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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한가위, 차례는 일찍 모셨지만 며칠이라도 혼자 계실 아버님께서 점심이라도 드시는 것을 보고 올라갈 생각을 하니, 시집와서 구경만 했지 한 번도 해 보지 못한 전라도 윷놀이를 할 여유가 생겼다. 어머님께서 돌아가셨을 때 동네 분들이 밤샘하느라고 노는 윷놀이를 처음 본 나는 내심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전라도 윷
▲ 전라도 윷 전라도 윷
ⓒ 김옥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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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본 윷 중에서는 가장 작은 윷이었으며 노는 모습 또한 상상도 못했던 모습들이었다. 조그만 간장 종지에 윷을 담아서 던지는데, 멍석이 크면 윷이 어느 구석에 떨어졌는지도 모를 만큼 작은데다가 윷을 담은 간장 종지를 손으로 쥐고 흔들 때는 손바닥 속에 동전을 넣고 흔들어서 동전 따먹기를 하는 것처럼 보이는 것이 우습기도 하고 귀엽기도 했다.

내가 뒷설거지를 하는 동안 남편이 밖에서 윷을 만들어 와서 보여 준다. 볼 때마다 드는 생각이지만 윷이라는 것이 얼마나 작은지 꼭 아기들 장난감 윷같이 생겼다.

"이게 뭐예요?"
"귀엽다."
"에게, 진짜 작다."


윷놀이 전용 멍석
▲ 윷판 윷놀이 전용 멍석
ⓒ 김옥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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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께서 윷 만들어 오겠다는 말을 했건만 아이들은 '설마 이것이 윷일 줄이야' 했던 모양인지 제각기 한마디씩하며 윷을 만져보고 던져보고 야단들이다.

마당에다 멍석을 깔았다. 흙 마당이었으면 더 좋을 뻔했지만 그런대로 운치도 있고 옛날 추억도 솔솔 떠오르는 것이 올해야말로 명절 기분 제대로 한 번 내보리라 다짐을 하는데 아버님 목소리가 들려온다.

“어여어여 준비해서 차 막히기 전에 올라갈 생각들 혀.”
“네, 한 판만 놀고요.”
“윷이라는 거이 한 판으로 끝나는 거이 아니여. 내일 하루 푹 쉬고 아그들도 출근혀야제.  싸게싸게 떠나.”

아버님의 성화에 점심을 먹고 윷놀이의 미련을 가슴에 안은 채 ‘내년 설에는 꼭 해 봐야지’하고 벼르며 서울을 향해 시골집에서 출발하기 전에 시계를 봤다. 핸드폰으로 본 시계는 추석 당일인 2007년 9월 25일 화요일 오후 3시 30분이었다.

차에 기름이 절반가량 남았지만 혹시라도 막힐 때를 대비해서 기름도 가득 채웠다. 아이들과 함께 미처 하지 못한 윷놀이 이야기를 하며 장성 인터체인지 방향으로 차를 돌렸다. 그런데 남편이 고속도로를 보더니 백양사 쪽으로 차를 돌렸으면 하는 마음을 내비쳤다. "그래도 고속도로가 났지"라며 장성 인터체인지를 빠져나오는 순간까지도 앞으로 펼쳐질 험난한 귀경길을 상상도 하지 못했었다.

우리 네식구는 서울까지 걸리는 시간을 근심 반, 농담 반을 섞어가며 점치기 시작했는데 모두의 마음은 '늦어도 오늘 안으로는 집에 들어가겠지'로 모였다. 귀경길은 '천안 논산간 민자 고속도로'를 거치기로 정했다.

그런데 웬걸, 평소 같았으면 한 시간이면 충분한 정읍 휴게소에 도착한 시간이 오후 6시였다. 저녁을 먹고 화장실을 다녀와서 6시 40분에 출발했다. 운전은 남편과 내가 휴게소에 도착할 때마다 번갈아가며 하기로 했다.

다음에 쉴 휴게소를 여산으로 정해 놓고 출발을 했는데 고속도로를 꽉 메운 차들은 그야말로 거북이걸음이었고, 나는 우리 식구들에게 물도 마시지 말 것을 당부했다. 남자들은 소변 정도는 적당히 해결할 수 있지만 여자들이 문제였던 것이다.

여산 휴게소에서 본 보름달
▲ 여산 달 여산 휴게소에서 본 보름달
ⓒ 김옥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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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슬 지치기 시작했다. 집에 도착할 시간으로 점친 시간에 여산휴게소에 도착했다. 시간은 밤 11시 58분이었다. 보름달이 휘영청 밝았지만 감상할 겨를이 없었다. 아이들이 화장실을 간 사이에 달 사진 한 장 찍고 주위를 둘러보니 많은 사람들이 자고 있었다. 휴게소 입구부터 주차한 차량들은 휴게소를 거쳐 휴게소 출구 끝이 어딘지 모를 정도로 늘어서 잠들어 있었다.

