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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탕수수, 옥수수 그리고 콩. 바이오에탄올이 세계적 화두다. 국제유가 배럴당 86달러 시대, 석유고갈과 지구온난화 방지를 위한 대체에너지로 주목받고 있는 것이다. 세계 최대 에탄올 생산국가인 브라질과 미국은 물론 일본, 중국 등 이미 세계의 많은 국가들이 에탄올정책에 열을 올리고 있다.

한국 석유품질관리원도 내년 8월 바이오에탄올 도입을 위한 연구를 마감한다. 상용화를 염두에 둔 조치다. 그러나 곡물에탄올은 빈곤심화, 노예노동 등 또 다른 차원의 환경·인권문제를 낳고 있다. <오마이뉴스>는 세계적 논쟁이 된 바이오에탄올의 명암을 살펴보기 위해 브라질·미국·멕시코 3개국을 현지 취재했다. '곡물에탄올 전쟁, 바이오연료의 명암' 10부작 시리즈 두번째 '세계 최대의 습지, 판타날 르포'다. 이번 취재에는 이유진 녹색연합 에너지기후변화팀장이 동행했다. 현지 통역은 공흥식 '이벤트브라질' 대표가 맡았다. [편집자말]
▲ 세계 최대 습지 판타날에 가다 세계 최대 습지 판타날에 가다
ⓒ 김도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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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최대의 습지 판타날을 나르는 수리. 취재진이 찾아간 판타날 미란다 강 유역에서는 한국에서 좀체 볼 수 없는 야생조류들을 쉽게 만날 수 있었다.
 세계 최대의 습지 판타날을 나르는 수리. 취재진이 찾아간 판타날 미란다 강 유역에서는 한국에서 좀체 볼 수 없는 야생조류들을 쉽게 만날 수 있었다.
ⓒ 장윤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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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라질 지도. 마또그로수 도 술 주의 왼쪽 편이 판타날이다. 판타날은 브라질과 볼리비아, 파라과이에 걸쳐 있다.
 브라질 지도. 마또그로수 도 술 주의 왼쪽 편이 판타날이다. 판타날은 브라질과 볼리비아, 파라과이에 걸쳐 있다.
ⓒ 장윤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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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순간에 습한 기운이 차창 틈새를 비집고 들어왔다. 브라질 깜뽀그란지(Campo Grande) 공항에서 205㎞지점. 세계 최대의 습지, 판타날(Pantanal)이 가까이 온 듯했다.

판타날의 총 면적은 238만2800㎢로 브라질과 볼리비아, 파라과이에 걸쳐 있다. 큰부리새 같은 700종의 야생조류, 식인물고기 피라냐 같은 262종의 희귀종 어류, 세계 최대 설치류 카피바라와 다양한 파충류·양서류 등 동식물이 숨쉬는 생태계의 보고, 판타날.

마또그로수 도 술(Mato Grosso Do Sul) 주정부는 2005년 이곳에 바이오에탄올 공장 건립 계획을 발표했다. 습지를 개간, 사탕수수밭을 조성해 에탄올 생산량을 늘리겠다는 취지였다.

이 사실을 알게 된 한 환경운동가는 자신의 몸에 시너를 붓고 불을 붙였다. 'USINA DE ÁLCOOL, NO PANTANAL(판타날 알콜공장 반대!)'

그의 분신자살은 가톨릭국가인 브라질 사람들에게 큰 충격이 됐다. 당시 환경운동가의 분신으로 마또그로수 도 술 주정부는 에탄올공장 건립계획을 취소했다. 그러나 다국적기업들은 이 지역에 에탄올공장을 세우기 위해 온갖 로비를 하고 있다. 마또그로수 도 술 주의 현 주지사는 에탄올공장 건립을 위해 법률개정을 또 준비중에 있다.

그로부터 2년 뒤인 지난달 21일 오후, 취재진이 판타날 현지를 찾았다. 분신한 그가 그토록 지키려했던 판타날을 취재하기 위해서였다.

