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올해 제4회 대한민국광고윤리대상에서 방송부문 대상을 차지한 삼성화재 안내견 광고 '아름다운 동행'. 왼쪽부터 유석종씨와 강토, 김형섭씨와 보리, 김예지씨와 창조.
 올해 제4회 대한민국광고윤리대상에서 방송부문 대상을 차지한 삼성화재 안내견 광고 '아름다운 동행'. 왼쪽부터 유석종씨와 강토, 김형섭씨와 보리, 김예지씨와 창조.
ⓒ 삼성안내견학교

관련사진보기



2002년 여름, 안내견과 함께 지하철을 타고 가던 시각장애인 청년이 TV 광고에 나왔던 것을 기억하는가? 당시 대학교 4학년이던 유석종씨와 안내견 강토가 그 주인공이다.

그 광고를 촬영한 것이 인연이 되었던 걸까? 유석종씨는 현재 삼성화재 안내견학교 직원으로 일하고 있다. 기초재활생에게 안내견 관련 설명회를 하기 위해 지난 9월 한 복지관을 찾은 유석종씨를 만나 보았다.

광고가 나가자 안내견학교 측에서 유씨에게 졸업 후 함께 일해 보지 않겠느냐고 제안했다고 한다. 시각장애인은 물론 비장애인들에게 안내견에 대해 홍보할 사람이 필요했던 터에 안내견 사용자이자 대학교 졸업반인 유씨가 제격이라 생각한 모양이었다고.

시각장애인은 안마만? 다른 일도 한다

안내견을 다룬 드라마 <내 사랑 토람이>
 안내견을 다룬 드라마 <내 사랑 토람이>
ⓒ SBS

관련사진보기


당시 유석종씨는 특수교육학과 사학을 복수전공하고 교사가 되기 위해 준비하고 있었다. 임용고시 1차에 합격한 후 그는 어떤 길을 선택할지 고민했다. 그 때 그가 안내견학교를 선택한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안내견학교에서 일할 기회를 만나는 것이 쉽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다. 다른 시각장애인들이 하지 않는 직업을 갖게 된다는 것도 매력적이었다."

시각장애인들이 주로 갖게 되는 직업은 안마사나 특수교육 교사 정도.

비슷한 직업을 가진 사람들끼리는 비슷한 시각을 갖게 되는 경향이 있다. 반면 다른 직업을 갖고 비장애인들과 함께 일하다 보니 시각장애인에 대해 객관적으로 볼 수 있게 된 것 같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그가 안내견학교에서 담당하고 있는 업무는 안내견에 관심을 갖고 있는 시각장애인 상담과 안내견학교 방문자에게 안내견에 대해 설명하는 것, 그리고 안내견 훈련견의 최종 능력평가이다.

음식에도 동네 개에도 흔들림 없어야 안내견

시각장애인 안내견으로 주로 사용되는 개는 리트리버 종이다. 건강한 어미개에게 태어난 강아지들은 젖을 뗀 후 일반 가정집에 보내져 퍼피 워킹(Puppy Walking, 훈련견 위탁사육 자원봉사) 과정을 거친다. 사람들과 함께 살며 사회성을 키우고 생활에 적응하는 것이다.

약 1년 후 안내견학교로 돌아온 강아지들은 건강검진과 기질검사를 통해 선별된다. 이후 약 6개월 동안 본격적으로 안내견 훈련을 받게 된다. 그리고 최종평가시험을 거쳐 안내견으로 시각장애인 가정에 보내지는 것이다.

안내견 훈련과 자격평가는 꽤 까다롭다. 안내견은 음식의 유혹도 참아야 하고 지나가는 동네 개에게 반응을 해서도 안된다. 안내견은 자신이 지날 수 있어도 동행한 시각장애인이 지날 수 없는 길이면 돌아가야 한다. 10마리 정도가 훈련을 받는다면, 3~4마리 정도만이 최종 합격하여 안내견이 될 수 있다.

이 마지막 과정에서 훈련견을 평가하는 것이 유석종씨의 몫이다. 최종평가에서는 안내견의 기질과 보행속도·품행 등의 항목 평가에 따라 안내견 합격 여부가 결정된다.

안내견을 분양받는 사용자 또한 일정한 능력을 갖춰야 한다. 안내견이 필요한 사람과 2~3차례 면접을 갖고, 이동성이 있는가, 개를 관리할 능력이 있는가 등을 먼저 평가하게 된다. 능력이 부족하다고 판단될 때는 기초재활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연계해 주기도 한다.

분양이 결정되면 입소교육 2주와 현지교육 2주, 총 4주간의 사용자 교육이 이뤄진다. 입소교육은 안내견을 관리하는 방법을 배우고 안내견과 함께 보행 훈련하는 것으로 이뤄지며, 현지교육에서는 집에서 학교와 직장까지 주로 다니는 길을 안내견과 함께 다니면서 길을 익힌다. 안내견 보행에 익숙해지는 과정이라 할 수 있다.

안내견은 네비게이션? 지도는 시각장애인 머릿속에

안내견에 대해 가장 많이 받는 질문 중 하나가 안내견이 어디까지 안내할 수 있느냐는 것이다.

안내견이 네비게이션처럼 가야 할 길의 방향을 잡고 안내해줄 거라 생각하는 것은 오산이다. 안내를 받는 시각장애인의 머릿속에 갈 곳의 지도가 이미 그려져 있어야 한다. 가야 할 길의 방향을 선택하는 것은 온전히 시각장애인의 몫이다. 안내견은 시각장애인이 제시하는 방향으로 가면서 위험요소(웅덩이나 장애물)들을 피해갈 뿐이다. 서로 역할을 분담하는 상호보완적 관계라 할 수 있다.

