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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위벼랑에 핀 해국이 가을 햇살에 곱다
▲ 해국 바위벼랑에 핀 해국이 가을 햇살에 곱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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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가을이 와 해수욕장에는 빈 의자만이 바다를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다.
▲ 선유도의 해수욕장 가을이 와 해수욕장에는 빈 의자만이 바다를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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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단한 아침 식사 후 자전거를 타고 나선다. 군산에서 뱃길로 약 50km, 작은 배가 군산항에서 1시간 15분 걸려 도착한 선유도는 고군산군도의 중심인 섬이다. 선유도에서 고만고만하게 늘어서 있는 장자도, 무녀도가지 돌아보는 것이 오늘 자전거 여행의 코스다.

약간 가파른 길을 힘껏 페달을 밟다가 지쳐 내려서 자전거를 끌며 오른다. 갈대와 은마타리가 바다를 배경으로 흔들리고 있다. 아침 햇살은 그 꽃과 바다에서 반짝반짝 빛난다.  바다에 닿아있는 좁은 산길이다. 오가는 사람도 차도 없어 한적하기 그지없다.

선유도는 외지 차가 들어갈 수 없는 곳이다. 그저 섬 안 사람들의 차들이 몇 대 오고가고, 오토바이를 개조하여 사람을 태우는 택시와 전기 카트가 운송수단의 전부다. 자전거로 섬을 휘돌아보기에는 더 없이 좋은 길이 선유도에 놓여있는 셈이다.

선유도의 망주봉. 바다와 어울린 바위산이 신비롭다.
▲ 망주봉 선유도의 망주봉. 바다와 어울린 바위산이 신비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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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거를 세우고 바라본 바다. 은마타리꽃이 바다와 얼굴을 맞대고 있다.
▲ 은마타리와 바다 자전거를 세우고 바라본 바다. 은마타리꽃이 바다와 얼굴을 맞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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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리막길에서 일부러 브레이크를 잡지 않고 달려본다. 자전거는 내 온 몸에 바람이란 바람을 다 불어넣을 듯이 신이 나게 달린다. 망주봉을 끼고 마을을 한 바퀴 돈다. 마을 앞으로 갈대숲이 지천이다. 그 갈대에도 가을이 찾아와 있다.

길은 섬 곳곳으로 뻗어 있다. 때로는 바다를 끼고 돈다. 옆구리에 파도가 찰싹이는 것 같다. 때로는 늪지의 갈대숲을 지나기도 한다. 분 바른 아낙네가 활짝 웃는 것 같다. 때로는 나무들이 우거진 산길을 오르기도 한다. 세상 아닌 먼 숲에 와 있는 것 같다. 선유도 자전거 여행은 그래서 마음을 이리저리 흔들어 놓는다. 그러나 흔들리는 마음은 금세 잔잔해 진다. 그만큼 풍경이 사람을 누르지 않고 사람과 어울리기 때문일 것이다.

물 빠진 갯벌에 나가 조개를 줍는 사람들을 힐끗힐끗 바라보며 장자도 가는 다리를 넘는다. 다리 중간에 자전거를 멈추고 아래를 내려다보니, 배 몇 척이 그림처럼 떠 있다. 낚시 하는 사람들을 태운 배다. 다리 난간 아래쪽으로 물고기들이 오글오글 모여 있다. 물이 맑아 물고기들 노는 모습이 다 내려다보인다.

달리다 바닷가에 멈춰서다. 바닷바람이 온 몸에 소금기를 뿌려준다.
▲ 바닷가의 자전거 달리다 바닷가에 멈춰서다. 바닷바람이 온 몸에 소금기를 뿌려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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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자전거를 달려 장자도를 둘러본다. 작은 마을들이 올망졸망 모여 있고, 마을 마당까지 닿을 듯 바다가 휘어져 있다. 섬 곳곳은 공사중이다. 집을 단장하고, 손님을 받아 삶을 꾸려가야 하는 일상의 곤고함이 이 섬에도 밀려들고 있는 것 같다. 이제 사람들이 아름다운 풍경을 찾아 장자도에 몰려올 것이다. 그리고 그 사람들로 장자도의 느긋한 풍경들은 자취를 감출 것이다.

장자도를 나와 다시 선유도를 거쳐 무녀도로 향한다. '무녀도에 있는 마을 이름이 뭔지 알아? 김동리야.' 그런 실없는 농담을 해 가며 지친 숨결을 달랜다. 벌써 한 낮이 훌쩍 지나고 있다.