목이 길고 엉덩이가 뚱뚱한 타조들이 3m 높이의 망고나무 아래서 허리를 꼿꼿이 세운 채 발걸음을 떼고 있었다. 세계에서 가장 큰 새지만 날지 못하는 이유가 혹시 저 엉덩이 때문은 아닐까 잠시 생각하기도 했다. 차창에서 야생타조들이 사라지자 이번에는 60~70cm 높이의 개미집들이 '두더지게임기'처럼 너른 벌판에 불쑥불쑥 나타났다. 개미집은 성인이 올라가 발을 쾅쾅 굴러도 무너지지 않을 정도로 튼튼하다고 했다. 실험은? 못해봤다.

파라과이 강을 따라 약 160㎞가 펼쳐진 습지. 취재진은 이 강 지류의 하나인 미란다 강 주변을 둘러보기로 했다. 56일째 비가 내리지 않은 최악의 건기. 강물은 거의 말라붙어 있었다. 취재진이 도착한 곳은 살로브라 강. 이곳에서 취재진은 3~4인용 모터보트를 빌려 타고 좀 더 깊은 강 속으로 들어가기로 했다.

탈탈탈. 모터보트에 시동이 걸리자마자 강 유역에 머물던 새들이 파드득 하늘 위로 날았다. 한국이라면 모두 동물원에서나 만남직한 야생 조류들이었다. 카메라 셔터를 누르기 전 줌만 당겨도 그 소리를 알아듣고 놀라서 하늘 위로 날아가 버리는 새들. 머리가 빨갛고 부리가 노랗고 깃털이 검은 그들을 판타날 사람들은 '마과리'라고 불렀다.

판타날 표범. 판타날 미란다 강유역의 한 생태공원 근처를 어슬렁거리던 표범을 그 지역 전문가 사진작가가 촬영했다. 에베르통 다 실바 알바스 사진작가는 "이 사진을 찍은 자신은 굉장히 운이 좋았다"며 <오마이뉴스>의 게재를 허락했다.
 판타날 표범. 판타날 미란다 강유역의 한 생태공원 근처를 어슬렁거리던 표범을 그 지역 전문가 사진작가가 촬영했다. 에베르통 다 실바 알바스 사진작가는 "이 사진을 찍은 자신은 굉장히 운이 좋았다"며 <오마이뉴스>의 게재를 허락했다.
ⓒ Heberton da Silva Alv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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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혜의 생태계 보고에서 만난 야생 생물들


강우량을 측정할 수 있는 교량의 계기표. 판타날 미란다 강 유역에 비가 오지 않아 강우량을 측정하는 교량의 계기표가 훤히 드러났다.
 강우량을 측정할 수 있는 교량의 계기표. 판타날 미란다 강 유역에 비가 오지 않아 강우량을 측정하는 교량의 계기표가 훤히 드러났다.
ⓒ 장윤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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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로브라 강 속을 조금 달리자마자 이내 모래흙에 배가 걸려들었다. 살로브라 강물은 바닷물처럼 짭짤하고 석회암과 석회질이 많아 흙탕물이 없다는 게 특징이다. 우리를 태운 뱃사공은 건기가 워낙 심해 물이 말라 자꾸 배가 모래에 걸릴 것이라고 걱정했다.

판타날은 인간의 손때가 묻지 않은 자연 그대로였다. 강을 따라 양옆으로 숲이 이어졌고, 강물에는 연꽃이 피지 않았지만 연잎들이 기슭을 따라 넓게 펼쳐져 있었다. 취재진은 마치 생태기행을 하는 여행객처럼 자연에 취해 물끄러미 바라만 보았다. 허연 배를 뒤집고 이승을 떠난 새끼 악어, 고개를 빼꼼히 내밀었다 카메라만 들이대면 숨어버리는 수달, 세계 최대의 설치류 카피바라, 조용히 하늘을 나는 독수리들과 뜸부기.

판타날에서만 볼 수 있다는 야생 앵무새와 큰부리새. 석양을 뒤로 한 채 커다란 망고나무 위에 앉은 검은 독수리 떼는 평생에 남을만한 장관이었다. 피 냄새를 맡으면 쏜살같이 나타나 그 살을 뜯어 먹는다는 피라냐. 몸집은 작지만 동물성 식성을 가진 그도 판타날에 산다. 먹이사슬 생태계가 분명한 판타날에서 피라냐도 악어에게는 먹힘의 대상이다.