그렇다면 흰 지팡이 보행과 안내견 보행에는 어떤 차이가 있을까?

흰 지팡이 보행을 할 때는 스스로 장애물을 발견하고 피해가야 하기 때문에 온갖 신경이 집중될 수밖에 없다. 반면 안내견 보행 때는 안내견이 장애물을 피해가므로 가야 할 방향만 생각하면 된다. 장애물에 대한 스트레스가 훨씬 감소한다. 또, 안내견과 함께 보행할 때 자세가 더 편안하다.

유석종씨는 선천성 녹내장으로 어린 시절부터 앞을 볼 수 없었다. 맹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에 입학한 후 시각장애인 안내견 강토와 만났다. 벌써 5년이 흘렀다. 오랜 세월 함께 지내다 보니 때로는 강토가 사람처럼 느껴질 때도 있다. 배를 위로 향하게 누워서 자거나 코를 골 때면 강토가 정말 사람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함께한 시간만큼 애틋한 마음도 크다.

안내견은 사람이 갈 수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함께 갈 수 있도록 법적으로 보장돼 있다. 그러나 사람들의 인식은 아직 그에 미치지 못한다. 차에 탈 때나 식당에 들어갈 때마다 "안내견은 어디든 동행할 수 있습니다"라고 설명해 주어야 한다.

"개는 식당 밖에 묶어놓고 들어오라고 하던 분들도 막상 강토가 얌전히 앉아있는 걸 보면 참 착하다면서 예뻐해 주시거든요. 이렇게 해서 안내견에 대해 좋은 기억을 남겨주면 다음에 다른 시각장애인이 방문했을 때는 좀 더 수월하게 출입할 수 있게 되겠죠."

안내견을 다룬 드라마 <내 사랑 토람이>
 안내견을 다룬 드라마 <내 사랑 토람이>
ⓒ SBS

관련사진보기


시각장애인이 개까지 돌볼 수 있겠냐고?

유석종씨가 안내견학교에서 일하는 동안 배출한 안내견 수만 해도 20마리 정도. 안내견은 1년에 10~15마리씩, 13년간 총 106마리가 배출되었다.

하지만 현재 우리나라에서 활동중인 안내견은 55마리에 불과하다. 시각장애인 안내견도 나이가 들면 은퇴를 하게 되고 다른 안내견을 새로 분양하기 때문이다. 늙은 안내견은 안내견학교로 돌아와 노후를 보내게 된다.

유씨는 안내견 사용자 수가 적은 이유 중 하나로 시각장애인들의 직업이 한정돼 있다는 점을 꼽는다. 시각장애인들은 대부분 안마사로 활동하는데, 안마사라는 직업의 성격상 활동 양이 많지 않기 때문에 안내견이 필요하지 않다는 것이다.

그리고 시각장애인 중 흰 지팡이로 독립보행을 할 수 있는 사람이 많지 않다는 것도 이유 중 하나이다. 앞서서 설명한 대로 애완견이 네비게이션이 아니기 때문에, 독립보행할 정도가 돼야 애완견을 활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시각장애인이 개까지 책임지는 것은 힘들지 않느냐고 걱정하는 사람들도 있다. 장애를 가진 사람들은 다른 대상을 책임지고 보살피는 경험이 적을 수밖에 없다.

그러나 유씨는 주변 시각장애인들이 안내견을 보살피는 과정에서 훨씬 여유로워지는 것을 종종 보았다고 한다. 그리고 안내견에 대한 배려가 사람에 대한 배려로 연결되면서 인간관계가 더 부드러워지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안내견 관리에 대한 부담은 시각장애인 자신이 할 수 없을 것이라 생각하기 때문에 생기는 것이다. 막상 해보고 익숙해지면 별것 아닌 일이 된다. 스스로 활동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고 이동에 대한 두려움이나 부담감을 줄이도록 노력할 필요가 있다.

"눈으로만 예뻐해 주세요!"

유씨는 안내견이 단순히 시각장애인의 안전보행을 돕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 인식을 변화시키는 데에도 매우 큰 역할을 하고 있다고 말한다.

안내견과 함께 보행을 하게 되면 사람들의 시선은 안내견을 거쳐 사람에게 옮겨온다. 커다란 개에 먼저 신경을 쓰기 때문에 시각장애인이란 점에 주목하기보다는 큰 개를 데리고 다니는 사람으로 인식하게 되어 차별의 시선이 약해진다.

또 개에 관심을 보이는 사람들 덕에 대인관계가 넓어지기도 한다. 보통 처음 사람을 만나면 대화의 주제를 찾는데도 꽤 시간이 걸리기 마련인데 안내견이 자연스럽게 매개체가 되어 대화의 장이 열린다.

아직 장애인이 사회 활동하는 것에 대한 인식이 부족하다. 시각장애인이 외부 활동하는 것을 이해하고 도우미 역할을 하는 안내견에 대한 기본 에티켓을 지켜줄 필요가 있다.

주인 허락 없이 안내견을 만지거나 음식물을 주어서는 안 되며, 부르는 소리나 행동도 금해야 한다. 안내견이 주의가 산만해지면 시각장애인의 보행에 위험을 초래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안내견이 일을 하는데 방해를 받지 않도록 눈으로만 예뻐해 줄 필요가 있다.

덧붙이는 글 | 시각장애인을 위한 잡지 <손끝으로 읽는 국정> 10월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김수현 기자는 한국점자도서관 기획홍보팀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 안내견은 삼성화재안내견학교에서 무상으로 분양한다. (문의: 031-320-8935)



태그:#시각장애, #안내견, #흰지팡이, #삼성화재안내견학교, #한국점자도서관
댓글
이 기사의 좋은기사 원고료 10,000
응원글보기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