풍세 톨게이트를 나오자마자 꼼짝도 않고 서 있는 자동차들1
▲ 차량숲 풍세 톨게이트를 나오자마자 꼼짝도 않고 서 있는 자동차들1
ⓒ 김옥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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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로부터 '풍세 톨게이트'까지 걸린 시간이 무려 5시간 30분, 하룻밤을 길 위에서 보내고 다음날 새벽 동이 트기 시작했다. 풍세에 도착한 시간이 26일 새벽 5시 30분이었다.

식구들의 온몸은 피로에 찌들어 무거워서 젖은 솜 같았고 다른 사람들의 표정들도 즐거운 명절을 맞아 꿈에도 그리던 부모형제와 친척들을 만나고 오는 즐겁고 기쁜 표정은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었다.

엎친 데 덮친다고 풍세 톨게이트에서는 아예 시동을 꺼버린 차들이 많았다. 우리도 차의 시동을 껐다. 출발할 때 가득 채운 차의 기름이 달랑달랑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 와중에서도 용케 갓길을 달리는 차가 많았으며, 끼어들기를 하다가 정차한 차들의 모양은 가지가지였다.

모두가 지치고 힘들어 보였으며 거기에 한 술 더 떠서 길게 늘어선 화장실 앞에서는 작은 다툼마저 일어나고 있었다. 용변이 급한 아기를 데리고 엄마가 유아용 화장실이 있나 살펴보려고 사람들을 헤치고 들어갔는데 다른 사람들이 오해를 해서 작은 다툼이 일기도 했다.

깜깜한 길을 달리는 차에서 본 앞차들의 미등과 가로등불빛
▲ 미등 깜깜한 길을 달리는 차에서 본 앞차들의 미등과 가로등불빛
ⓒ 김옥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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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한 번은 고속도로 휴게실이 한가한 틈을 타서 일삼아 남자 화장실과 여자 화장실을 비교해 본 적이 있었는데, 남자 화장실과 여자 화장실의 숫자의 차이가 별로 없는 것 같았다. 오히려 남자화장실은 소변기가 따로 있어서 훨씬 많은 수의 용변기가 있는 셈이었다.

한 번 용변을 볼 때 여자들은 남자들에 비해 훨씬 의복이 번거롭다. 멋을 내는 사람들은 아래위가 붙은 속옷을 입는 관계로 시간이 많이 걸리고 소변을 보든 대변을 보든 옷을 내리는 데 걸리는 시간은 매 마찬가지다. 아이들 또한 남자아이든 여자아이든 유치원을 가기 전까지는 거의 엄마가 데리고 화장실을 간다. 그렇다면 여자 화장실의 수가 더 많아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공중 화장실을 갈 때마다 해 본다.

그런저런 광경을 보고 걷기도 하고 스트레칭도 하며 풍세 톨게이트에서 100미터가량 가는 데 걸린 시간이 3시간 15분이다. 아침을 먹으려고 싸 가지고 온 송편을 열어 보니 쉬어 버렸다. 물도 떨어졌다. 풍세, 그곳에는 먹을 것도 마실 것도 없었다.

천안 삼거리 휴게소에 닿았다. 화장실을 다녀오고 아침 식사로 토스트를 사고 차에 기름을 넣었다. 허투루 쓴 시간 없이 부랴부랴 천안 삼거리 휴게소를 떠났다. 안성 휴게소가 보였으나 차가 조금 속도를 내는 것 같아서 화장실도 가지 않고 그냥 지나쳤다. 서울이 가까워지니 차들이 제 속도를 내고 있었고 마음도 어느 정도 가라앉았다.

집에 도착했다. 시간을 보니 2007년 9월 26일 수요일 오후 1시 37분이었다. 우리 가족의 소중한 한가위는 이렇게 특별하게 무려 22시간에 걸친 귀경 퍼레이드와 함께 마무리 되었다

이제 명절 때마다 악 순환되는 귀성 귀경길의 지옥에서 벗어나기 위한 궁리를 해 봐야겠다. 대한민국 국민들이 웃으며 맞이하는 우리 고유의 최대 명절 한가위 잘 보내는 방법을.

덧붙이는 글 | <우리 가족의 특별한 추석 풍경> 응모글



태그:#2007한가위, #귀성길, #전라도의 윷, #그 곳에는 먹을 것도 마실 것도 없었다, #고속도로 휴게소의 화장실 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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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에는 시원한 청량제, 겨울에는 따뜻한 화로가 되는 글을 쓰고 싶습니다. 쓴 책 : 김경내 산문집<덧칠하지 말자> 김경내 동시집<난리 날 만하더라고> 김경내 단편 동화집<별이 된 까치밥> e-mail : ok_0926@daum.net 글을 써야 숨을 쉬는 글쟁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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