휘파람을 한창 불고 피라냐로 유혹하기를 10여분. 판타날 악어가 나타났다. 동시에 3마리가 줄지어 머리만 드러낸 채 눈동자를 끔벅였다. 동물원 악어에 비하면 보잘 것 없이 풍채가 작았지만 긴 꼬리와 발로 진흙탕을 짓이기며 지나가는 폼이 예사롭지 않았다.

악어와 새를 불법으로 잡아가는 밀렵꾼들

판타날 어부 바우테르 사무엘(65)씨는 열일곱부터 무명실에 낚시 바늘 꿰어 고기를 낚았다. 평생 판타날을 떠난 적이 없는 그는 이곳에 혹여라도 에탄올공장이 들어서는 것에 절대 반대한다는 입장이다.
 판타날 어부 바우테르 사무엘(65)씨는 열일곱부터 무명실에 낚시 바늘 꿰어 고기를 낚았다. 평생 판타날을 떠난 적이 없는 그는 이곳에 혹여라도 에탄올공장이 들어서는 것에 절대 반대한다는 입장이다.
ⓒ 장윤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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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부 바우테르 사무엘(65)은 평생 이 광경을 보면서 살아왔다. 판타날은 그의 고향이다. 열일곱부터 판타날에서 고기를 잡아 생활해온 터다. 어릴 적에는 무명실에 낚시 바늘을 꿰어 고기잡이를 했다.

그러나 요즘에는 그것도 어렵게 됐다. 어망과 큰 배를 가진 밀렵꾼들이 판타날의 생태계를 망치고 있다는 것이다.

"예전에는 판타날 어부들만이 고기를 잡아 주변에 내다팔았지만 요즘에는 밀렵꾼들이 정말 많아졌습니다. 주정부 환경경찰들이 검문검색을 하고 있지만 그래도 악어나 새들을 잡아가는 나쁜 사람들이 많아요."

여기에 한 가지 더 보탠 고민이 생겼다. 정부가 경제적 이윤을 위해 판타날의 천혜 생태계를 파괴하고 에탄올공장을 지으려는 흐름이 그것이다.

"나는 배움이 많지 않은 어부예요. 아는 게 없지요. 그래도 에탄올공장 건립은 반대합니다. 특히 판타날에 에탄올공장이라니요.

보십시오, 판타날이 얼마나 아름다운가요? 도시에서는 볼 수 없는 새와 물고기, 악어들. 우리가 판타날에서 행복하게 살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

앞니가 몽창 빠진 초로의 어부. 천혜의 자연경관이 숨 쉬는 판타날에 우후죽순 에탄올공장이 들어선다면, 무명실에 낚시 바늘을 꿰던 그는 한 순간에 하루 12시간 노동, 일당 20헤알(1만원)을 받는 사탕수수 노동자로 전락할지 모른다.

브라질에서 판타날 환경보호 운동을 펼치는 환경운동가들은 바우테르 사무엘 같은 어부들이 평생 이곳을 지키며 살 수 있도록 여러 활동을 벌이고 있다. 이제 취재진은 판타날에서 다시 깜뽀그란지로 돌아가 분신한 환경운동가의 족적을 찾아갈 것이다. 

"사탕수수 무차별 소각, 천식환자 늘고 있다"
[길 위의 사람들 ②] 알렉산드로 메네지스 ECOA 사무총장

알렉산드로 ECOA 사무총장는 사탕수수 소각으로 인해 최근 상파울로 인근에서 천식환자 발생비율이 높아졌다고 지적했다.
 알렉산드로 ECOA 사무총장는 사탕수수 소각으로 인해 최근 상파울로 인근에서 천식환자 발생비율이 높아졌다고 지적했다.
ⓒ 장윤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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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렉산드로 메네지스 ECOA 사무총장은 '판타날 지역의 에탄올공장 건립반대운동'을 가장 필두에서 벌이고 있는 환경운동가다. 알렉산드로 총장은 지난달 20일 <오마이뉴스>와 만나 왜 천혜의 자연경관이 숨쉬는 판타날에 에탄올공장이 건립돼서는 안 되는지 성토했다. 그의 주장을 들어보자.

