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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반곡리' 마을의 추석나기 휘영청 밝은 보름달이 뜬 고향에서 선후배, 친구들과 어쩌면 마지막이 될 지 모를 추석을 보냈습니다. 동년배들끼리만 놀던 지난해와는 달리 올해는 떠나간 사람들을 뒤로하고 선후배가 한 자리에 모여 족구대회를 가지며 아쉬움을 달랬고, 아버지의 쉰 여덟번째 생신파티를 하며 행복한 시간도 가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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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한가위만 같아라'

추석이면 항상 이 말을 하곤 한다. 들녘에서는 곡식들이 익어가고 밤, 감, 대추 등 과일하며 배추, 무우 등과 채소 같은 것들이 결실을 맺는 계절이기에 먹을 것이 일년 중에 가장 풍성한 시기가 바로 추석 무렵이다.

누렇게 익어가는 벼들이 고향의 들녘을 황금빛으로 물들이고 있습니다. 내년에도 황금들녘을 볼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 고향의 들녘 누렇게 익어가는 벼들이 고향의 들녘을 황금빛으로 물들이고 있습니다. 내년에도 황금들녘을 볼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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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하여 오늘날처럼 먹을 것이 풍족하지 못했던 조상들은 예로부터 추석 때만 되면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한가위만 같아라”라고 입버릇처럼 말하곤 했다. 특히, 이번 추석동안 우리 동네에서는 정말로 이 말이 딱 들어맞았다.

예전에는 시사문제로, 이번에는 이사문제로

“더도 말고 덜도 말고 오늘만 같아라.”

먹을 것이 풍족한 계절이라서 그런 것도 아니고 수확철이라서 그런 것도 아니었다. 올해만 지나면 아니 이번 추석만 지나면 또 몇 집이 고향을 떠날지 모르기 때문이다. 그래서 고향을 찾은 친구들은 하나같이 “지금처럼 모여서 살면 좋을 텐데...” 하면서 고향이 사라지는 것에 대한 그리움과 함께 술잔을 기울인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분위기가 이렇지는 않았다. 이번에도 ‘신정아 사건’이라든가 ‘대통령선거’라든가 하는 시사 거리를 안주삼아 술잔을 기울였을 법한데 분위기는 전혀 달랐다. 물론 마을에 남아있는 친구들도 몇 안되지만 이번 추석연휴 동안의 화제거리는 단연 ‘이사’문제였다.

“너는 어디로 가서 살 지 결정했냐?”
“아직... 아부지가 어디로 가실 지 결정을 못하시고 계셔서.”
“그려? 언제 나가라고 할 지 모르는데 얼렁 정해서 이사가야지.”
“그렇긴한디 우리야 타지 생활 오래해서 그렇다쳐도 평생을 여기서 살아오신 양반들이 어디 그렇게 쉽게 떠날 수가 있겄냐?”
“허긴 그건 그려. 그래두 어차피 나갈 거믄 빨리 자리잡는 게 나을 거인디.”
“그래서 나두 걱정이 태산이다. 어떻게 해야 할지.”


친구와 나눈 대화다. 예전에는 이런 말을 하면서 쓴 술을 마시지는 않았었다. 지난해 추석부터 친구들 사이에서는 또래에서 하는 일상적인 대화보다 이런 대화들이 주류를 이루고 있었고, 지난해 이런 대화를 나누던 한 친구는 이미 고향을 떠나 타지에 자리를 잡은 터였다. 그래서 이번 추석에는 이런 얘기를 더 많이 나누게 된 건지도 모른다.

이러한 대화는 비단 우리 또래의 친구들뿐만 아니라 행정중심복합도시(일명 ‘세종시’) 예정지의 노른자 부분에 속해 있는 우리 마을 사람들은 나이 고하를 막론하고 대부분이 이러한 얘기를 안주삼아 술을 마시며 쓸쓸한 추석명절을 보냈다.

마을에서 마지막이 될 지도 모를 단합대회와 아버지 생신파티

그나마 위안이 되었던 것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마을에 있는 후배들이며, 선배들이며 한 자리에 모여 같이 족구도 하면서 단합대회를 한 점이다.

그동안은 같은 나이 또래의 친구들이 많이 있어 동년배들끼리만 뭉쳐서 놀곤 했었는데, 이번 추석에는 이미 많은 가구가 마을에서 빠져나간 터라 선후배들이 모두가 함께 모여 운동을 즐기고 술 한잔씩 걸치며 동심으로 돌아가 이런 저런 추억의 얘기를 나누었다. 친구들과 후배들과 선배들과 함께 하는 마지막이 될지도 모를 추석 연휴는 그렇게 지나가고 있었다.

아버지의 쉰 여덟번째 생신파티를 연휴 마지막날 열었습니다. 가족과 함께 한 행복한 시간이었습니다. 아버지! 오래오래 건강하게 사세요.
▲ 아버지의 생신파티 아버지의 쉰 여덟번째 생신파티를 연휴 마지막날 열었습니다. 가족과 함께 한 행복한 시간이었습니다. 아버지! 오래오래 건강하게 사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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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 연휴 마지막 날이었던 26일에는 동생 가족들과 함께 아버지의 쉰 여덟번째 생신파티를 했다. 따뜻한 미역국을 끓여 먹고 난 뒤 준비한 작은 케이크에 불을 붙여 다같이 노래를 부르고 아버지와 세살 난 어린 조카가 함께 힘차게 촛불을 껐다. 비록 집에서 마련한 조촐한 생신파티였지만 가족이 함께 한 행복한 시간이었다.

우리 가족도 아직까지는 어느 곳으로 이사를 가야할지 정하지 못한 상태여서 올해가 마지막이 될지 아니면 내년에도 지금의 고향마을에서 명절을 쇨 수 있을지 미지수다.

이제 5일간의 기나긴 연휴가 지나고 다시 일상으로 되돌아가야 한다. 물론 후유증도 많이 있겠지만 나름대로 자기만의 후유증 극복 방법을 총동원하여 하루빨리 일상에서의 리듬을 찾는 게 중요할 것이다.

수백마리의 청둥오리떼(붉은 원안)가 마을앞 냇가에 앉아 있다가 소리를 지르자 한꺼번에 떼를 지어 날아올랐습니다. 동영상으로 찍었어야 하는데 아쉽습니다.
▲ 마을에 날아든 청둥오리떼 수백마리의 청둥오리떼(붉은 원안)가 마을앞 냇가에 앉아 있다가 소리를 지르자 한꺼번에 떼를 지어 날아올랐습니다. 동영상으로 찍었어야 하는데 아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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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지금 일상으로의 복귀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지금의 반곡리라는 마을에서 마지막이 될지도 모를 이번 추석의 추억을 마음속에 간직할 것이다. 내가 이곳에서 지냈던 지난 30여년간의 기억과 함께...

덧붙이는 글 | <우리 가족의 특별한 추석 풍경> 응모글



태그:#추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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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안의 지역신문인 태안신문 기자입니다. 소외된 이웃들을 위한 밝은 빛이 되고자 펜을 들었습니다. 행동하는 양심이 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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