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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불이야~! 막상 작은 불이지만 여러 잡동사니가 타느라 냄새가 매우 독했다.
ⓒ 박상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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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배 피우러 집밖에 나섰더니!

 

전공 수업이 줄줄이 매달려 있는 목요일은 언제나 피곤하다. 하지만 금요일에는 수업이 없어 다른 사람의 금요일 밤 같은 기분을 낼 수 있다. 피곤한 몸을 이끌고 집에 들어오니 과일과 음료수가 있다. 맛있는 간식과 TV 드라마, 그리고 여자친구와의 채팅까지. 썩 나쁘지 않은 밤이다. 게다가 목요일은 <100분 토론>을 하는 날. 특히 문국현 후보가 나오는 날이라 과 친구들끼리 방송을 보며 채팅을 하기로 했다.

 

아버지가 컴퓨터를 쓰시는 동안 몰래 담배를 피우러 밖에 나왔다. 그런데 집 근처에 있는 영등포 중고등학교가 환하다. '누가 불꽃놀이를 하나?' 하는 생각을 끝내기도 전에 밤하늘로 치솟는 검은 연기가 보인다. 불이구나! 바로 119에 전화를 하니 전화를 받은 119대원이 학교 안인지 주택가인지 묻는다. 집에서는 다른 집에 가려 정확히 보이지 않는다. 신고를 마치고 든 생각은… 취재다!

 

집에 뛰어들어와 정신없이 취재도구를 챙긴다. 펜은 내 책가방에 가만히 있는데 괜히 아버지에게 펜을 찾는다. 휴대폰은 어딨지? 카메라 충전은 했던가? 조그만 가방을 메고 가려는데 그것마저도 보이지 않는다. 에라 모르겠다. 동생이 애지중지하는 조그만 가죽 가방에 죄다 쓸어 넣고 집 밖으로 달려갔다. "다녀오겠습니다~!"

 

집에서 영등포 중고등학교로 가는 길은 긴 내리막이다. 신발도 헐렁하게 신어 달리기 힘들었지만 500m 정도를 정신없이 뛰어 학교 운동장에 다다랐다. 불이 났던 쪽으로 달려가는데 소방차가 내 뒤를 따른다. 건물 뒤로 돌아서자 불길이 보인다. 학교 안에서 난 불이다.

 

시계를 보니 11시 9분. 11시 5분경에 신고 전화를 했으니 4분만에 현장으로 달려간 것이다. 사진을 찍으려니 소방대원이 누구냐고 묻는다. "아 저는 <오마이뉴스> 시민기자인데요, 집에서 불난 거 봐서 신고하고 달려왔어요."

 

불은 영등포 중학교 뒤편에 있는 매점 건물 옆에서 일어났다. 건물 옆에 작은 분리수거장이 있었는데 누군가 그곳에 불을 지르고 갔던 것이다. 소방차가 재빨리 현장에 접근했지만 주변 주택가에 주차된 승용차와 좁은 골목길 때문에 진입하기 어려웠다.

 

 

결국, 학교 위쪽에 있는 도로에서 물을 내려쏴 불을 껐다. 화재 현장을 조사하던 동작 소방서 김재경 소방경은 "동네 애들이 몰래 학교로 들어와 불장난을 한 것 같다"며 현장을 정리했다. 결국 목요일 밤의 화재 소동은 40분만에 정리되었다.

 

집에 돌아오는 길에 소방차가 바로 불이 난 곳에 접근하지 못한 것이 마음에 걸려 학교 건물 주위를 돌아봤다. 다행히 운동장에 바로 들어오기 전에 학교 뒤편으로 통하는 길이 있었다. 소방대원들도 한밤중에 정신이 없고 처음 오는 곳이라 길을 제대로 찾지 못했던 것 같았다.

 

유독가스에 머리가 어질어질

 

속된말로 재미있는 구경거리 중의 하나가 불구경이라고 한다. 하지만 직접 코앞에서 구경한 불은 절대로 재미있지 않았다. 못쓰는 물건들이 한데 모여 불이 났는지 유독가스가 나와 기침이 나고 어지럼증이 생길 정도였다. 다행히 조그만 분리수거장에서 난 불이었기 망정이지 건물 안의 목공소와 매점으로 옮겨붙었다면 큰 불로 번질 뻔했다.

 

 

불을 끄고 남은 불씨는 없는지 확인한 후에 건물 안을 열어 불씨가 들어가지 않았는지 확인했다. 못쓰는 학생 의자가 가득 쌓인 목공소는 화재 연기가 자욱했다. 쿨럭쿨럭! 기침이 난다. 하지만 소방대원들은 무심한 표정으로 제2의 화재가 발생하지 않는지 꼼꼼하게 확인한다.

 

"어우 연기가 장난 아닌데요. 안 힘드세요?"

"이 정도야 뭐… 괜찮습니다."

 

어떻게 괜찮을 수가 있단 말인가. 소방관의 호흡기가 따로 연기를 걸러내는 기능이 있는 것도 아닐 텐데. 새삼 현장에서 화마와 싸우는 소방관이 존경스러워진다. 하지만 위험한 일을 하는 경찰관이나 소방관이 업무 중에 다쳐도 공상처리가 힘들어 이중고를 겪는다는 기사가 떠올라 한편으로는 마음이 무거웠다.

 

"이런 거 뭐 기사로 쓰실 것도 없어요."

 

물론 건물이 탄 것도 아니고 다친 사람도 없다. 언제 어디서나 날법한 작은 소동이다. 하지만 적어도 내겐 작은 소동이 아니었다. 시민기자로 현장을 누빈다는 것은 언제 어디서나 흥분을 준다. 기분 좋게 피우려던 담배는 놀란 가슴을 쓸어내리는 진정제로 쓰였다. 불낸 놈들 나한테 걸리면 죽어~!


태그:#화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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