- 그동안 에탄올공장 건립반대활동을 어떻게 벌여왔나.
"79년, 이 지역에 23개 콘소시엄을 가진 자본그룹이 마또그로스 주에 에탄올공장을 건립하던 시점에 NGO 활동이 활발해졌다. 그동안 판타날 지역에서의 에탄올공장 건립 반대 법안을 준비해 82년 주의회에 상정했다. 2003년까지 조용했었다.

그런데 마또그로수 도 술 주정부 제까 노 뻬떼 전임 주지사가 결국 판타날에서의 에탄올공장 건립을 허가했다. 그로 인해 2005년 프란시스코 안셀모가 분신했다. 아마 그가 분신하지 않았다면 판타날에 에탄올공장이 건립됐을 것이다. 판타날지역을 보호하자고 주장하는 운동가들은 이렇게 분신까지 해야 할 정도다.

최근에는 차츰 콩밭 같은 농산물을 사탕수수밭으로 바꾸는 식으로 식량을 연료작물화 하고 있다. 따라서 우리는 연료를 위해 식량을 위한 토지가 훼손되고 있다는 보고서를 준비 중이다."

- 전 세계는 곡물 바이오에탄올이 대체에너지라고 주장한다. 공장설립을 왜 반대하나.
"대체에너지 개발에 반대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경제적이든 그 어떤 이유든, 최소한 지켜야 할 게 있다. 사탕수수 기계화로 인한 실업률, 산업화로 인한 공해 발생은 걱정하자는 것이다. 유럽의 다국적기업들이 아마존 벌목 개간사업에 자본을 댄다. 그 뒤로 콩농사를 시작했다. 그 얘기는 곧 환경파괴를 부른다는 것이다. 콩 농사가 별안간 사탕수수 농사가 되는 게 요즘 현실이다. 그 이유로 아마존지역에서 노예노동도 발생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 에탄올공장이 주는 가장 큰 환경피해는 무엇인가.
"첫째 수질오염이다. 많이 개선되고 있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폐수처리나 사탕수수껍질 찌꺼기를 완벽하게 처리하지 않는 문제가 있다. 둘째, 소각문제가 심각하다. 추수 뒤에 벌어지는 대단위 소각으로 기관지염 발생이 심각하다. CO2가 대기오염의 주범이 되고 있다. 상파울로 주 내에서는 2017년부터 소각금지를 법으로 정하기로 했다. 리 메이라시는 이미 금지됐고, 마또그로수 주의 도우라도시 주변은 2008년부터 소각이 금지된다.

에탄올공장은 또 다른 사회문제를 발생시킨다. 사탕수수밭에서 일하기 위해 외지에서 사람들이 몰려든다. 이들은 하루 10~12톤의 사탕수수를 자른다. 이 정도로 일하던 사람들이 기계화로 인해 갑자기 일자리를 잃게 되면 모두 실업자로 전락한다. 그들이 대도시로 유입되면 곧 사회부적응으로 인한 범죄도 발생된다. 주택난 등도 심각하다."

- 기관지염 환자가 급격히 증가한다는데 어느 정도인가.
"상파울로 주립대학 의과대학 연구결과에 따르면, 상파울로 주의 아라꽈라 지역에 사탕수수 소각으로 인해 천식환자의 증가가 갑자기 늘어나고 있다. 의사 마르코스 아브도 알벡스에 의하면, 4~11월 사이에 두배 이상의 천식환자가 발생했다는 것이다. 그는 사탕수수 소각은 눈이 충혈되는 병 등도 동반하게 된다고 우려했다." 

- 석유고갈시대, 어떤 자원이 가장 적합하다고 보냐. 
"정답이 없다. 브라질의 경험만 예로 들겠다. 브라질은 대체에너지를 하려고 사탕수수 경작이 시작이 됐다. 지하자원으로 골드러쉬가 있었던 시기가 있었고, 그 뒤에 커피러시가 있었다. 지금 대체에너지라고 해서 사탕수수가 거론되고 있지만, 좀더 환경적인 것을 찾아볼 수 있다. 사실 사탕수수는 에너지작물이 아니라 경제작물이다. 태양력·바이오가스·풍력 등도 고려해야 한다. 에탄올이 유일한 대체에너지라고 결론내릴 수 없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한국언론재단 기획취재 지원프로그램의 일환으로 이뤄졌습니다.



태그:#바이오에탄올, #판타날, #에탄올공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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