두 섬을 연결하는 다리를 건너자 내리막길이다. 모감주나무 군락지를 지나 마을로 들어서자 섬 끝에서 사는 사람들의 일상이 펼쳐진다. 잔디가 잘 깔린 초등학교에서 아이들이 공을 차고 있다. 섬에서 평생 아이들의 웃음소리를 들으며 교단에 서고 싶다는 꿈을 꾼 적이 있었다. 나는 지나간 꿈을 환영처럼 아이들의 웃음소리 속에서 찾는다.

선유도에서 장자도 가는 곳의 바닷가 풍경
▲ 포구 선유도에서 장자도 가는 곳의 바닷가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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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 끝 항구에서는 낚싯배들이 사람들을 태우고 바다로 떠난다. 나는 한동안 자전거를 멈춘 채 떠나는 배를 바라본다. 세상의 모든 삶이 결국은 어디론가 떠나는 것인지도 모른다. 때로는 떠났다 돌아오기도 하고, 떠난 뒤 영영 돌아오지 못하기도 하는 그것이 삶이리라. 괜히 마음이 애잔해 져서 나는 자전거를 바닷가에 세우고 사진 한 장을 찍는다. 그 때 어쩌면 나는 저 자전거를 타고 그대로 바다 위로 흘러가고 싶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무녀도에서 바라본 작은 섬. 섬 안에는 또 섬이 있다. 그 섬으로 건너가고 싶다.
▲ 섬에서 바라본 섬 무녀도에서 바라본 작은 섬. 섬 안에는 또 섬이 있다. 그 섬으로 건너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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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녀도 끝의 포구에 자전거를 멈추고
▲ 바닷가 자전거 무녀도 끝의 포구에 자전거를 멈추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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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 쪽으로 난 길을 따라 자전거를 몬다. 그런데 한참을 가니, 길이 끊겨 있다. 길 끝에는 그저 바다로 떨어지는 바위벼랑이 있을 뿐이다. 다리는 지치고, 온 몸에는 땀이다.

막 돌아서 나오는데, 길 위 바위 벼랑에 소복하니 꽃이 모여 있다. 해국이다. 그 모습이 더할 나위 없이 곱다. 저렇게 바위 벼랑에 매달려 피워낸 꽃이라서 더 곱고 청초한 것일까? 해국은 바닷바람에 제 몸을 한 없이 흔들고 있다. 흔들리고 떨면서 견뎌내야 하는 것이 생이라는 듯, 해국의 몸짓이 서글프다. 잠시 바람이 그치면 해국은 언제 그랬느냐는 듯 해맑게 웃는다.

갈대숲을 자전거가 달린다. 갈대꽃이 피어 가을이 깊어간다.
▲ 갈대숲길을 지나는 자전거 갈대숲을 자전거가 달린다. 갈대꽃이 피어 가을이 깊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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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오늘 하루의 자전거 여행은 마지막의 이 해국을 보기 위한 것이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그 순간, 문득 든다. 자전거를 돌려 해안 길을 돌아 나오는 내내, 아니 다시 언덕을 오르고, 갈대 숲지를 지나고, 다리를 건너는 숨찬 페달질 내내 내 마음 속에서 떠나지 않는다.

나이가 들수록 작은 것에 감탄하고 마음 기우는 것은 그만큼 생이 아쉽기 때문일 것이다. 바위 벼랑에 핀 한 송이 해국처럼 여리고 순하게 살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다면, 선유도에서의 자전거 여행은 충분히 흐뭇한 일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나는 다시 군산항으로 나오는 내내 되풀이하곤 했다. 가을이 깊고, 가을 햇살처럼 바다도 여무는데, 내 눈 앞에는 벼랑 끝에서 가늘게 떨던 해국의 몸짓이 영 잊혀지지 않는 것 같다.

무녀도 끝 바위벼랑에 해국이 피어있다. 바닷바람을 온 몸으로 맞으며 곱게 핀 해국의 짜디짠 의지와 고운 자태가 마음을 잔잔하게 만든다.
▲ 해국 무녀도 끝 바위벼랑에 해국이 피어있다. 바닷바람을 온 몸으로 맞으며 곱게 핀 해국의 짜디짠 의지와 고운 자태가 마음을 잔잔하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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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이 글을 비롯한 저의 다른 글들은 제가 운영하는 카페 http://cafe.naver.com/borisogol.cafe 에서도 보실 수 있습니다.



태그:#선유도, #자전거, #해국, #장자도, #무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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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집 <장다리꽃같은 우리 아이들>, <작은 바람 하나로 시작된 우리 랑은>, <천년 전 같은 하루>, <꽃,꽃잎>, <물골, 그 집>, <람풍>등의 시집과 <비에 젖은 종이 비행기>, <꽃비> , <무지개 너머 1,230마일> 등의 소설, 여행기 <구름의 성, 운남>, <일생에 한 번은 몽골을 만나라> 등의 책을 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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