에 적용했던 일반국민여론조사결과에 의한 후보자 결정은 완전히 일치할 수 없는 여론조사의 결과로 당의 중대한 의사를 결정해버린 우를 범한 셈이다.

물론 여론조사는 그 필요성과 목적에 따라서 효용가치가 충분히 있다. 그러나 오차범위를 맴도는 지지도는 표본추출의 방식, 표본의 크기, 표본의 구성인자, 설문의 내용 등에 따라 전혀 다른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당의 가장 중대한 의사결정이라고 할 수 있는 대통령 후보자 선출을 일반국민여론조사로 결정했다는 것은 정당정치의 본질을 외면한 것이며, 헌법정신을 정면으로 위배한 것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정당은 그들의 정강과 정책, 이념에 대한 국민적 심판을 통해서 생존하고 사멸해야 한다. 정당은 임시 용역회사가 아니고 노점의 좌판이 아니다. 정당은 국민에게 믿음을 주어야 하고, 영속성과 지속성이 있어야 한다.

만약 정당의 의사를 결정하는 데 있어 당원과 대의원의 의사보다 일반국민의 의사를 우선시 한다면 정당은 시도지부를 비롯한 중앙당의 기본조직을 둘 필요가 없다. 신문 공고를 통해서 후보자 선출에 관한 여론조사 기관을 선정하면 되고 정강과 정책, 정당의 기본활동도 외주용역으로 해결하면 되기 때문이다.

이번 일은 단순히 한나라당의 문제로만 끝나는 것이 아니다. 얼마 뒤 있게 될 통합민주신당을 비롯한 다른 정당의 대통령후보자 결정에도 중요한 시사점이 될 것이다. 정당의 관계자들은 정당정치의 본질을 충분히 헤아려 신중히 검토해주길 바란다.

태그:#대통령후보자, #이명박, #박근혜, #여론조사, #표의 등가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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