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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 정상이 만났다. 7년 만이다. 만나 남북관계 발전과 번영을 위한 평화선언을 했다. 7년 만에 만난 두 정상이 구로(劬勞)하여 만들어낸 선물이다. 평화선언 2항과 3항은 관심을 끌었다.

 

2. 남과 북은 사상과 제도의 차이를 초월하여 남북관계를 상호존중과 신뢰 관계로 확고히 전환시켜 나가기로 하였다.

 

3. 남과 북은 군사적 적대관계를 종식시키고 한반도에서 긴장완화와 평화를 보장하기 위해 긴밀히 협력하기로 하였다.

 

남과 북은 서로 적대시하지 않고 군사적 긴장을 완화하며 분쟁문제들을 대화와 협상을 통하여 해결하기로 하였다. - 2007년 남북정상선언

 

남북 정상이 만나 이제는 적대시 정책을 거두고 서로의 체제를 인정하면서 '한반도' 평화정착을 위하여 노력한다는 것은 우리 민족의 평화번영뿐만 아니라 동북아와 세계평화의 중요한 밑거름이 될 것이다. 하지만 우리가 이곳에 오기까지 우리는 적대시 정책을 통하여 서로를 증오했다. 일제강점기와 해방정국, 한국전쟁에 이르기까지 우리가 겪은 수많은 사건을 잘 알고 있다. 남북정상선언을 보면서 문득 떠오른 책이 있다. 조정래의 <태백산맥>이다.


한 사람이 땅에 태어나 살아갈 수 있는 시간은 평균적 기준으로 70∼80년이다. 하지만 평균적인 시간이 같다고 해도 삶의 자리와 정황은 달리한다. 삶의 정황과 목적이 매우 달라 사는 방법 역시 다르다.

 

<태백산맥>은 각자 다양한 사람들이 해방정국에서 그들의 사상과 이념의 잣대를 통하여 진정한 평등과 자유가 무엇인가를 두고 벌이는 치열한 다툼과 논쟁, 죽임의 난장까지 아우른다. 남한만의 단독정부, 제주4·3항쟁, 여순사건, 한국전쟁, 그리고 분단이 고착화된 1953년 10월까지.

 

<태백산맥>을 읽으면서 한 가지 생각한 것은 과연 내가 그 자리에 자리했다면 나는 어떤 선택을 했을까? 계급혁명을 꿈꾸다가 최후를 맞는 염상진, 전사 하대치, 중도적 민족주의자 김범우, 양심적 우익을 대표하는 서민영, 친일세력, 반공주의자를 대표하는 염상구. 염상구에게 강탈당하여 빨치산에 들어간 외서댁, 무당 소화, 그리고 손승호, 심재모, 최성학, 강경애, 전사 조원제….

 

계급혁명을 꿈꾸다가 좌절했던지, 혁명전사로 살다가 최후를 맞았든지, 친일분자와 반공주의자로 살다가 죽든지 그들은 나름대로 사상과 이념의 틀 안에서 치열하게 살았다. 자신들이 믿는 사상과 이념이 진실이라고 믿었다. 하지만 이것은 이념과 사상이 인간을 왜곡시켰다. 사람이 중심이 아니라 사상과 이념이 중심이었다. 사상이 사람의 지배할 때 그 사상은 다른 사상을 적대시하며, 결국은 살림이 아니라 죽임의 난장을 펼칠 수밖에 없다.

 

하지만 <태백산맥>은 빨치산의 삶을 통하여 사상과 이념이 중심에 자리 잡은 것이 아니라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세상을 일구기 위하여 치열한 투쟁을 그리고 있다. <태백산맥>은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세상을 꿈꾸는 이들의 숭고한 인간정신이 어떻게 꽃피우는 지를 말한다.

 

차가운 삭풍이 그들의 발을 얼어붙게 하고, 배고픔을 면할 수 없을 때에도 그들은 사람다움을 위하여 투쟁했다. 그들의 투쟁에는 숭고함이 배어난다. 일제에 순응하고 민족을 학대한 자들이 해방을 맞자마자 반공주의자가 되어 또 다른 민족과 사람에게 배반을 저지를 때에 그들은 사람을 배반하는 길이 아니라 사람을 살리는 숭고함이 무엇인지 보여준다.

 

염상진의 육신의 장막을 마지막으로 보내는 하대치와 그 동료들을 통하여 숭고함은 절정을 이룬다.

 

"그는 가슴을 펴며 숨을 들이켰다. 그와 함께 밤하늘이 그의 시야를 채웠다. 그는 문득 숨을 멈추었다. 그는 눈앞이 환하게 열리는 것을 느꼈다. 그가 본 것은 넓게 펼쳐진 광대한 어두움이 아니었다. 그가 본 것은 어둠 속에 수없이 빛나고 있는 별들이었다. 그는 멀고 깊은 어둠 저편에서 명멸하고 있는 수많은 별들을 우러러보았다. 가을 별들이라서 그 초롱초롱함과 맑은 반짝거림이 유난스러웠다. 그 살아서 숨쉬고 있는 별들이 가슴을 뭉클하게 했다. 그 별들이 모두 대원들의 얼굴로 보였던 것이다. 먼저 떠나간 대원들은 죽은 것이 아니었다. 그들은 모두 혁명의 별들이 되어 어둠 속에서 저리도 또렷또렷한 모습으로 빛나고 있었던 것이다." - <태백산맥> 10권 341쪽

 

과연 혁명은 실패했는가? 인간다운 세상을 꿈꾸는 혁명은 실패했는가? 육신의 장막이 흙속에 묻히면서 인간혁명은 실패했는가? 조정래는 그렇지 않다고 말하고 있다. 사람다운 세상을 꿈꾸던 인간혁명은 가을 하늘 별들처럼 초롱초롱하게 살아남았다. 아직도 미완이지만.

 

사람이 이런 세상을 꿈꾸면서 살아간다는 것은 그가 살아 있다는 증거다. 하대치는 염상진의 육신 장막을 땅에 묻었지만 가을 하늘 별을 염상진으로 승화시켰다. 그들의 혁명은 실패하지 않았다. 이유는 단 하나 그들이 꿈꾼 혁명은 사상과 이념인 사회주의 혁명이 아니라 인간혁명이었기에 더욱 그렇다.


태백산맥 세트 (반양장) - 전10권

조정래 지음, 해냄(2007)


태그:#태백산맥, #인간혁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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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태어날 때 당신은 울었고, 세상은 기뻐했다. 당신이 죽을 때 세상은 울고 당신은 기쁘게 눈감을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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